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상관없는 이야기인줄 알았지, 군대 가기 전까진
TV를 돌려보다가 우연히 '간이역'을 보게 됐다. 게스트로 나온 김우석은 몸관리 방법을 묻는 질문에 "저는 살이 빠져서 더 먹어요. 먹어도 잘 안 찐다"고 답했다. 일명 '모태마름'이다. 물론 그는 많이 먹지 않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많이 먹어 본 양을 묻자, 김우석은 "살이 확 빠져서 화면에 보기 안 좋을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칼로리 제일 높은 걸로 달라고 해서 하루 세 끼로 먹었다"고 말했다.
김우석의 발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김우석처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 모태마름이었으니까. 잠깐 망언을 하자면, 하루 세끼를 먹고 종종 야식이나 군것질을 하더라도 웬만해선 살이 찌지 않았다. 인생 최고 몸무게를 고백하자면 58kg이었다. 남들보다 왜소한 체격이긴 하나, 성인 남성 기준에선 매우 가벼운 편인 건 확실하다. 아이돌 그룹 멤버가 아닌 이상 이 정도는 엄격하게 잡아도 슬림계 상위 5% 이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한 달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더니 2kg나 빠지는 결과물을 낳기도 했다. 빠지면 빠졌지, 찌는 편이 아니었다.
남들은 다이어트한다고 헬스장을 방문했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너무 깡말라서 근육을 키워 조금이나마 볼만한 외관을 만들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렇다고 근육도 금방 붙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건 내 체질이자 운명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대학교 국제기숙사에서 생활할 때 에피소드 하나. 룸메이트인 과 동기 A는 가냘프고 슬림한 내 모습을 미간을 찌푸리며 관찰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A: 야, 니 너무 심한 거 아이가?
나: 갑자기 뜬금없이 뭔 소린데?
A: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몸이 얇을 수가 있는데!
나: 살 안 찌는 체질이라 그렇다.
A: 그런 게 어딨노. 내가 니 살 찌워준다. 함 두고 봐라!
열의에 불탄 A는 일주일 안에 2kg 이상 살을 찌우겠다고 호기로운 목표를 내세웠다.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A의 플랜은 간단했다. 삼시세끼 식사 이외에도 야식 2끼씩 먹으면 충분히 살찐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체중 증량 프로젝트는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아 중단됐다. 나를 살 찌우겠다고 같이 먹던 룸메이트가 되려 3kg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계속 하루 5끼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마의 58kg를 절대 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이를 본 A는 "니한테 졌다. 니 괴물 아이가"라고 놀라워했다.
모태마름은 입대 후에도 이어졌다. 슬림을 유지하면서 허구한 날 체력단련을 하다 보니 보디프로필을 찍어도 될 만큼 근육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관하고 초군반 초기 때가 몸상태 리즈시절이었다. 그때 보디프로필 남겨둘 걸 왜 생각 못했던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보디프로필 꼭 찍으라고 몇 번이나 강조할 테다.
불변의 자연법칙이었던 한반도 사계절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변해 가는데, 모태마름 또한 영원할 리는 없었다. 나 자신을 너무나 과신했고, 방심했다.
장교 생활 3년 끝자락에 다다를 때쯤이었다. 전날 당직근무를 마치고 정오에 퇴근하던 중 씻고 귀가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대 내 간부 목욕탕을 들렀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와 체중계에 올라섰는데... 이상하다. 왜 앞자리가 6이 됐을까? 전자 체중계는 '65kg'라고 알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언제 7kg 살크업이 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의 거른 적 없는 야식과 영양분이 부족한 기름진 식단이 원인이었다. 당직을 서면 밤새다가 야식 먹는 건 하나의 코스였고, 퇴근하다가도 혼자 배달시키거나 후배 장교들과 자주 즐겨 먹었다. 그리고 저녁을 대체로 기름지거나 인스턴트 위주로 먹었다. 김우석에게 일갈하던 김준현의 말처럼 그전까지는 '노력을 안 해보고 안 찐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제야 심각성을 느끼고 생애 처음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예전에는 많이 움직여서 금방 빠졌기 때문에 이 방법이 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사회는 다이어트하도록 쉽게 놔두질 않았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보다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졌다. 한정된 움직임 덕분에 아랫배는 이때다 싶어서 세력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올챙이배를 선물했다. 이 녀석이.
막상 헬스장을 끊어놓으면 많이 이용해봐야 일주일에 2, 3일이 최대였다. 평일에는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이는 귀가시간으로 이어졌고, 헬스장을 다녀와 집에서 쉬었다가 잠드는 시각까지 늦어진다는 삼단논법이 형성된다. 퇴근을 일찍 하더라도 회식이나 개인 약속이 잡히게 되면, 또 이것이 사유(핑계지)가 돼 "다음 기회로" 미뤘다. 주말은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많으나, 평일 내내 노동에 온 힘을 쏟아부은 여파로 체력 보충한다는 합리적인 핑계로 게을러졌다. 그래서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지. 작년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5kg 감량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가운데에도 몸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재택근무가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동네 헬스장으로 직행해 최소 1시간 반 이상씩 운동하고 있다. 한때 격상돼 실내체육시설 이용 제한이 걸렸을 때에는 홈트레이닝하거나 동네 한 바퀴 걷기 등으로 칼로리를 열심히 태웠다. 그리고 꽤 효과적이라는 간헐적 다이어트도 하고 있다. 24시간 중 오직 8시간 먹고 나머지는 공복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출근하는 날 아니면 무조건 점심과 저녁, 그 사이 간식거리만 챙겨 먹고 있다. 그렇다, 다이어트에 누구보다도 진심인 것이다.
운동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몸도 어느 순간부터 적응했다. 매번 더 큰 자극을 주거나 더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지 않으면, 살이 좀처럼 빠지질 않았다. 특히 아랫배는 눈치 없이 방 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놈의 뱃살 때문에 29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때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수년 전만 해도 이런 고통은 없었는데... 사투를 벌일 때마다 과거 방심했던 나를 질책했다.
뱃살, 그리고 다이어트와의 전쟁.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고지전을 하듯, 매일 하루하루 고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 고달픈 싸움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이길 것이다.
P.S : 모태마름은 영원하지 않다. 진정 살 찌우겠다고 하는 열정적의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체질이 바뀐다. 그러니 모두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