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Jul 16. 2021

불면증 피하려다 완전 중독됐어

뭐든 오랫동안 하다 보면 지독한 중독이 된다

사진=게티이미지

나는 어디서든 잘 자는 타입이다. 베개에 뒤통수를 대고 눈만 감았다고 하면, 쉽게 곯아떨어진다. 잠들면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도 잘 듣지 못하고 잠에 빠져든다. 누가 잠든 나를 업어가도 못 느낄 정도로 잘 자는 편이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편히 잘 때도 있으나, 쉽게 눈을 붙이지 못할 때도 있다.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만 껌뻑껌뻑한다. 자야 한다고 마인드컨트롤하며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나, 되려 정신이 또렷한 기분만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의식을 잃고 기절하듯 잠들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다.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잠들기까지 과정, 수면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매번 눈꺼풀이 무겁고, 뒷목과 어깨 등이 돌덩이다. 그래서 불면증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게 요즘 발목을 붙잡으며 괴롭히는 고민거리다.


수면을 취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마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직업 특성상 정시에 일을 마쳐도 다음날을 위한 기획 아이템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보고, 여러 미디어들을 보고 나면 언제나 시각은 자정을 훌쩍 넘어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에 직장에서 얻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들과 업무를 처리하면서 점점 예민해지는 신경, 불안감 등이 층층으로 쌓여 불면증으로 이어졌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이유에 카페인 영향도 5~10% 정도 지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정신을 붙잡고 집중해야만 했기에 8시간(보다 그 이상이 될 때도 있고) 주 5일 내내 각성상태 유지는 필수. 그때마다 입 속으로 커피를 탈탈 털어 넣었다. 하루에 한 잔, 두 잔 계속 누적되면서 정신은 필요 이상으로 맑아졌다. 덕분에 새벽 1시가 넘어 2시, 3시가 되어도 눈이 말똥말똥한 상황을 종종 맞이하곤 했다. 


잠이 안 오니,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 액정을 바라보며 목적 없이 이것저것 한다. 블루라이트를 계속 맞으면서 눈은 뻑뻑한데, 졸음도 오지 않는다. 나 자야 하는데, 내일 일찍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데. 재택하더라도 말끔한 정신으로 일하고 싶은데.


사진= '은혼'


종종 겪는 불면증이 나를 포함한 현대 도시 사람들이 겪는 질병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2020년 6월, '소리꾼' 매체 인터뷰 때 김동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불면증이 심했던 그가 서울을 떠나 경기도 가평으로 이사 간 뒤로 심신의 안정을 얻었다고 이야기했었다. 


Q: 과거 김동완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A: '경기도로 가. 서울 아니야 가평으로 가! 아무 데나 들어가서 살아! 너한테 필요한 건 흙과 나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구나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심하게 앓았다.
Q: 토속적인 걸 좋아하는 편인지?" 
A: 제가 잠들지 못한 게 도시가 잠들지 못해서인 것 같다. 가평에 있으면 저희 집 뒤에 반딧불이 있고 아무것도 없다. 이 정도로 조용하나 싶을 정도다. 저희가 실제로 번쩍이는 빛을 많이 보는 게 뇌에 치명상을 준다더라. 그런 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게 병원이나 약이 아니라 자연인 것 같다. 흙을 베고 자는. 블루라이트를 자제하고 10시 이후부턴 핸드폰을 두고 책을 본다. 


지난해 늦은 여름휴가로 잠시 머물렀던 울릉도에서 쉬면서 취했던 일들을 반추하면 김동완의 말이 충분히 맞는 말 같았다. 울릉도가 내뿜는 자연의 숨결을 몸으로 받아들이니 오랜 도시생활로 쌓였던 독소들이 해독되는 느낌이었다. 스트레스와 불안감도 자연 앞에서 내려놓으면서 쉽게 청하지 못했던 수면도 충분히 채웠다. 일어나는 것도 개운했다.


사진='쇼생크 탈출'


그러나 나의 대부분이 도시에 묶여 있었다. 당장 모든 걸 집어던지고 전원생활을 시작할 수 없는 일. 일생일대의 결단 없이는 함부로 모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불면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면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해서 몸의 온도를 높이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재택근무 끝나자마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저녁 먹은 뒤 샤워하고 침대에 눕는 루틴을 만들었다. 에너지를 몸 밖으로 모두 쏟아낸 효과인지, 배터리 충전이 필요한지 자연스레 눈이 감겼다. 초반엔 효과가 있었으나, 몸이 적응해버렸는지 한 달도 채 가지 않아 실패했다.


숙면용 제품을 이용해봤다. 수면용 양말이 발을 따숩게 감쌌고, 이에 몸이 노곤해졌는지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서 꽃피는 봄으로 바뀌어 가는 순간부터 수면용 양말은 헬퍼가 아니라 빌런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겨울이 컴백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작별을 고했다. 예전에 지인이 추천해준 필로우 미스트를 구입했다. 침대에 눕기 20분 전 베개에 잔뜩 뿌리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수면상태에 빠졌다. 이거면 됐다! 라고 안심하던 순간, 몸은 금방 적응해 면역됐다. 필로우 미스트도 2주 천하로 마감했다.


사실 숙면용 제품보다 더욱 확실한 효과를 주는 도구를 발견하긴 했다. 바로 전기장판. 최저온도로만 맞춰놓기만 해도 오래 끌어봐야 10분도 되지 않아 나를 녹다운시키는 어마무시한 힘을 지닌 녀석이다. 마동석이나 드웨인 존슨이 와도 전기장판 하나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런데 전기장판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 번 맛보면 전기장판 영역 밖을 나가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와 침대 밖으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사지를 꾹 눌렀다. 불면증 감옥에서 나왔더니 이번에는 전기장판 감옥이다. 오 마이 갓. 겨울 내내 또 다른 고생을 했었지.


사진=tvN '코미디 빅리그'


다행히 전기장판 중독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빠르게 찾았다. 요즘 유튜브 등에서 스테디셀러로 등극한 자율 감각 쾌감 반응, 일명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솔직히 고백하자면, ASMR을 찾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뭔데 그렇게까지 열광할까, 잠깐잠깐 영상으로 접했을 때는 크게 효과 없어 보였으니까.


ASMR을 향한 강한 불신은 영상을 재생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말끔하게 사라졌다. 귀를 살랑살랑 간지르는 소리를 냈을 뿐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면서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나 귀신에게 홀렸나. 이래서 백색소음을 켜놓고 잔다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


이때부터 자기 전에 무조건 ASMR을 켜 두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 커피 서너 잔 이상 마신 날인데도 ASMR 콘텐츠에 온 신경을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무장해제되면서 곯아떨어졌다. 내가 잠들기 전 마지막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불면증을 치료하는 완벽한 해독제, 만병통치약인 ASMR. 이렇게 해피엔딩을 맞이했습니다!로 마무리하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불면증에 벗어나려다 ASMR에 중독된 것이다. 전기장판 중독과 비슷한 증세를 호소했다. ASMR 영상을 재생하지 않으면, 잠이 도통 오지 않았다. 온몸의 긴장을 풀어 이완시켜도 잘 되지 않았다. 또 계속 새로운 ASMR 콘텐츠와 ASMR 크리에이터를 찾게 됐다. 이러니 유튜브 알고리즘은 ASMR 영상으로 나를 안내하고. 신현준이 금연하려다 금연껌을 끊지 못하는 웃픈 상황이 나에게도 온 것이다. 



ASMR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이제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 거지. 돌고 도는 중독의 고리를 이제 끊고 싶습니다, 선생님. 마음 편하게, 아무 걱정 없이 잠들게 해주시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무도키즈와 찬스가 공존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