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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n 02. 2021

1. 인천공항에서 만난 소소한 '자연'

2018년 9월 22일~23일 기록 재구성


한반도 밖으로 나가는 거라면, 대부분 인천공항을 거쳐 간다. 2004년 가족과 함께 다녀온 중국 베이징을 시작으로 꾸준히 인천공항으로 이용해왔다. 공항을 방문했던 시점,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 공항에 두 발을 밟았을 때 심경은 달랐으나, 이것만큼은 한결같았다. 내 여정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인천공항이 장식하고 있었다. 


인천공항이 항상 여행의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한다. 해외 여러 공항을 방문했으나, 이곳만큼 최상위 여건을 갖춘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서울 중심부까지 단번에 도달할 수 있는 공항철도 및 신속하게 움직이는 공항버스 등 교통수단을 비롯해 화려한 인프라, 쾌적한 환경, 친절도, 편리함까지. 화개장터보다 없는 게 없는 곳이다. 이렇게 칭찬을 늘어놓으니까 마치 공항관계자처럼 생각할 이들이 있을 텐데, 다른 곳을 방문해도 이만한 곳은 없다. 이것이 K-공항의 위엄이지 않을까.


그러나 인천공항 자체를 향한 일반 관광객들의 인식은 '훌륭한 경유지' 그 이상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인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에 이렇다 할 랜드마크가 없고 인천을 '서울 위성도시'로 생각하는 대신 주요 관광명소로 느끼지 않아 더욱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최근 '1박 2일'에서 '리듬 오브 코리아' 특집으로 재조명한 인천을 들여다보니, 이곳 또한 단순 대도시, 광역시를 넘어 매력적인 지역이었다.


인천공항 이야기를 꺼내니, 해외로 떠나기 전 1박 2일간 보냈던 순간이 떠올랐다. 


2018년 9월 22일.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는 다른 때와 변함없이 캐리어, 백팩을 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다음날부터 26일까지 추석연휴였으니, 이 기회에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들도 보였다. 나 또한 그 1명이었다. 평소대로라면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쇠러 큰댁으로 향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굳이 추석연휴에 해외로 나가야 하냐는 잔소리를 뒤로 한 채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철도 안은 북적였고, 철도 밖 풍경은 아직 여름의 흔적이 남은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공항철도 1터미널 역에 내린 나는, 1박을 예약해둔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호텔로 이동하고자 공항 내 자기 부상 철도로 환승했다. 인천공항에서 하루 지내는 건, 최초 여행 계획에 없었던 즉흥에서 시작됐다. 출국날인 23일 오전 비행기라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인천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자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일사천리 이뤄진 것이다. 이때 묵을 곳을 알아보면서 인천공항 내에도 1인용 호텔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자기 부상 철도가 운용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주차장 지역을 지나면 여행객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호텔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호텔들이 많았었던가. 그동안 공항에서 비행기만 탔으니 당연히 생소한 풍경이었다. 목적지인 파라다이스시티역에서 하차했다. 아직 햇빛이 중천에 떠있는 낮인데도 역에서 바라본 파라다이스시티의 화려한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얹어서라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호화스러운 사치를 즐길 걸 그랬나 살짝 후회했다. 그래도 내가 묵었던 호텔도 괜찮았다. 혼자 지내기엔 충분히 아늑하고 클래식한 맛이 있었으니까. 호텔에 짐을 푼 뒤, 무얼 하면서 하루를 보낼까 평면 TV로 '손 the guest'를 보다가 천천히 생각해봤다. 인천공항 내 다양한 부대시설들이 떠올랐고, 하나하나 이용해 보기로 결심했다. 


호텔 밖을 나올 때쯤 해는 서해 수평선 끝자락에 걸려있었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휘감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1터미널까지 걸어가는 동안 호텔촌과 거대한 지상주차장은 평온했다. 가끔씩 차량이 지나가는 것 빼면 괜찮았다. 흰색 직사각형에 저마다 자리 잡은 차량들을 바라보며 이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밖으로 나간 것인가 생각하며 주차된 자동차 수를 세어봤다. 그러나 육안으로 봐도 너무나 많은 숫자였기에 카운트하는 걸 그만뒀다. 


사실 토요일 저녁 인천공항 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버거킹에서 콰트로치즈와퍼 세트를 시켜먹으면서 인천공항 혹은 공항철도역 쪽으로 향하는 사람구경을 했고, 근처 위치한 카페에서 식후 커피를 마시며 그제야 다음날 떠날 여행지에 갈만한 곳을 검색했다. 이것 또한 추상적으로 스케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시시각각 변하는 대형 비행스케줄 전광판을 멍 때리면서 구경했고, 안내 지도를 보며 이곳저곳 구석구석 탐색했다. 그리고 미쳐 보지 못했던 영화 '협상'을 보려고 공항철도 CGV에서 예매해 관람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시침은 벌써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공항 내 찜질방까지 체험하고 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모든 도장 깨기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마음에 담아둔 채 다시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밤이 깊어진 인천공항 바깥 풍경은 고요했다.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도심에선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별들이 눈에 띄었다. 비록 손톱만큼도 안 되는 크기이나 '나 여기 있다'고 알리듯 건물들이 내는 불빛보다 더욱 반짝이며 이목을 끌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들렸다. 몇 시간 전 나를 맞이했던 시원한 바닷바람도 다시 불었다.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자연이 보였다. 이를 혼자만 보기 아까워 SNS 라이브로 켜서 공유하려고 했으나, 스마트폰은 이를 100%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내 포기하며 라이브방송을 종료했다.


맥주 한 캔을 들고 호텔 베란다에 나왔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달을 바라봤다. 보름달까지는 약간 부족하나,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3박 4일 다녀올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호텔 베란다에서도 귀뚜라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를 안주 삼아 한 캔을 깔끔하게 비웠다.


다음날 아침, 다른 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수면시간은 대여섯 시간도 안됐으나, 컨디션은 최고였다. 여행을 떠나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상태. 무료 조식 대신 샤워를 하며 상쾌함을 유지했다. 어차피 아침은 모든 게 구비된 인천공항에서 먹어도 충분했으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인천공항으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에 승차했다. 인천공항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장은 점점 빨리 뛰었다. 여행에 대한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찬 '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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