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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l 14. 2021

무도키즈와 찬스가 공존하는 법

팽팽할 것 같았던 두 세력이 교집합을 찾았다

또 봐?
지겹지 않아?
이제 순서 다 외우겠다.

우리 집에서 어머니와 가장 많이 주고받는 대사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이 말이 그대로 튀어나온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TV를 보고 있는 상황인데, 다만 각자 시청하고 있는 TV 프로그램은 다르다. 나는 '무한도전'을, 어머니는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n차 시청 중이다.


사진=MBC, 이찬원 인스타그램


나는 '무도키즈'('무한도전'을 보고 자란 세대)다. 2005년 MBC '토요일- 강력추천 토요일' 속 코너 '무모한 도전' 시절 황소와 줄다리기하고 지하철과 100m 달리기 대결하던 시절부터 2018년 3월 대장정의 막을 내릴 때까지 꾸준히 챙겨봤다. 웬만하면 토요일 저녁 '무한도전' 방송하는 시간대를 피해서 약속을 잡았고, 불가피하게 본방사수를 하지 못하는 날에는 다시 보기 등으로도 어떻게든 시청했다. 무도키즈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부분 아니던가.  


'무한도전' 끝난 지 3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방송 중이다. 정확하게는 과거에 방영했던 에피소드들을 각종 케이블 채널에서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심지어 OTT 채널인 왓챠, 웨이브에서도 시리즈가 올라와있고, 재밌는 하이라이트만 뽑아놓은 유튜브 '오분순삭'으로도 나온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주로 집에서 점심 먹을 때 TV를 같이 켜놓는데, 특별히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을 경우에 한정에서 '무한도전'을 방영하는 채널을 자연스레 찾게 된다. 어제도, 오늘도 '무한도전' 에피소드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 다른 무도키즈들도 이런 생활패턴으로 소소한 낙을 즐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MBC


그러나 '무한도전'을 주야장천 돌려보며 열광하는 아들내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간혹 재방송 보는 나를 향해 "그깟 예능이 뭔데 그렇게 열심히 보냐", "어차피 뻔한 내용이잖아"라고 망언(?)을 하셨다. 이는 '무한도전'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선 넘는 행위였다. 어머니, 이건 무도키즈들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입니다! 침범에 참을 수 없어 옐로카드를 날렸다.


어머니는 모르신다. '무한도전' 속에 인생을 살아가는 길잡이가 있다는 걸 모르신다. '무도' 1·2인자인 유재석, 박명수의 톤 앤 매너에는 참된 진리가 담겨 있다. 자신보다 타인, 큰 그림을 바라보는 유재석을 따라가면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괜히 '최최유유'(최애는 최애, 유재석은 유재석)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게 아니다. 거침없이 뱉어내는 박명수 화법 속에는 내가 타인에게 상처 받지 않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이 내포되어 있다. 


또 노홍철의 "여러분 재밌는 거 하thㅔ요" 한 마디는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하염없이 긴 인생을 긍정적으로, 강력한 동기부여를 만들 수 있는 인생 길잡이다. 가끔 노홍철의 말들을 살펴보면, 구구절절 써놓은 자기계발서들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가족' 시리즈와 맞먹는 파급력이라는 걸 어머니는 모르신다.


사진=뉴에라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어머니는 틈만 나면 케이블 채널서 무한 재방송하는 '미스터트롯'을 계속 시청하고 계신다. 이미 임영웅, 영탁, 이찬원이 '미스터트롯' 진선미에 당선된 것, 이들과 함께 그룹처럼 활동하는 트롯맨에 누구누구 있는지 이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런데도 '미스터트롯' 재방송하는 채널을 발견하게 되면, 조용히 그 채널을 고정하며 시청하신다. 


특히 '찬또배기' 이찬원이 나오면 하던 일도 멈추신다. 그렇다, 어머니는 우리집 '찬스'(이찬원 팬클럽 이름)다. 정식 가입하지 않으셨으나, 누구보다도 열렬히 방구석에서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신다. 


나도 이찬원의 매력을 잘 안다. 뽀얀 피부에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웃는 얼굴, 청국장 발효시킨듯한 구수한 목소리, 애교가 살짝 묻어 나오는 말투에 순둥순둥한 이미지. 게다가 같은 고향 출신이다. 어머니가 푹 빠져들기엔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어머니 최애 연예인이라서 그런지 생면부지인데도 이찬원을 보면 괜히 정이 갔다. 장동건이 최애라고 밝혔던 어머니의 과거발언은 잠시 묻어두자.


"'미스터트롯' 그만 봐, 지겹지도 않냐"고 잔소리를 하면, 어머니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셨다. 나한테 했던 잔소리를 막상 들으시니 역지사지의 기분을 아셨나 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예능 재방송을 몇 번을 돌려봐도 별 말 안 하셨다. 이건 좋은 점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어머니의 취향을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TV나 스마트폰 등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 가수 노래를 볼륨 크게 빵빵 틀어놨던 것에 반해, 어머니가 뭘 즐겨 듣고 누구 노래를 좋아하는지는 잘 몰랐다.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그중 애창곡이 뭔지는 모른다.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도 모른다. '미스터트롯'을 열렬히 시청하시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트로트를 매우 좋아하신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사진=MBC


자기주장 확실한 무도키즈와 찬스가 서로를 향한 잔소리 어택을 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지대가 최근 하나 생겼다. '놀면 뭐하니?' MSG 워너비 특집이었다. '무한도전' 유재석 1인 버전 같은 '놀면 뭐하니?'에 최애 가수 SG워너비가 오랜만에 완전체로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을 표방한 남성 보컬 그룹을 제작하는 과정이 나에겐 향수를 자극함과 동시에 한껏 기대치를 높였다. 


어머니 또한 SG워너비 스타일의 노래도 좋아하신다. 이 사실을 '놀면 뭐하니?'를 함께 시청하다가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러면서 MSG워너비에 참여한 남자 연예인 8명이 만들어가는 하모니가 마음에 쏙 든다고 평가하셨다. 아직 음원은 듣지 않고 방송으로만 보셨다. 이렇게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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