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배워도 배워도 계속 리셋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절대 영어회화, 영어교재 바이럴 마케팅 글이 아님을 서두에서 명확히 밝힌다.
요즘 조정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여러 가지이긴 하나, 나에겐 납득이('건축학개론')도 이화신('질투의 화신')도 이익준('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아닌 야나두다. 특별할 것 없는 영어회화 광고인데, 그의 한 마디가 너무나 강렬하게 뇌리 속에 박혔기 때문이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이 한마디는 어디서든 통용되는 만능짤로 거듭났고, 조정석의 대표 명대사 및 필모그래피(?)로 자리 잡았다. 2019년 SBS연기대상서 신동엽의 즉석 영어 소감 제안에도 소화했으니, 이만하면 야나두의 선견지명에 감탄해야겠다.
조정석의 광고 멘트가 모든 이들을 사로잡은 건, 한국인에게 영어가 저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나도, 너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연마한 연차 수가 높아도 전혀 향상되지 않는 늪이다. 거미의 '기억상실' 가사처럼 아직도 보이지 않는 너, 그것이 영어다. 잠깐 돌아서면, 기억상실 걸린 것처럼 잊어버린다.
나 또한 해당사항이다. 영어와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이상으로 서먹서먹한 사이다. 처음 영어를 만났을 때부터 이러진 않았지만.
영어에 대한 첫 기억은 재미를 유발하고 신기함 한가득 안겨준 녀석이었다. 아마 6, 7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고모집이 같은 지역에 있었기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사촌누나 책상서 윤선생 영어교실 교재와 테이프를 발견했다.
그 영어교재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빨간 표지 바탕에 황금색 알파벳이 도배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황금 알파벳을 찾으러 가는 판다와 이를 방해하는 괴물이 그려져 있었다. 이야기도 제법 쏠쏠했다. 괴물의 장난으로 황금알파벳이 '드래곤볼'처럼 전역으로 흩어졌고, 동시에 여주인공 판다도 납치됐다. 왕국과 여자 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남주인공 판다가 찾아 나서는 서사였다. 생각 이상으로 몰입도 높은 스토리와 성우들의 혼을 실은 연기가 내 귀를 사로잡았고, 영어공부라는 걸 잊은 채 몰입했다.
그 여파로 집에 돌아와 어머니한테 윤선생 영어교실 하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서 시작했다. 영어를 재미있게 배운 효과인지 말이 빨리 트이고 무서운 성장세를 그렸다. 이를 앞세워 윤선생 자체 영어 말하기 대회에도 나갔다. 긴장 하나도 하지 않고 술술 말하는 배짱도 보였다. 이만하면 유망주의 싹이 보인다고 해도 되지 않나. 하하핫.
그러다 영어학원으로 넘어가 열심히 영어를 배우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갔다. 조심스레 자기 자랑을 하자면, 당시 교내에서 영어로는 상위 1% 이내 수준이었다. 영어학원에서 주최한 말하기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여름방학 때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약간 재수 없겠지만, 조기교육 성공 사례의 표본이 나 자신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들떠있었다.
이 기세를 그대로 이어갔다면, 윤선생 영어교실이 낳은 최고의 아웃풋 중 하나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꽃길이 지나면 흙탕물을 맞이하듯, 순탄할 것만 같던 영어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만난 문법이 첫 번째 암초로 맞닥뜨린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병행은 현재진행형이었기에 어렵진 않았다. 다만, 문법을 이해해서 배우는 게 아닌, 암기과목처럼 달달 외우는 공부 방식에서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꼈다. 마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 사람이 실생활서 전혀 몰라도 되는 어법, 문법 꼭 외우라고 강요받는 기분이랄까.
여기서 영어와 1차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영어와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니 자연스레 학업성적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확 떨어진 성적을 보신 부모님은 "네가 영어 공부한 지 몇 년인데, 성적이 이 모양"이라고 심한 말을 하셨다. 저에게 모욕감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지리한 문법 때문에 영어가 노잼인걸요.
인생은 재밌는 것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진리를 빨리 깨우친 게 다행이었다. 대학교 진학은 해야 하니까 수능시험용 영어에 어떻게든 매달렸고, 좋은 등급을 받아 큰 고비 하나 넘겼다. 대학생이 되면, 이제 '지겨운 영어공부'에서 해방되는 줄 알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토익이 다음 순번으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분명 영어인데 듣도 보도 못한 처음 보는 용어들, 학창시절 내내 지겹게 따라다니는 문법들이 괴롭혔다. 토익 속 영어들은 실생활이나 직장서도 거의 쓰지 않는 게 다반사인데 왜 이걸 배워야 하나 꾸준히 현타가 왔다. 억지로 해야 한다는 마음이 완수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이겨버렸던 건지 남들은 몇 달 공부해서 나온다는 토익 만점 990점,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 모의시험에서조차도 900점대는 진입했던 기억이 없었다. 솔직하게 고백하는 거다. 그런데 해외여행 시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는 막힘이 없다. 툭 치면 언제든지 튀어나올 프리토킹은 준비됐다. 이런 걸 보면 토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하등 도움 안 되는 영어공부임이 틀림없다.
대학교 졸업 후 다시 한번 영어와 거리두기를 했다. 군 생활,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한국어를 가장 많이 쓰지,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고 읽을 일은 매우 적었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까먹는다고, 영어 쓸 일이 없다시피 하니 말 한 번 꺼내는 데에도 버퍼링 걸리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자신 있었던 영어 프리토킹도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 SNS 바이럴 마케팅하던 영어스터디를 호기롭게 신청하며 붙잡으려고 했다만. 이런저런 이유가 하나둘 붙고, 결국 중도하차행 티켓을 끊고야 만다.
이번에는 중도하차행 기차를 타지 않으려고, 최근 다시 영어공부하려고 스터디그룹을 신청했다. 이 스터디그룹은 토익, 오픽 등 취업뽀개기 혹은 승진용 아니고 순수하게 영어회화하기 위함이다. 상담할 때 대부분 직장인이라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는데, 이는 거짓말이었다. 자기소개하다가 내가 제일 연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 마이 갓.
영어를 배우는데 나이가 뭣이 중헌디, 열심히 배우려는 노력과 열정이 중요하지. 그렇긴 한데... 젊은 친구들의 유창한 말솜씨에 살짝 기가 눌렸다. 밖으로 티 내진 않고 마음속으로만 감탄했다. 이번에는 문제없이 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