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갑상선 항진이라는 건강의 벽에 부딪혔다.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에, 조기치료를 놓쳤다. 무지했다. 약을 먹기 시작해도 항진과 저하를 오르내렸지만 시간이 지나가니 조금씩 잡혀갔기에 이젠 연착륙을 하나보다 안심했다. 그러다 내 몸의 한계를 잘 모르고 욕심을 냈는지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하루 전 병원에서 보내준 코로나 사전 문진을 완료했다.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론 담장 위 넝쿨장미가 흐드러졌다.
"딩동” 소리와 함께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과 앞쪽에 위치한 채혈대 번호판에 6029 숫자가 나타났다. 내 번호였다. 서둘러 나가 대기표를 내밀며 의자에 앉았다. 연회색 유니폼을 입은 임상병리사는 이름과 주민번호를 물어보며 신원을 재차 확인했다. 앳된 얼굴이었다.
난 왼팔의 소매를 걷으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내 셔츠 위로 고무줄을 감으며 혈관을 살폈다. 잠시 난감해하더니 반대쪽 팔에 하잔다. ”따꼼하십니다.” 부드러운 말소리였지만 살 속으로 쑤욱 들어오는 주삿바늘의 감촉에 신경이 예민해질 즈음, 이젠 힘을 빼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녀는 주삿바늘을 분리해 폐기물 상자에 넣으며 주사 맞은 부위에 소독솜을 대고 테이핑을 해주었다. 채혈된 검채통에 검붉은 내 피가 보였다.
아마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숙달된 손길과 차분한 태도에 감탄하며 인사를 하고 일어서니 오 분간 지혈을 하란다. 소독솜을 누른 채 뒤쪽 의자에 앉아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채혈실 중앙 흰색 기둥에는 안내스크린이 달려 있고 앞쪽 A, B 채혈대에서는 네 명씩 벽을 등진 채 임상병리사들이 근무 중이었다. 밝은 조명 아래 흰색 벽면과 파란색의 시트카바가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번호 알람 소리에 따라 사람들이 속속 앞으로 나갔다. 벽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은 오후 세 시.
문득 육천이 넘는 번호표를 다시 보았다. 아찔했다.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였으니. 그랬기에 어설픈 초보자에서 지금은 자신들의 일에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전문가가 되었으리라. 묵묵히 자신의 일을 반복했던 그 일 만 시간의 법칙 덕분에. 교대시간이 되었는지 일어서는 그녀들의 표정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예민한 일에서 해방되는 홀가분함이 전해졌다.
이 대형병원에 오면 검진 후 잠시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일층에 있는 갤러리다. 환자와 방문객들이 오가며 붐비는 복도에 벽을 설치해 만든 문화 공간으로 병원의 배려가 느껴진다. 먼저 화가의 프로필과 작품 해설을 꼼꼼히 읽어본다. 양 쪽 벽면에 전시된 스무 개 정도의 이번 그림은 자세히 보니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강아지 풀이 소재였다. 사소한 것에 주목한 화가의 특별한 안목이 느껴졌다. 가느다란 닥나무 줄기를 바탕에 깔아 질감을 낸 후에 마치 점묘법과 같이 화폭 전체를 강아지풀로 가득 채웠다. 큰 작품은 오십 호도 넘을 듯했고 꼼꼼하게 붓칠을 하느라 걸렸을 인고의 시간이 가늠되었다. 아크릴 물감의 선명한 붉은색과 초록색의 그라데이션이 너무나 고왔다. 마치 푸나무를 캔버스에 담아 벽에 걸어놓은 듯.
안내 데스크 위에 걸려 있던 마지막 그림을 보고 나니 앉아 있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눈인사를 하자 그녀는 서랍에서 팸플릿을 한 장 꺼내 주며 말을 걸었다. 초록색 강아지풀이 물결치는 들판에 코발트색 파랑새를 상징하는 파란 나무가 서있어 눈길을 끌었다. 마치 건강을 향한 소망을 형상화해 환우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화가란 직업은 생각처럼 우아하지 않으며 모든 잡다한 일도 혼자 다해야 하는 노동자 같다며 직업의 민낯을 귀띔해 주었다. 떠나는 내게 속히 회복하시라는 말과 함께.
*사진은 한귀원개인전 2022.5~13~5.20 갤러리아*병원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집으로 오는 차 속에서 창 밖을 보니 담장 위에 붉은 넝쿨 장미들이 여전히 화사했다. 벽을 타고 올라와 그 울타리를 넘어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듯한 그 꽃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막힌 장벽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지지대 삼아 자신의 꿈을 펼친 아름다운 의지의 여인들로 여겨졌다.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가며 지신의 존재 이유를 드러냈기에 환호도 뒤따르는 것이리라.
나는 어떠했나.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들과 불통의 벽으로, 지금은 건강의 벽 앞에 서서 남 탓만 한 것은 아닐까. 저 넝쿨장미처럼 서로 어깨동무하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고 소통과 건강을 찾는 날이 올 텐데. 자신을 막고 있는 벽조차도 서로 의지하며 돋보이게 만드는 그 꽃에게 배운다. 만약 벽을 넘어서기 어렵다면 중간에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바람이 솔솔 통하도록.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월의 싱그런 햇살이 더욱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