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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18. 2021

황정민이 차린 새 밥상, 먹을만해

영화 '인질' 리뷰

94분짜리 '인질'을 보고 있자면, 황정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베테랑'에서 그가 직접 남긴 명대사가 생각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화려하게 만들진 못했더라도, 여기저기 휘둘리지 않고 감독 소신대로 만들겠다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우직하게 나가서다.


이 영화는 개봉 전 홍보문구에서 나온 것처럼 '황정민의, 황정민에 의한, 황정민을 위한' 영화다.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황정민이 납치되어 인질이 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 그래서 궁금했다. 그가 표현하는 인질이 된 톱배우 황정민은 어떤 모습일까.


황정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천만 배우' 타이틀에 걸맞은 존재감과 열연을 펼쳤다.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던 '밥상' 소감을 시작으로 납치된 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까지. 현실이 아닌 페이크 다큐인걸 알면서도 너무나 리얼했다. 또 절친 박성웅의 특별출연과 실제상황 같은 후반부 어색한 액션 또한 몰입도를 한껏 높이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94분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그는 영화를 이끌었다.



톱배우가 인질이 된 설정인 만큼,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황정민을 납치하는 인질범 5인방은 일반 관객들의 눈에 익지 않은 신선한 얼굴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염동훈을 연기한 류경수가 지난해 방영한 JTBC '이태원 클라쓰'로 눈도장받으며 인지도를 쌓긴 했으나, 그와 함께 한 팀을 이룬 다른 인질범들의 얼굴은 생소한 건 사실. 


특히 인질범 리더 최기완을 맡은 김재범은 '인질'이 발굴한 새로운 발견이다. 최기완의 서늘한 얼굴과 피도 눈물도 없는 소시오패스적 기질이 드러날 때마다 자세를 고쳐 잡게 만드는 등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얼마큼 영향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뉴페이스 발견은 기쁜 일이긴 하나, 이들이 연기한 인질범 5인조는 아쉽다. 초중반까지는 각자 색깔과 개성을 드러냈으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상투적으로 바뀌었고 예측 가능한 결말로 도달한다. 그래서인지 반사효과처럼 인질 황정민이 부각된다.


이는 한정된 제작비에서 선택과 집중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을 과감히 내려놓겠다는 필감성 감독의 의도처럼 보인다. 인질범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짧은 러닝타임과 단조로운 서사를 압축시켜 생동감 있게 살리겠다는데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딱 적당히 즐길 수준으로 정한 것.


그렇다고 필감성 감독이 노력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최대한 원테이크 형식처럼 담아 긴박감 넘치게 연출한 카체이싱 신들만 봐도 '인질'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셈이다. 황정민이 차린 밥상이 맛집처럼 극찬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히 먹고 만족할 만 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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