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의 나라' 리뷰
영화 '행복의 나라'는 공개 타이밍이 아쉽다. 비슷한 시대 배경을 소재 삼은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 온 뒤에 개봉됐기에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영화를 보고 온 많은 관객들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다. 실제 10.26 사건과 12.12 사태를 배경으로 이를 관통하는 재판의 대상인 실존인물 박흥주 대령의 이야기를 팩션으로 다룬다.
격동의 상황 속에서 극을 끌고 가는 건 추창민 감독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주인공 정인후다. 이념 대립이나 거대 담론엔 관심 없고, 직업적 소신도 없는 캐릭터로 자신의 신념 때문에 가족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분노해 세속적으로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아버지와 닮아있는 박태주를 변호하며 비정한 시대의 야만성에 분노하고 충돌하면서 싸운다.
그러면서 '행복의 나라'는 정인후와 박태주, 두 사람과 16일간 졸속으로 이뤄진 재판과정을 통해 역사적 사건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깊게 들여다본다. 10월 26일과 12월 12일, 두 사건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와 희생된 사람들에 더 호기심이 생긴 추창민 감독의 기획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더불어 정인후와 박태주라는 두 인물을 통해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신념과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되돌아보게 한다.
정인후를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정인후에 공감하고 몰입한다면 그와 함께 뜨거워지겠지만, 뜨거워지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올드하고 진부하게 다가온다. 후자를 택했다면 아무래도 시대의 아픔 속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이 추창민 감독의 상상력이 비범이 아닌 평범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먼저 개봉한 '서울의 봄'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행복의 나라'가 먼저 개봉했고, 대형 사건, 상징적 인물들을 픽션과 팩트를 여러 톤으로 다채롭게 사용했으나,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무기들이 부족했던 셈이다.
전자의 관객들처럼 가슴이 먹먹하게 다가왔다면, 평범한 상상력에 몰입하게 만든 배우들의 열연이 컸을 것이다. 정인후를 연기한 조정석은 2주 전 개봉한 자신의 주연작 '파일럿'과는 180도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다가도 울분을 토하고 감정을 터뜨리면서 자신의 연기 A부터 Z까지 다 쏟아낸다. 그가 대세 배우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행복의 나라'가 마지막 작품이 된 故 이선균의 존재감도 강하게 다가왔다. 박태주로 분해 인물의 우직한 면모를 깊은 눈빛으로 표현한다. 후반부 박태주로서 정인후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사와 모습이 마치 관객에게 남기고 떠난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