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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Oct 13. 2024

액션과 혼란이 충돌해 탄생한 칼춤

영화 '전, 란' 리뷰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이례적으로 OTT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알겠다. 모니터나 TV화면으로만 시청하기엔 아까운 퀄리티 높은 작품이 나왔다.


'전쟁으로 인한 난리통'이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영화 '전, 란'은 두 차례 왜란을 겪으며 양반의 아들 이종려(박정민)와 몸종 천영(강동원)이 빚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다. 


'전란'이라는 단어 한가운데 쉼표를 찍어 나눈 것이 눈에 띄는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메시지를 상징한다. 먼저 싸움 전(戰), 이는 두 주인공 종려와 천영의 개인적인 갈등을 의미함과 동시에 이 영화의 장르가 액션 영화인 점을 상징한다. 이어 어지러울 란(亂), 영화 속 패러다임을 둘러싼 혼란한 시대를 담아낸다. 그리고 숨어있는 단어인 다툼 쟁(爭)을 통해 다툼이 벌어짐을 암시한다.


그러면서 정작 전란이라는 말을 담고 있는 전쟁에 대해 비중 있게 그리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시대적 배경인 임진왜란 7년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대신 무서운 기세로 북진하는 왜군 부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허겁지겁 피난 가는 선조(차승원) 일행과 아비규환에 빠진 백성들, 불타는 경복궁, 종전 후 처참한 상처만 남은 조선 전역의 모습 등으로 전란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대변한다. 



'전, 란'은 액션 영화로서 본질을 잊지 않고 100% 재현한다. 영화 속 액션의 지분 1위를 차지하는 천영 역의 강동원이 극 전체를 이끄는 선봉장으로 맹활약한다.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화려한 검술 액션을 펼치는 그의 존재감은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형사 Duelist',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에 이어 '강동원의 사극액션영화=맛집' 공식을 다시 한번 인증한다. 


동시에 신분 차이로 엇갈리는 두 남자의 운명과 이들이 살아가는 혼란스러운 시대상 또한 볼만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평등'을 꺼낸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기존 체제가 흔들리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세워야 할 조선의 체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충돌한다. 기존 패러다임을 수호하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 그래도 인정하려는 자와 어쩔 수 없이 포기해 버린 자, 그리고 탈출하려는 자와 전환을 시도하는 자를 그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운명을 향해 밀어붙이며 전진한다. 


그 과정에서 아쉬움도 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긴 하나, 이들이 가진 생각이나 변화 과정까지 정교하게 담아내진 못했다. 아무래도 천영과 종려, 속칭 '혐관 서사'로 일컫는 비극적인 브로맨스에도 무게를 둬야 하기에 어떤 부분은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급정리되기도 했다. 평등을 담은 메시지를 대중에 전달할 힘이 조금 부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전, 란'의 단점을 상당 부분 상쇄하는 게 배우들의 열연이다. 박정민,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등이 출연해 존재감을 뽐내는데, 그중에서 선조 역할을 맡은 차승원이 도드라진다. 시대의 변화와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며 시대착오적인 관념과 행동을 취하는 선조를 왕조의 위엄을 뺀 채로 연기하며 분노를 유발한다. '무능함의 아이콘' 선조를 연기하는 데 새로운 지침서를 마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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