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by 가을장미



우리 아파트에는 정문 말고도 몇 개의 출입문이 있다. 그중 우체국 쪽으로 나있는 문이 있는데 산책을 갈 때면 자주 그쪽으로 드나들었다. 그럴 때면 간혹 우체국 담장 모서리에 좌판을 펴놓고 열 개 남짓한 강냉이 봉지를 파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서너 번 이곳에서 낡은 뻥튀기 기계를 돌리며 손님들이 가져오는 쌀이나 콩도 튀겼다. “뻥이요” 하면서.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 할아버지의 강냉이를 사 먹게 된 것이. 몇 년 동안 다녔어도 할아버지가 거기 있었는지도 기억에 전혀 없었다. 아마도 지난가을쯤 한번 사본 강원도 강냉이 맛이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리라. 아삭하고 고소했으니까. 연어가 고향을 찾아 회귀하듯이 입맛 또한 그런 것인가. 옥수수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쉽게 그 강냉이의 맛에 빠졌다.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그만이었다. 왠지 살이 찔 것 같지도 않았고 가족 중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아 독차지하면서 음미할 수 있었기에.

지난겨울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뜸했다. 강추위 때문에 나오기 힘들겠지 하면서도 못 만나면 섭섭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영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뻥튀기 기계를 싣고 있는 손수레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한 달, 두 달, 석 달… 불안했다. 거리엔 코로나로 환자들이 넘쳐났고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었으니까. 봄이 오고 벚꽃이 피고 졌건만 우체국 모퉁이 담장엔 여전히 뻥튀기 기계가 들어 있는 손수레는 꽁공 묶인 채였다.

신고를 해야 하나, 신고를 한다면 어디에 해야 할까. 뻥튀기 할아버지는 아마도 허가를 내고 장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 짐은 마냥 방치되는 건 아닐까. 그곳을 지나갈 때면 고민이 되곤 했다. 주인 잃은 그 짐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먼지가 쌓여 갔다.

이제 날씨는 봄과 여름의 경계를 드나들며 심술이 심했다. 신록예찬의 환성이 터지기가 무섭게 녹음이 짙어졌고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서서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요즈음, 집에 있기엔 너무나 햇살이 아까워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시인의 노래처럼 수줍은 진달래는 정말 고대 지고 말았고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하게 만들었던 모란도 뚝뚝 떨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우리 동네 공원은 그나마 자연을 느끼고 숨을 쉬게 만드는 유일한 휴식처다. 일주일에 며칠은 이곳을 걸으면서 계절도 느끼고 가벼운 운동도 하면서 건강을 지키려 한다. 멀리 여행은 못가도 산책으로 대신하면서. 조용한 그곳을 걷다 보면 언젠가 읽었던 스위스의 작가, 로베르트 발저가 생각난다. 동시대 프란츠 카프카 와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받았고 현시대의 다양한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줬다는 그는 산책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그것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받아 글을 썼단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글을 써서 이름이 알려졌지만 아웃사이더로 떠돌다가 정신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작가. 결국 크리스마스에 산책을 나갔다가 눈 속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단다.

그는 <산책자>에서 말하고 있다. ‘걷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분 좋으며 태고의 단순함을 간직하고 있다, 신발만 적당히 편하다면.’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리곤 자신은 가장 작고 허름한 것만을 주시했단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선은 정말 남달라 처음엔 그의 글들이 머리와 가슴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호텔의 하인 등 권위와 영향력을 갖지 못한 직업의 사람들을 소설에서 주로 다루었다.

그의 산책에 대한 생각은 남달랐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보면 수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데 그것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하고 쓸모 있는 일인지 모른다며 자신에게 산책은 기분 좋고 건강한 습관을 넘어서 직업상 유익하고도 필수적인 일과란다. 산책을 통한 자연의 명상과 나긋하면서도 엄중하게 경고하는 자연의 탐구가 없다면,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까지 말하고 있었으니. 나와는 다르고 달랐다.

마치 자신을 변호하듯, 빈둥거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듯보여도 실은 산책을 통해 생각과 몰입과 조사 연구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하루하루의 빵을 번단다. 머릿속으로 항상 치열하고 끈기 있게 작업을 하고 있기에, 게으른 몽상에 잠겨 최악의 인상을 주는 밥벌레로 보이는 순간에도 감각을 최고로 작동시키며 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당신들은 아느냐고 반문했던 작가. 최대한의 사랑과 주의력을 가지고 동정과 공감과 감동의 감정을 느낄 줄 알고, 숨겨진 한없는 작은 일상의 사건에도 푹 빠져서 관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그의 산책론을 떠올리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난 작고 허름한 것은 그냥 지나쳤다. 무시했다. 그러나 이 작가의 치열한 산책 과정과 작가 정신을 알게 되어서일까.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던 많은 소소한 것들이, 작은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발저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며칠 전이었다. 눈에 익은 파란색 파라솔이 우체국 담장 그 자리에 펴있는 것이 아닌가. 그 할아버지였다. 할머니 한 분이 가져온 쌀을 튀겨 커다란 봉지에 담으면서. 살아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왜 그동안 보이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고물 기계가 고장 나 고치려면 돈이 수월찮이 들어 고민했단다. 시골로 내려가 겨울을 보내며 그만둘까 했는데 너무 심심해서 다시 왔단다. 봉지를 든 할머니도 그동안 두 번이나 왔다가 허탕을 쳤다며 계산을 했다. 그동안 나처럼 추억의 맛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꽤 있으리라. 이제는 오래 하련 다며 웃는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담장 위 오월의 넝쿨장미에게 닿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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