행복한 고민

by 가을장미

일주일의 시간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까. 봄나들이 겸 맛난 음식을 먹으러 교외로 나가볼까, 가까운 속초 바다를 보러 갈까, 행복한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침엔 제주도로 날아간 지인으로부터 유채꽃과 동백, 성산포 해변에 위치한 카페와 해산물로 된 음식 사진들이 실시간 올라왔다. 바야흐로 봄바람이 불어오니 집에만 있기엔 많은 사람들이 안달이 날 수밖에. 그러던 차에 출근한 딸에게 전화가 왔다.

딸은 한동안 계속 몸이 좋지 않다 했다. 코로나 자가 키트로 검사해보아도 별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데 풀 죽은 목소리로 PCR 검사를 하고 집으로 온단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백신을 맞지 않은 남편의 건강이 먼저 염려되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코로나 상황에도 병원에서 근무하느라 힘들었을 딸에 대한 안쓰러움보다는 좀 더 조심했으면 하고 탓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나의 모성애는 어디로 간 걸까.


오후가 되니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는 문자가 왔단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왔다. 신경이 곤두서고 막연한 공포가 현실이 되어 보이지 않는 코로나 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딸은 증상이 심하지 않았다. 백신 3차 접종까지 해서였을까. 일단 방에서 격리 아닌 격리가 시작되었다. 일회용 장갑을 끼고 칫솔과 수건을 챙겨 화장실을 따로 쓰도록 하면서. 난 약국으로 향했다. 전화진료만으로 병원 처방전이 가능했고 집 근처 약국으로 연결되어 편리했다. 간 김에 소독약과 가글도 챙겼다. 병원과 약국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처방전과 약값은 받지 않았다.

딸은 억울하단다. 자신이 친구를 만난 적도, 어디 놀러 간 적도 없었기에 게다가 백신 접종도 다 했는데 이것이 왠 날벼락 인가 하면서. 막상 일주일의 긴 시간이 생겼지만 방구석에만 있어야 하는 것을 허탈해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 나쁜 증상이 조금 있다 했지만 밥은 잘 먹었다. 힘내라고 보내준 쿠폰으로 전복죽을 먹는 호사를 누리고 고기를 찾았다. 난 삼시세끼 차리느라 바빠졌고 방문을 열 때면 일회용 장갑을 낀 손이 긴장되었다. 이제 딸 방이 가장 먼 곳이 되어버렸다.

딸은 병원 간호사다. 친정 엄마는 생전에 내게 말했다. 왜 딸을 키워 그런 일을 시키느냐고. 나이가 들어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엄마는 간호사의 삶이 얼마나 험한지 보았으리라. 딸의 교회 선생님이 간호대 교수였기에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진로가 많다며 적극 추천해주었기에 난 교회 가는 길에 있는 병원이 딸의 직장 길이 되게 해 달라며 기도했고 응답을 받았다. 하지만 딸은 많이 힘들고 우울해했다. 피아노를 치던 손에 주사기를 잡았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했던 딸은 미련하도록 앞만 보고 일에 매달렸다.

휴가만 생기면 딸은 여행을 떠나곤 했다. 누적된 피로를 쉬면서 풀어야 했으나 혼자서 멀리 떠난 여행들로 몸에 무리가 왔다. 결국 무릎에 이상이 생겼고 제법 경력이 쌓여 갈 즈음 직장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형외과 의사는 다시는 복귀하기가 힘들거라 말했다. 집에서 이 년여 시간을 보내면서 몸보다 마음을 더 많이 아파했다. 나도 자책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행스럽게도 딸은 회복되었고 지인의 도움으로 집 근처 병원에서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 지금은 건강에 무리가 덜 되는 외래에서 환자들과 씨름하면서.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수필에서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적었다. 첫째 날은 자신을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얼굴을 보고 난 후, 먼동이 트는 하늘과 꽃, 풀 등 자연을 보길 원했고 둘째 날은 출근하는 사람들, 영화와 쇼윈도의 상품을 구경하는 일과 노을 같은 내겐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을 보기 원했다. 마지막에는 삼일 동안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단다. 이 글은 항상 감동을 준다. 내겐 무감각했고 당연한 것들이 누눈가에겐 너무나 간절한 소망이기에.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자만이 그녀처럼 원하는 것을 잘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인생의 정오를 지난 지 오래다. 젊었을 때는 세상을 향해 멀리 나가고만 싶었지만 지금은 나의 내면에 더 관심을 두고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정신없이 살아온 나의 삶을 회상하며 성숙의 의미를 생각한다. 내 건강에 맞게 일상을 보내면서 동네에 위치한 카페 같은 도서관에서 책과의 만남을 즐기고, 잠시 산책하면서 자연을 느껴보는 순간들 그리고 비대면 화상으로라도 뜻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감사하면서. 이제는 이런 소소한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아간다.

딸의 시중을 들다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다 지나갔다. 출근하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록 내가 계획할 지라도 그것을 이루는 것은 신의 손길이 있어야 함을 새삼 느낀다. 벚꽃이 피는 4월에는 모녀간 데이트를 생각해본다. 어느 전망 좋은 식당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꿈꾸던 일주일의 시간은 코로나와 씨름하느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행복한 고민은 또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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