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프레임드' 리뷰
배우들이 연출에 도전하는 모습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연기 이외 연출, 제작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프레임드'처럼 현역으로 활동 중인 배우 4명이 감독에 도전하면서 합작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제훈, 박정민, 최희서, 손석구가 의기투합한 '언프레임드'는 네 사람이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들이 만들어낸 단편영화 4편 모두 4명의 배우와 생각과 스타일, 추구하는 방향성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눈길을 끌었다.
총 러닝타임 130분가량 차지하는 '언프레임드'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박정민이 연출한 '반장선거'.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초등학교 반장선거를 소재로 만든 이 단편영화가 인상 깊었다.
12살짜리 아이들이 내건 황당한 공약들과 각 후보들의 지지층 간의 격한 대립과 선을 넘는 대사와 욕설, 공정치 못한 거래 등등 성인들 못지않게 초등학생들의 세계도 치열하고 무자비하다. "아이들이 순수하다는 관념을 비틀고 싶었다"는 박정민의 연출 의도가 정치 누아르를 입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언프레임드'에서 신박함을 담당하기에 충분했다.
2번째로 공개된 손석구의 '재방송'도 흥미롭다. 영화 연출 스타일부터 극 중 캐릭터들, 캐릭터들의 행동 및 대사 어투까지 '손석구 미니미'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다. 가고 싶지 않은 결혼식장에 같이 가야만 하는 수인과 그의 이모의 동행길을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게 그려냈다. 그러면서 평소 쉽게 느낄 수 있는 '불편함'과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평양냉면처럼 스며들게끔 만든다. 어느새 '재방송' 속 조카와 이모로 분한 임성재, 변중희의 케미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출구 없는 늪 같은 존재다.
최희서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짧게 모녀 연기를 펼쳤던 박소이와 '반디'로 재회했다. 앞서 공개된 두 작품보다 기발한 스토리라인은 아니나 잔잔하게 따뜻함을 전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빠의 부재를 딸에게 설명해야 하는 싱글맘 소영(최희서)과 말을 더듬는 딸 반디(박소이)가 반딧불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름답게 풀어낸다. 서로 비밀을 지닌 모녀의 사랑스러움과 눈물샘 자극하는 가족애를 거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박소이의 눈망울은 킬링포인트.
이제훈이 연출한 '블루 해피니스'는 그간 많이 봐왔던 불안한 취준생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기시감이 가장 많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블루 해피니스'만의 매력을 꼽자면, 주인공 찬영으로 분한 정해인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과 감정선이다. 고등학교 동창(이동휘)의 말만 믿고 뛰어든 주식의 상승 하강곡선에 일희일비하면서 헛된 희망을 놓치 못하는 미련과 행복에 대한 회의감, 삶의 불평등을 표현하는 과정이 씁쓸한 현실을 녹여낸다. 또 김다예, 이동휘, 표예진, 탕준상 등 배우들의 존재감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