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Jul 06. 2021

모두가 궁금한 나의 MBTI는.

혈액형 별자리 넘어 MBTI도 궁금하니?

사진=Jake Beech
혹시 MBTI 어떻게 되세요?

요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그러다 상대방과 같은 결과가 나오면 동지라며 반갑다고 급 친밀감이 형성되고, 호기심을 끌만하거나 혹은 (상대방 기준에서) 접하기 드문 MBTI가 나오면 흥미를 가진다. 그래서 MBTI 하나만 꺼내도 제법 지루할 틈 없는 소소한 스몰토크를 이끌어낼 수 있다. 


또 연예인들 MBTI를 TV나 다른 매체에서도 공개하고 있을 만큼 유행이다. 어느 정도냐면, 나무X키는 같은 MBTI 결과가 나온 연예인들을 묶어서 정리하고 있다. 가수 박문치는 MBTI로 노래까지 발표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가 MBTI를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한다. 


"여러 번 했는데 그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와요." 

"몇 번 해봤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건 OOOO이던데요?"


일부 MBTI 맹신론자로 추정되는 이들은 "테스트 잘못 받으신 거 아니에요?", "그 테스트 어디서 하셨어요. 공식 테스트로 받으셔야 해요"라며 이때다 싶어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초면에 반말을 넘어선 무례한 스트레이트라니.


MBTI 열풍을 보고 있자면, 과거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혈액형 성격설이 자연스레 생각났다. 이 비과학적이고 근거 없는 이론은 주로 좋아하는 이성과 궁합을 볼 때 많이 사용됐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다혈질이며 O형은 핵인싸, AB형은 어딘가 모를 똘기가 넘친다고. 이런 식으로 정리했는데, 계속 읽다 보면 처음 혈액형 성격론을 지어낸 사람이 O형이 아닐까 의심이 된다. 분명 O형 우월주의를 전파하려고 지어낸 주작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유독 O형에게만 좋은 내용이 많을 수가 없다. 


수혈할 때만 영향력 있는 혈액형인데 성격이 정해져 있다고 굳은 신념을 가진 이들이 눈에 띄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넌 그런 걸 믿냐"고 한마디 날리곤 했다. 그러면 "네가 뭘 알아"라고 돌아왔다. 혈액형 테스트 자매품으론 별자리 테스트가 있었다. 별자리 테스트도 참 지겹도록 따라다녔다. 


그에 비하면 MBTI는 비교적 체계적인 틀을 갖추고 있다. 캐서린 쿡 브릭스와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스 모녀가 만든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일명 MBTI는 카를 융의 성격 유형 이론을 근거로 개발한 성격 유형 선호 지표다. 혈액형, 별자리 궁합처럼 완전 소설은 아니다.


첫 MBTI 테스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토요일 자기계발 수업한다고 야외수업 겸 반 전체로 학교 인근 문화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담임선생님은 A3 사이즈 크기의 시험지처럼 생긴 종이 묶음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인·적성 검사처럼 엄청나게 많은 문항을 담은 종이를 빨리 덮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체크했다. 테스트 결과는 ENTJ. 나 혼자 ENTJ가 나와서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됐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한반도에 MBTI 유행이 수면 위로 떠오르던 지난해. 주변에서 한 번 테스트받아보라는 강한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총 4번 테스트한 결과 ENTJ 2번, ESTJ 1번, ENFJ 1번 나왔다. 내가 ENTJ에 가깝다는 의미겠지.


MBTI 결과에 따르면, 나는 외향형(E)이고 직관형(N), 사고형(T)이자 판단형(J)이다. 타고난 지도자형이란다. ENTJ에 적합한 직업은 외교관, 정치인, 장교, 변호사, 기업인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5월 16 Personalities 공식 홈페이지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선 한국서 ENTJ가 16위 중 16위로 가장 드문 유형이라고 나왔다. 그래서 클럽하우스 초창기에 '한국서 가장 극소수 ENTJ 방'이 잠깐 흥행했다. 그때 몇몇 이용자가 "우리는 유니크하니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희귀하다고 통계가 말해주니 좋긴 한데, 위풍당당할 만큼인지는 모르겠다.


검사 결과가 어느 정도 맞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사교모임이나 외부활동,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그런 자리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설렌다. 가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고 힐링이 된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내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걸 즐긴다. 잠깐 자랑을 하자면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을 정도로 말 표현도 잘했다. 이런 걸 보면 E형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상대방과 대화하다 보면 감정 공감도 하긴 하나, 주로 논리적, 이성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피드백도 종종 받았다. MBTI를 맹신하는 지인들이나 직장동료들 말에 따르면, 확신의 T형이 나란다.


그런데 MBTI로 나라는 존재가 정의되고, 한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건 달갑지 않았다. 외향적이긴 하나, 때로는 상황에 따라 천천히 관망하거나 지켜보고 조용히 넘어갈 때도 있다. 측정 결과가 다른 행동을 보이면, 이상하게 바라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과가 여러 개 나오면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며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반응도 보인다. 


편견 아닌 편견으로 상대방을 가둬둘 때도 있다. 누가 최초로 퍼뜨렸는지 모르겠다만, 'ENTJ=돌+아이'라고 MBTI 과몰입자들 사이에서 소문났다. 그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한 사람은 초면에 나의 MBTI를 듣고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주변사람 피곤하게 만드시겠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적도 있다. 그게 너스레냐, 면전에서 조롱한 거지!


영화 드라마에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리는데, 현실 사람은 어떻겠나. 환경이 변화하면 성격도 바뀌는 것처럼 하나로 정의할 수 없겠지. 그런데도 MBTI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구분한 16가지 내로 분류하려고 애쓴다. 사실 하나하나 반박하면 이 테스트 또한 비과학적인 이론을 기반 삼았고, 사람의 성격은 16가지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하다. 누구나 내향적이고 외향적이면서 감각적이고도 직관적이고, 사고적이면서 감정적, 판단적이고도 인식적일 텐데. 


MBTI로 그만 판단해주세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So long partner, 해리포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