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Nov 11. 2021

김두한을 꿈꿨던 착한 강릉주먹

영화 '강릉' 리뷰

유오성, 장혁 주연의 영화 '강릉'을 보고 나면, 최백호의 대표곡 '낭만에 대하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중년 남성의 향기가 잔뜩 묻어나기 때문이다.


강릉 토박이 형근(오대환)은 외지에서 흘러 들어온 정모(신승환)에게 대뜸 '관동별곡'을 아느냐고 물었다. '관동별곡'은 자신을 비롯해 아들까지 강릉에서 평화롭게 유유자적하면서 살고 싶은 착한 낭만주먹 형근의 바람이 담겨 있고, 나아가 그가 모시는 형님 길석(유오성)이 속한 조직을 대변하는 단어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전국을 강타했던 SBS '야인시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김두한과 우미관파가 그렇지 않던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자신들이 종로 사람들을 지키며 질서를 유지했던 착한 주먹들이라며 '거리의 독립꾼'을 자처했다. 맞서는 상대가 다르긴 하나, 길석패거리가 원했던 강릉의 모습이 김두한의 우미관파와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비열한 거리' 김병두처럼 혈혈단신 직진인생이었던 민석(장혁)에겐 비현실적이고 어불성설이다. 이는 멀리서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납득하기 힘든 지점. 결국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두 세력이 충돌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내면에 혼란을 겪는 길석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강릉'의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착한 주먹'이 활약했던 낭만의 시대는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강릉'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앞서 언급했듯, 길석파가 내건 '착한 낭만주먹'은 와닿을 수 없었다. 20년이 지난 현재, 예전처럼 '야인시대' 같은 허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이며 현실은 정반대이라는 걸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강릉'은 이를 고집했다. 지나간 한국식 누아르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이를 그럴싸하게 납득시키게끔 만드는 게 공격 일변도로 강릉에 들이닥친 민석파 덕분이다. 비록 단순하고 뻔하면서 전형적인 캐릭터이긴 하나, 막무가내로 덤벼들며 한 명씩 찔러대는 장혁의 우직함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렇기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홀로 딜레마에 빠진 유오성의 내면 연기가 좀 더 맛깔나고 돋보일 수 있었다. 두 배우의 팽팽한 합이 '강릉'을 풍성하게 만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강릉'의 장점은 이게 전부다. 조직폭력배와 공생 관계인 경찰이라는 케케묵은 설정이나 배경이 강릉이어야 했던 이유, 극 중 대사처럼 큰 쓸모없이 주저리 늘어놓는 대화들은 겉돌기만 할 뿐이었다. 윤영빈 감독은 올림픽 여파로 급변하게 변하는 강릉을 담아내고 싶었다곤 하나, 굳이 강릉일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철 지난 누아르이나 낭만을 꿈꾸던 길석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강릉'의 봐줄 만한 매력이 생겼을 지도. 아니면 저마다 한가닥씩 연기하는 박성근, 오대환, 신승환 등이 맡은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했으면 좋았을 텐데.  


★★


매거진의 이전글 이카로스처럼 과욕을 부린 MC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