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Jun 29. 2021

So long partner, 해리포터!

오랫동안 함께한 '해리포터'와 뜨거운 안녕


가끔 남들이 볼 만한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항상 이야기한다. 우디와 버즈가 속한 장난감들의 여정 속에서 쌓이는 진한 감정선들과 훈훈함, 뭉클함이 진하게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와서다. 픽사 애니메이션에 덕질하기 시작하게 된 근원에는 이 '토이 스토리'가 있었다.


그중 '토이 스토리 3'는 지금까지도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장난감 친구들이 주인 앤디와 뜨거운 안녕을 하는 엔딩신 때문이다. 어느덧 장난감 가지고 놀 나이가 지난 앤디는 장난감들에게 어울릴 새 주인을 찾아줬다. 특히,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우디를 목마 태우고 노는 앤디의 모습은 '토이 스토리' 1편에서 보여준 두 캐릭터가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교차하게끔 만들며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떠나면서 슬픈 표정으로 "Thanks Guys(고마워 얘들아)"라고 나지막이 인사하고 떠나는 앤디와 그를 향해 우디는 "So long, Partner(잘 가, 파트너)"라고 덧붙이는 한마디는 잊을 수 없었다. 클립으로 다시 봐도 여전히 뭉클한 감정이 온천수처럼 용솟음친다.


갑작스레 '토이 스토리'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아주 쪼오오끄으음 비슷한 일을 겪어서다. 20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파트너 '해리포터'를 출가시켰다.


최근 개인적인 장기 프로젝트로 '내 방 비우기' 작업이 한창이다. 이 프로젝트는 충동에서 시작됐다. 어느날 문득 의자에 앉아 방을 가만히 돌아봤다. 서랍과 수납공간 등에 온갖 물건과 잡동사니들이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광경에 눈에 들어왔고, 이는 심히 거슬렸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가슴 한 편이 답답했다. 요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어서인지 tvN '신박한 정리'가 인상적이었는지 단순 책상 위 정리가 아닌, 방에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물건들 모두 화끈하게 치우고 싶었다.


하루아침에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하나하나 비우다 보면 함부로 버려선 안될 것들(개인 신상정보처럼 민감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들)이 지뢰처럼 꾸준히 등장했다. 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의 물건들도 튀어나왔다. 나는 미끼를 문 것이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그래서 제 속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비워내고 있는 중이다. 올해 안에는 끝마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던 중 책장 한 곳을 차지해왔던 '해리포터' 소설들을 발견했다. 이 녀석들과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11월 말쯤, 학교를 다녀왔더니 책상 위에는 처음 보는 책 두 권이 놓여있었다.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네 어머니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어머니가 책을 사오셨다. "요새 잘 나간다는 책이라는데"라는 어머니의 한 마디에 별 생각 없이 책장을 펼쳤다. 마법사 이야기네, 판타지인가? 반에서 몇몇 애들이 돌려보던 퓨전판타지 소설과 비슷한 건가. 그 책들에 비해 장벽은 낮네. 그러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책 두 권을 다 읽어버렸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상·하권을 하루 만에 독파했다.


그렇게 '해리포터'를 쓴 사람이 누군지 배불뚝이 모니터를 통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네 차례야 검색해줘 ADSL! 소설을 쓴 사람은 조앤 캐서린 롤링. 어라, 영국 소설이네. 영국에선 벌써 '아즈카반의 죄수'까지 나왔어? 왜 한국엔 '마법사의 돌'만 나온 걸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다행히 몇 주 지나서 2편 '비밀의 방' 출간됐다. 그런데 어머니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너무 간과하신 나머지 친구한테서 빌려보라고 하셨다. 나 또한 이후 '해리포터'가 전 세계를 쓸어버릴 줄 예상 못했기에 수긍했다. '아즈카반의 죄수' 편도 친구한테 빌려봤다. 계속 빌려 읽는 게 싫었고, '불의 잔'부터 내돈내산했다. 그때 2~3편도 같이 샀어야 했는데, 왜 못했을까.


다음해인 2001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법사의 돌'이 영화로 나온단다. 해리 포터, 대단한데?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감명 깊게 읽은 아이들끼리 해리 포터를 비롯해 론 위즐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연기할 아이가 누굴까 이야기 나누며 한껏 기대했다. 개봉 전 선공개된 스틸 사진을 보며 "엄청난 싱크로율이다"라고 환호했다. 이들을 필두로 '해리포터' 세계관 속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책을 찢고 나온 듯한 싱크로를 자랑했다.


아쉽게도, 놀라운 건 이게 전부였다. 소설로 선독후 영화로 후감상했더니 내 입에선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라고 혼잣말을 반복했다. 읽으면서 상상했던 부분과 연출자의 묘사간 괴리가 제법 많아서였다. 책을 영화화로 각색한 작품을 원작소설로 먼저 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활자로 접하면서 생각했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라고. 모든 독자들이 상상했던 이미지를 100% 만족시킬 순 없을 테니.


2007년 12월 마지막 편 '죽음의 성물'을 완독한 뒤, '해리포터' 시리즈 소설을 더이상 찾지 않았다. 엔딩까지 모두 확인해서였는지 이후 나오는 영화판을 연달아 봐서인지 애정이 식고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마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장난감을 찾지 않게 된 앤디처럼 말이다. 다락방에 처박힌 장난감들처럼, 나 또한 소설책 시리즈들을 책장 한쪽에 꽂아둔 뒤 잊고 지냈다. 그러다 최근에야 '해리포터' 시리즈 존재를 재인지했다.


'마법사의 돌'부터 '불의 잔', '불사조 기사단', '혼혈왕자', 그리고 '죽음의 성물'까지 19권 모두 초판이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는데도 상태는 깨끗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읽을 때 매우 재밌기도 했으나, 당시 100% 활자로 된 책을 읽는 걸 싫어했던 나에게 집중력과 몰입도를 키워주며 독서습관에 많은 도움을 준 친구이기도 했다. 오랜 추억을 지니고 있으나, 더이상 추억용으로 묵혀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당근마켓을 통해 필요한 이들에게 중고판매하기로 결정했다.


당근마켓에 판매글을 올리기 전, 알라딘으로 '해리포터' 시리즈 초판의 중고 매입가를 검색해봤다. 20년 이상 함께한 시간에 반비례해 권당 1000원도 못 미쳤다. 알라딘, 네가 추억과 가치를 알긴 하냐! '해리포터' 초판의 중요성을 너무 얕잡아보다니. 그렇다고 깨끗한 상태와 초판이라는 이점을 내세워 비싼 값에 매기는 건 양심 없어 보였다. 그래서 최초 구입가에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게재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는 당근마켓에서 실감했다. 글을 게재하자마자 구입의사를 밝히거나 가격 흥정을 하려고 시도하는 이용자들로 넘쳤다. 알라딘, 넌 역시 '해리포터'의 가치를 너무 몰라. 중고판매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불과 며칠 만에 우리집에서 전원 독립했다. 구입할 사람들과 약속시간을 정하고 책을 종이가방에 조심스레 넣을 때만 하더라도 무덤덤했다. 그런데 직거래하러 책을 들고 나가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 않았다. 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켕기는 듯한 이 기분은 뭐지.


직거래 장소에서 구매자들과 각각 만났다. 구매자들이 책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오갈 데 없는 두 손은 호주머니 입구만 만지작거렸다. 돈도 받았으니 이제 각자 갈 길 가면 되는데, 내 시선은 자꾸만 구입자 손에 쥔 종이가방으로 향했다. 나만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걸까. 앤디가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장난감을 보니에게 주고 떠날 때 심정이 이랬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양 손은 무척이나 가벼웠고, 마음은 공허함으로 채워졌다. 그렇다고 이들을 평생 안고 가기엔 두 번 다시 펴지 않을 책에 대한 무책임. 그러다 먼지가 쌓인 채 세월만 먹어가겠지. 떠나보내는 게 맞다. 맞는 걸 아는데도, 마음은 아직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땡쓰, 해리포터. 쏘 롱 파트너, 해리포터. 이제 너희들도 새로운 주인들에게 사랑받아라.

매거진의 이전글 11살 나에게 전하는 진지한 한마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