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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28. 2021

폭력과 방관이 만든 악순환 고리

드라마 'D.P.' 리뷰

"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잖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103.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꾸면서." -조석봉(조현철)-


정식 공개 전 선보였던 'D.P.' 예고편은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과 대치상황에서 조석봉이 남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감추기 위한 연막탄이었던 것 같다. 뚜껑을 열어보니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오랜 세월 악순환 고리를 이어온 군 문화의 문제점을 조명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탈영병을 체포하는 군무이탈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 약칭 D.P.조) 콤비 안준호와 한호열 두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를 맛깔나게 살리는 밝은 버디물처럼 보인다. 또 매회 탈영병을 쫓는 추격신들은 쫄깃한 긴장감과 스릴을 안겨주며 상업 작품의 미덕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탈영병들의 이면과 그들을 음습하게 감싸고 있는 군대 악·폐습을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폭력과 방관이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것이 결국 악순환을 끊지 못하는 뿌리가 된다는 걸 여러 장치들을 통해 강조한다. 



총 6회 분량 동안 주인공 안준호만큼 조석봉을 점점 비중 있게 다루면서 두 캐릭터를 비교하는 듯한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울분과 우울함을 안고 살았던 안준호가 폭력과 방관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D.P.조 덕분에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반면, 선한 성품이었던 조석봉은 끝없는 구타와 방관에 노출되면서 다른 인격체로 변해갔다. 


탈영할 수밖에 없었던 신우석(박정우), 최준목(김동영), 허치도(최준영)도 같은 환경에 노출돼 악순환 고리에 갇힌 것. 그래서 이들의 일탈이 마치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던 마지막 몸부림처럼 다가왔다. 여기에 현실적인 엔딩은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윤종빈 감독의 출세작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견될 수준이었다. 


출연 배우들의 열연 또한 'D.P.'의 하이퍼 리얼리즘을 배가시킨 원동력이었다. 그중 사로잡은 건 정해인과 구교환, 그리고 조현철이다. 그간 부드러운 이미지가 부각됐던 정해인은 'D.P.'를 만나면서 우울함과 트라우마로 겹겹이 쌓인 울적한 내면과 정의감에 불탄 뜨거운 눈빛 연기로 새로운 얼굴을 선보였다. 또 원치 않게 방관자 입장이 됐을 때 표출하는 죄책감은 군필자 이외 군 경험을 하지 않은 이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구교환은 장난스러우면서 때론 영민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한호열을 생동감 넘치게 연기로 표현하며 폭발할 것 같은 안준호를 중화시키는 요소로 활약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희망이 쌓인 판타지를 맛보게 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기관차처럼 광기로 끝을 달렸던 조현철도 군 문화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일등공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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