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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13. 2021

작가와 감독 사이를 가로막은 큰 산

드라마 '지리산' 리뷰

관계자 및 일부 드라마 마니아들 사이에선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한다. 영화보다 긴 호흡을 이어가는 드라마에선 무엇보다 탄탄하고 흡인력 있는 스토리라인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리산'은 예외로 둬야 할 듯싶다.


잘 나가는 김은희 작가와 이응복 감독의 만남, 그리고 현재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진(전지현, 주지훈, 오정세 등) 캐스팅 라인업, 제작비 300억 원. 2021년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손색없는 구성요소다. 그래서 공개 전까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적극 어필해 끌어모아야 할 첫 회에서 '지리산'은 단추를 잘못 끼우는 실수를 저질렀다. 총 16회로 구성된 '지리산'의 성향은 미스터리 스릴러에 휴먼 드라마가 몇 스푼 들어간 스토리다. 그런데 이응복 감독은 김은희 작가의 각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어내는 헛발질을 해버린 셈.


레인저와 지리산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과도한 PPL이 쏟아지고, 이응복 감독은 전작 '스위트홈'의 패착을 그대로 답습한 듯 과한 연기 디렉션과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하는 배경음악들, 전개 시 부족한 디테일함이 밟을 때마다 터지는 지뢰밭 수준이었다. 거대 제작비가 무색한 CG나 뽀얀 배우들의 분장, 장비 등등 프로덕션 디자인은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며 20년 전 드라마를 재현했다. 그래서 '지리산'이 청춘물인지 멜로물인지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싸인'부터 '킹덤' 시리즈까지 남다른 필력을 자랑해왔던 김은희 작가도 '지리산'에선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2018년과 극 중 현재 시점인 2020년을 쉼 없이 오가는 동안 초반에 너무나도 많은 의문점을 던져 놓은 데다가 극 중 다양한 캐릭터들에 크고 작은 서사들을 복잡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중구난방이 되어 산만해진 게 문제가 됐다.


중요한 건 두 주인공 서이강(전지현)과 강현조(주지훈)의 과거까지 플래시백하면서 캐릭터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빌드업하는 과정을 16회짜리 드라마에서 거의 절반가량 할애하면서 질질 끌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캐릭터 혹은 사건을 풀어가는 걸 보여주기보단 대사와 설정으로 대부분 하다 보니 매력적이지 못했다.


절반이 지나고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야 김은희 작가가 그리려던 숲이 서서히 드러났다. 지리산의 미스터리 연쇄 살인사건은 하나의 사고를 가리키고 있었고, 각자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험난한 산을 넘어가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연출도 초반부에 대중의 부정적인 평가에 피드백에 두들겨 맞았는지, 그제야 개선하기 시작했다.


첫 삽을 뜰 때부터 연출과 집필이 서로를 잘 이해하고 호흡을 맞췄더라면 잘 놓인 등산로에서 이탈해 비법정로로 들어서 길을 잃어버리는 사태를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와 감독 사이에 놓인 큰 산이 크게 방해한 모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너무 어렵게 멀리 돌고 돌아서 제 궤도로 돌아오는 수고를 자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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