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알파벳을 배운 이후로 내 꿈의 목록 중 하나는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었다. 통학 버스 안에서도 자투리 시간만 있으면 영어 단어장을 손에 들고 외웠다. 비록 영어시험 점수는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그 후에도 EBS 방송에서 하던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보면서 따라 하곤 했다. 아마도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을 짧은 머리의 여강사는 p와 f의 발음을 얼마나 강조했던가. 종이를 입에 대고서 p는 입술에서 바람이 나가 종이가 움직여야 하고 f는 종이가 움직이면 안 된다며, 시범을 보이던 입모양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렇게 나의 영어 사랑이 시작되었다.
대학에 가서도 광화문 근처의 영어학원에 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수강료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부모님께 미안하다. 레벨 테스트를 거쳐 소수로 반 편성을 했기에 조원들의 실력들은 고만고만했으리라. 외국인 강사가 작은 막대기(rod)들을 가지고 영어 문장의 원리를 설명하는 듯했지만 나에겐 쉽지 않았다. 그때는 꿈도 영어로 꾸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 정도로 간절히 원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러나 어느새 세월이 흘러 중년을 넘어선 나는 이십여 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여유 있어 좋았던 시간이 권태로 변할 즈음 지역신문에서 ‘원어민 영어회화’를 발견했다. 학창 시절 영어에 대한 로망이 되살아났다. 만만한 초급반은 대기줄이 길어서 신청하고 몇 달째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결국 수업을 해보고 결정해도 된다는 담당자의 말에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중급반 수업을 하러 나섰다.
낡은 주민센터의 지하에 위치한 강의실은 쾌쾌한 냄새가 났다. 몇몇 회원들이 일찍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거구의 백인 선생님이 “굿모닝” 인사를 했다. 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수업시간이 되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부터 젊은 주부까지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십여 명의 회원들이 차례대로 준비해 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거의 오 분 이상씩 프리토킹을 했다. 비록 발음은 한국식이었을지라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개인적인 관심사로부터 민감한 사회문제와 세계의 정세까지 넘나들면서.
깜짝 놀랐다. 저렴한 주민센터 강의라고 겉모습으로 판단했던 내가 얼마나 경솔했던지. 이런 곳에 재야의 고수 같은 실력자들이 숨어있었다니. 그들은 내가 학창 시절 꿈꾸었던 그런 모습이었다. 드디어 강사는 신입회원인 나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난 어학은 치매방지에도 좋아서 왔고, 같이 하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버벅거리며 말했다. 내 수준은 단 번에 드러났다. 그들은 환영해 주었지만 다음 주부터 유창하게 말하는 그들을 비집고 들어가 말할 기회를 찾기 어려웠고 초라함을 느꼈다. 일주일 동안 신문을 뒤지고, 읽은 책을 생각하고, 있었던 여러 일들을 돌아보면서 발표를 준비했다.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머리는 새하얘지고 결국 안경을 찾아 적어간 글들을 더듬거리며 읽는 용감한 시도를 계속해야만 했다.
알고 보니 당연히 그들도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인내의 시간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영어 소설이나 성경을 읽었고, 영어 일기를 쓰고 있었다. 외국여행도 자주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도 제법 있어 면세점 초콜릿의 달콤한 맛을 가끔 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가 죽지는 않았다. 영어란 목표만 바라보고 나의 열등감을 내려놓고 인정하니 많은 것이 배움의 즐거움으로 다가왔으니까. 영어와 씨름하던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들었다. 그래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준비해 짧은 영어로 발표하는 내가 약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날벼락처럼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어려운 상황으로 기약 없는 휴강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오스카 시상식에 희끗한 올림머리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우리나라 여배우가 나왔다. 작년에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수상소감을 영어로 말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난 그녀의 그 모습을 사진으로 저장해 놓기도 했다. 브레드 피트와 함께 한 그 장면까지도. 올해는 시상자로 나와 좀 더 여유 있고 재치 있게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부러웠다. 특히 수상자를 배려해 수화로 발표하는 모습은 품위까지 느껴졌으니까.
그녀가 연예인이었기에 지나온 삶을 대충 안다. 그녀는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지만 이혼하게 되자 경제적으로 어려워 점원까지 했단다. 결국 생계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인생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나 보다. 힘들었던 미국에서의 경험 덕분에 몇 년 전 해외에서 촬영하는 예능프로까지 출연해 유머 있는 영어실력을 보여주었으니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녀는 인생의 봄을 다시 맞이하는 듯하다. 지금도 준비된 자에게 기회의 여신은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최근 영어회화반이 개강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시 찾은 여전한 지하의 강의실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건강을 이유로 절반도 차지 않았다. 콧대 높았던 원어민 강사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란 말처럼, 쉬는 몇 년 동안 나의 영어 열정도 좀 식어버렸다. 아직도 ‘영어로 꿈꾸기’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이 봄, 또 못 다꾼 꿈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