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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04. 2022

기가 막힌 빌드업, 우당탕탕 극장골

영화 '비상선언' 리뷰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이 축구 경기에 온 힘을 쏟아붓는다. 그래서 기가 막힌 빌드업으로 모두를 사로잡는 경기력을 선보인다. 하지만 결국 우당탕탕 극장골로 가까스로 한 골 차 승리를 따내며 경기를 마친다. 영화 '비상선언'이 이런 느낌이랄까.  


'외계+인', '한산: 용의 출현'과 함께 올여름 텐트폴 영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비상선언'은 크랭크 인 단계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더 킹'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5년 만의 신작으로, 송강호부터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 근래 보기 힘든 충무로 갈락티코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 국내 영화로는 처음 시도하는 항공 재난 장르인 데다가, 지난해 칸 영화제까지 다녀왔으니 이만큼 기대작은 없다. 


테러가 벌어지는 KI501 항공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하늘과 비행기 테러를 쫓는 지상 동시에 담아내는 '비상선언'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앞서 기가 막힌 빌드업이라고 표현할 만큼 전반부는 압도적인 흥행 승리를 거두려는 야심이 보인 반면, 후반부는 너무 오버페이스 했던 탓인지 맥이 빠지는 요소들이 점점 눈에 들어온다.


테러범 정체를 스토리가 한참 진행된 뒤에 공개하던 다른 영화들의 문법과 달리, '비상선언'은 예고편에서 암시하듯 초반부터 테러범을 공개하는 과감한 선택으로 포문을 연다. 이에 탄력 받아 재난을 향해 누구보다도 빠르게 돌진한다. 이 부분 또한 초중반 앞으로 벌어질 재난의 떡밥 뿌리기를 남겼던 기존 재난 장르물과 차별점을 두고 있다. 


하필이면 아무도 탈출할 수 없는 비행기 내부에서 재난이 일어난다. 어딘가 착륙하기 전까지 함부로 내릴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360도 회전하며 급전직하하는 시퀀스는 공포감과 긴장감을 최대치로 출력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지상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KI501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대응팀의 심경을 간접 체험한다. 여기에 타이밍 좋게 코로나 팬데믹을 떠올리게 만드는 바이러스 테러는 몰입도를 더욱 높인다.



상영시간 90분에 도달했을 때만 하더라도 '비상선언'은 어느 한국 영화보다도 어마무시한 연출력을 자랑한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과 견주어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스케일과 구성이다. 그러나 50분을 남겨두면서부터 거침없던 파죽지세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원치 않았던 클리셰들이 등장해서다.


애초에 피해 지역이 상공에 있는 비행기로 한정되어 있고, 피해자 역시 탑승객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더 이상 피해가 확장될 수 없다. 그렇기에 엔딩까지 도달하는 데 한재림 감독은 재난 영화의 뻔한 관습을 따라간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가 있으면, 혼자 살겠다고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는 캐릭터도 존재한다. 또 인물 간 얽혀있는 전사도 공개된다.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아쉬울 따름.


또 한국사회 현실을 끌어들이며 풍자하고 비판함과 동시에 인간성에 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다만, 이를 강조하는 게 일차원적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나 한 차례 등장 없이 꾸준히 언급되는 대통령, 비상선언을 선포한 한국 여객기를 향해 위협사격하는 일본 자위대 비행기 등은 너무 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단점을 안고 글라이더처럼 뱅글뱅글 하강하는 '비상선언'을 무사히 착륙시킬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영향이 크다. '믿고 보는' 타이틀에 걸맞게 각각 하늘과 땅 두 군데에서 묵직하게 존재감을 뿜어내며 극을 이끌어간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건, 예고편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미소를 장착하며 "나 테러범이요"라고 알렸던 임시완이다. 언론시사회에서 입을 모아 남우조연상 강력 후보라 치켜세울 정도로 이번 영화에서 강력한 아우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이외 한 명 더 꼽자면, 사무장 역을 맡은 김소진도 여운을 남긴다. 특별한 서사가 없으나 영화 흐름에 따라 실시간 바뀌는 감정 변화는 항공 재난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경험하지 않아도 가늠케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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