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by 가을장미

예약된 치과 진료를 마쳤다. 밖으로 나오니 팔월의 태양은 불화살을 쏘는 듯 따가웠다. 한참을 기다려 어렵게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의 인사가 유난히 밝고 정중했다. 에어컨 바람에 땀이 식어갈 즈음 빨간 신호등에 차가 잠시 멈춰 서자 그는 단속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에 모르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오십 킬로로 달리다 벌금을 십만 원이나 냈단다. 그 돈은 하루 벌이였기에 너무 아까웠다고. 쓰린 그 경험 덕분에 이제 스쿨존에서의 규정 속도는 확실히 지킨단다. 그제야 내 눈에도 빨간색 테두리 안에 30이란 숫자가 선명한 교통표지판이 보였다.

중년의 기사분과 대화는 며칠 전 거의 백 년만의 폭우로 이어졌다. 다행히 이 지역은 큰 피해가 없는 듯하다면서 그는 삼십여 년 전 이 일대가 침수된 사건을 기억해냈다. 나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퇴근하던 남편도 거리에 물이 가슴까지 차올라 아찔했다면서 늦게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었으니까.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비는 여전히 내렸다. 하지만 남편을 비롯한 직장인들이 묵묵히 출근길을 서두르는 모습을 내다보면서 왠지 뭉클했었다. 제자리를 지키기 위한 발걸음, 아름다웠다. 바로 우리 사회를 지키는 저력이었으니까.

기사분은 예전엔 사업을 했단다. 세 개나 되던 창고에 불이 나서 순식간에 모든 것이 타버렸다고. 결국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고 삼십여 명의 직원들 월급과 퇴직금을 정산해주려니 하나 있던 건물을 팔아야만 했단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거라면서. 예전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잘 나갈 그때는 돈의 힘을 의지하며 하나님보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살았단다. 처음 보는 내게 마치 고해성사하듯이. 지금 칠십 대라고 했지만 너무 젊어 보여 깜짝 놀랐다. 택시 앞 유리에는 십여 년 전 취득한 개인택시면허증이 붙어있었다.

기사분의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집 근처에 다다랐다. 요금을 계산하며 은혜를 많이 받았다 했더니 그분은 “천국에서 만나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 마지막 인사에 신앙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로 재산을 한순간에 잃게 된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버거웠던 그 사건을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신앙으로 잘 해석해서 많은 나이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까. 돈을 더 의지하며 교만했던 자신을 사람 만들어 주셨다는 겸손한 간증을 할 수 있을지. 고난을 통해 좌절이 아닌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그분은 이미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리라.

기사분의 그 마지막 인사는 십여 년 전 부모님을 황망히 보내야 했던 내 아픔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은 손바닥 앞 뒷면과 같이 서로 붙어 있었을 줄이야. 모르고 있었을 뿐. 아버지의 폐암 말기 진단과 간병하던 엄마의 뇌출혈로 우리 형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전혀 이별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그저 아버지께 아무 걱정하지 마시란 인간적인 위로의 말만 되풀이했다. 아마도 그것은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사랑한단 말조차 어색해 표현하지 못하고. 확실한 부활신앙이 없었기에 천국에서 만나자는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두 분을 그냥 보내야만 했던 철부지 그때가…

가끔 유명한 과학자나 철학자가 신앙인임을 알았을 때, 다소 의아했다. 왠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중시하는 직업이기에 신을 믿는 것은 좀 어려울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으니까. 더구나 진화론 앞에서 창조론은 이름조차 무색하다. 하지만 그들도 인정하기를, 인간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허무에 빠지지 않고 잘 극복해내는 모습이야말로 신앙인의 신비란다. 실존주의자이면서 삶의 부조리를 논했던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조차도 신을 믿지는 않지만 신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했던가.

그러나 나의 믿음은 아직도 연약하다. 내 잘못을 보기보다는 남 탓을 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내가 하나님 자리에서 재판관이 되려 한다. 세상의 일은 내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도 없건만. 나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한데도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제는 단순히 복 받기 위한 기도를 넘어서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 내 고난을 약재료로 나누어 주면서 절대자의 뜻대로 순종의 연습도 하면서.

잠시 마주쳤던 기사분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소망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이 뜨거운 여름 화단에 한창인 맥문동과 겹쳐진다. 하늘을 향해 보라색 꽃대를 아름답게 피워 올리는 그 꽃과 닮은.


liriope-2725033_1920.jpg


작가의 이전글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