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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우주 SF 장르 불모지'다?

라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전합니다.

by J Hyun


아직까지 한국 관객분들이 SF를 대하는 거리감이 상당하다고 느꼈다. 우리나라 과학 기술을 조금 더 존중하는 문화가 됐을 때 더 멋진 우주 영화를 가지고 돌아오겠다.

-영화 '더 문' GV, 김용화 감독 발언 中-


때는 2023년 8월 3일, 영화 '더 문' 영화 연출을 맡았던 김용화 감독이 GV 행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280억 원 가량의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음에도 '더 문'의 누적관객 수는 겨우 51만 명을 기록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상영된 영화들('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오펜하이머' 등)이 흥행을 이어갔던 것과 대조적인 성적이었고, 결국 '더 문'은 개봉한 지 3주 만에 눈물을 머금고 극장에서 VOD로 이동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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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의 발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대중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영화의 흥행 실패 원인을 관객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김용화 감독이 이러한 발언을 하게 된 건, '한국은 우주SF 장르 불모지'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들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턴가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SF 장르가 인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예로, 전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덤을 보유한 '스타워즈', '스타트렉' 시리즈가 유독 한국에서만 큰 반응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든 우주 SF 장르 작품인 '승리호'(제작비 240억 원), '고요의 바다', '외계+인' 1부(이상 제작비 300억 원), '정이'(제작비 200억 원) 등이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음에도 반응이 영 신통치 못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도 '한국=우주 SF 불모지'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로 추가됐다. 한국 드라마 최초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한 우주 SF 장르로, 약 500억 원의 엄청난 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해 1년간 사전 제작했다. 여기에 '드라마 흥행 불패 신화'의 아이콘인 공효진과 글로벌 스타 이민호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관심을 불러모았다. 하지만 16회 동안 방영하는 내내 '별들에게 물어봐'의 최고 시청률은 2회에서 기록한 3.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가 최고 수치였다. OTT 플랫폼 등으로 인한 시청 형태 다양화로 TV 시청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흥행 참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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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물어봐'가 초라하게 퇴장하면서 국내 영화/드라마업계는 초비상이다. 200억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들이 부진하게 되면, 투자자들이 후속 투자에 몸을 사리게 될 것이고 앞으로 대작을 만들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반응이다. 대작들이 연달아 흥행참패한 후폭풍으로 2025년에 제작/배급 모두 참여한 영화를 겨우 1편('어쩔수가없다') 공개하는 CJ ENM 같은 사례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용화 감독을 비롯해 '한국=우주 SF 불모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간과한 사실들이 있다. 영화를 예로 들면,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에서 우주 SF 장르를 띠는 흥행작들이 제법 많다. '천만 영화' 리스트에 추가된 '인터스텔라'(1037만 7691명)부터 '마션'(488만 7114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420만 9250명), '그래비티'(331만 3307명) 등이 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우주 SF 장르에 속하는 영화 '미키 17'도 지난 2월 28일에 개봉한 이후 순항 중이다. 개봉 2주차에 누적관객 수 248만 7423명(2025년 3월 15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주 SF 장르는 한국에선 인기 없다'라는 주장을 보란듯이 반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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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한국 영화들에 비해 제작비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실제 국내에서 대작 규모로 언급되는 2~300억 원대는 할리우드에선 저예산 수준으로 꼽힌다. 지난해 3월 개봉했던 '듄: 파트 2'는 1억 9000만 달러(약 2532억 원)이며, '미키 17'는 1억 1800만 달러(약 1628억 원)이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 영화들이 최고의 가성비를 뽐내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드라마 제작자 및 감독 등 업계에서 또 하나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대중이 우주 SF 장르에 관심 없는 것이 아니라, 우주 SF 장르를 통해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노잼'이어서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이다.


흥행 참패 이유를 SF와 거리두기하는 관객 탓으로 돌린 김용화 감독의 '더 문'이 왜 선택받지 못했는지 이유를 설명해보겠다. 언론시사회 직후 기자들의 평부터 실관람객까지 진일보한 VFX를 기반으로 달에 착륙하기까지 과정들을 실감나게 구현해 우주를 체험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며 SF의 기술력은 모두 인정했다. 그에 반해 '더 문'의 스토리가 문제였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인물 간 얽힌 관계나 전개, 개연성 등은 물론이며 중요한 순간마다 터지는 김용화 감독표 눈물착즙용 신파코드가 몰입도를 떨어뜨린 것이다.


관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제작진의 창의력 부재로 인해 '더 문'은 흥행 실패였고, 김용화 감독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비겁하게 관객 탓으로 돌리는 망언을 남기며 스스로 흑역사를 생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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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물어봐'가 대실패한 이유도 '더 문'과 비슷하다. 우주정거장과 지구를 오가면서 '연애하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게 시청자들에게 반감 사기 충분했는데, 극본을 맡은 서숙향 작가가 이를 아침드라마 식으로 풀어냈으니 혹평을 면치 못했다. 드라마 처음부터 끝까지 '왜 우주에 나가서까지 연애하는 이야기를 봐야할까?'는 질문의 해답을 주지 못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우주와 자궁을 억지로 연결지으려는 시도, 극 내용과 상관 없는 베드신 남발, 재벌가가 대를 잇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우주에서 인공 수정을 시도한다는 설정, 뜬금없는 출생의 비밀 등 짜게 식은 클리셰까지 시청자들이 이탈하는 사유는 차고 넘쳤다.


결국 우주 SF 장르의 문제가 아닌 대중을 사로잡을 스토리의 부재가 문제인 셈이다. 대작들의 흥행 실패로 영화, 드라마 산업이 위축될 것을 걱정하기 앞서,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지 계속 고민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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