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老犬) 이야기

by 가을장미

출근하던 누나는 소파에 누워있던 나를 보며 개팔자가 상팔자란다. 애정이 담긴 장난스러운 말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애완견이니 반려견이니 하지만 진정 나의 고충을 알까. 변덕스러운 식구들 눈치 보며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 나의 처지를.


얼마 전 진찰대 위에서 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주인아주머니에게 안겨 동물병원을 가게 됐다. 저번처럼 약을 처방해달라는 그녀의 말에 진찰하던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종합 건강검진을 권했다. 나이도 많이 들었으니 필요하단다. 그녀는 과잉진료가 아닌지 의심스러워했지만 마지못해 응했다. 처치실에서 두려움에 떨다 얼마쯤 지났을까, 넓적한 얼굴에 마스크를 쓴 수의사는 아줌마에게 CT 결과를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며 설명했다.


아팠던 이유는 예전에 몇 번 겪었던 담낭으로 인한 간질이라기보다는 늙어서 심장과 신장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란다. 몇 장의 검사 결과지를 한참 동안 친절하게 설명했다. 결론은, 사람이 늙으면 지병이 생기듯이 개도 그렇단다. 앞으로는 약을 먹으면서 살아가야 한단 말에 아주머니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오늘 검사료와 주사비뿐 아니라 매달 약값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나는 숨고 싶었다.


실은 내가 병원에 오게 된 비밀 사건이 있었다. 가족들이 다 먹고 일어난 후 식탁엔 아저씨만 있을 때였다. 그는 마음이 약해서 애교를 부리고 떼를 쓰면 음식 부스러기를 던져주곤 했으니까. 아줌마 몰래 닭고기 서너 점을 얻어먹었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며칠 입이 즐거웠지만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난 사료 외에 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했지만.


깔끔한 내가 축 쳐져 대소변을 보러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아파하자 골똘히 생각하던 아줌마는 아저씨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을 날렸다. 혹시 자신이 모르게 다람이에게 먹인 게 있냐고 마치 죄인 심문하듯. 움찔하던 아저씨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동안의 일을 실토했다. 아줌마는 혀를 차며 “그러면 그렇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달콤함의 끝은 너무 썼다.


십여 년 전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아줌마 부부가 유기견센터를 찾아왔다. 시츄 믹스, 세 살, 몸무게 5키로, 중성화 수술이 완료된 나를 찬찬히 살펴보며 선택했다. 아마도 수더분한 개를 원한 듯. 생전 처음 보는 그녀의 무릎에 안겨 한 시간도 넘게 달려 이 집에 도착했고 식구들은 다행히 나를 반겼다. 그전에 키운 사냥개 비글과는 다르다면서. 알고 보니 칠 년 키운 비글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픔이 있었다.


내게는 누가 권력자인지를 알아내는 신기한 능력이 있다. 이 가족의 서열은 집안 대소사며 무엇인가 결정하는 목소리가 큰 아줌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중요한 결정은 조용하고 곰 같은 아저씨가 했다. 꼼짝 못 하고 나중에 게거품을 무는 걸 보면 열쇠는 주인아저씨가 쥐고 있는 거였다. 빈수레가 요란하단 말이 딱이다.


난 유기견 센터에서 태어났고 엄마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 형제가 둘이나 있었다던데 그들의 소식도 모른다. 서로 다른 곳으로 입양이 되었고 난 무슨 이유에서인지 파양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사랑은 변한다는 걸 일찍 알아버렸다.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리울수록 원초적 존재의 불안이 나를 가끔 힘들게 한다. 다시는 그런 이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의 밥줄인 이 가족들에게 잘 매여 있어야 한다.


이제 사람 나이로 팔십이 넘었다. 눈칫밥도 십 년이 넘어가고 아줌마를 따라 산책을 가기엔 관절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먹기 싫은 약을 먹어야 하고 하루 종일 소파와 내 집을 맴돈다. 자꾸 잠이 온다. 산책 때 가끔 만났던 내 동류들은 무섭기만 했고 길고양이들의 눈초리 또한 자유를 잃고 대신 찾은 내 안락함을 비웃는 듯도 여겨졌다. 자유와 안락함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나 보다.


오늘 아줌마가 부산하다. 외출을 하려는지 옷 냄새가 다르다. 분리불안으로 애처로워하는 내 눈빛을 피하며 신발을 신는다. “삐리릭 “ 현관문이 닫혔다. 홀로 남겨진 텅 빈 거실엔 적요만이 감돈다. 이제부터 내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만 남아있을 뿐. 움츠린 몸에 고개를 파묻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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