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리뷰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는 태조와 태종, 세종대왕, 광해군 등과 더불어 대중매체에서 단골손님처럼 조명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나, 다룬 작품이 많기에 기시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도 방영 전에 염려하는 반응도 있었다.
조선 세기의 로맨스로 불리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이야기는 '옷소매 붉은 끝동' 보다 앞서 '이산'에서 비중 있게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옷소매 붉은 끝동'은 결이 달랐다. '이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조를 중심으로 풀어나갔다면, '옷소매 붉은 끝동'은 역사에서 주조연처럼 다뤄진 의빈 성씨 성덕임(이세영)을 이산(이준호) 못지않게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옷소매 붉은 끝동'은 각종 역사서를 토대로 성덕임의 생애를 디테일하게 그려간다. 성덕임이 실제로 이산의 승은을 두 번 거절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가 궁의 여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도드라지게 표현됐다. 궁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유가 통제된 생활이나 성덕임은 자유롭게 살아가길 희망했다. 때로는 당돌하게 나서 조마조마한 순간도 있었으나, 억압된 공간에서 성덕임의 존재는 일종의 사이다가 같은 시원함이었다. 왕에게 간택받고 빈이 되려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닌, 현대적 여성 서사로 재해석했다.
그 때문인지, 궁에 사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간 봐왔던 사극물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보였다. 임금이 된 이산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이자 서열이 한 단계 높은 대비였던 정순왕후 김씨(장희진)도 오라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궁 밖을 나가지 못했고, 성덕임의 동무 영희(이은샘)도 수동적이고 답답한 궁녀의 삶을 못 견디어 사통 하다가 결국 비극을 맞이했다. 제조상궁 조씨(박지영)를 필두로 결성된 비밀조직 '광한궁'이 역사에 없는 내용인데도 등장한 건 궁의 여인들이 자유롭길 원했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는 궁의 여인을 넘어 조선의 최고 존엄 위치에 올라 있는 임금 이산에게도 적용된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도 사사로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연모하던 성덕임의 마음을 얻는 것,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성덕임을 축하하러 방문하는 것까지도 말이다. 결국 모두가 꿈꿨던 궁에서의 삶은 자유로운 삶을 묶어 버리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 사랑받은 이유는 주체적인 성덕임 못지않게 매력적으로 표현한 이산의 영향도 컸다. 그는 절대로 자신의 권력을 앞세워 성덕임에게 사랑을 얻으려 하지 않았고, 그를 구속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품어온 사랑을 왕이 아닌 하나의 남성으로 애틋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때로는 성덕임 앞에서 지질하고 집착하는 면을 보인 이산의 감정선에 몰입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회 마지막 신. 비극적인 역사의 결말을 따라간 뒤, 이산은 다시 만난 성덕임에게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알고 보니 시간이 많지 않더구나. 기다릴 여유도 없었고. 그러니 날 사랑해라. 제발. 날 사랑해라"라며 "이것이 과거라 해도 좋다. 꿈이라 해도 좋아. 죽음이어도 상관없어. 오직 너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바랄 것이다"라고 남겼다. 이에 성덕임은 "이 순간이 변하지 않기를.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그리하여 순간은 곧 영원이 되었다"며 끝맺음했다. 이들의 사랑이 운명 밖에서 영원하길 바라는 염원인 것.
17회까지 달려오면서 '옷소매 붉은 끝동'은 역사적 소재를 단순히 재현하는 걸 넘어 전형적이지 않고 새롭게 재해석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이산과 성덕임으로 분한 이준호, 이세영을 비롯해 출연배우들의 절정에 다다른 열연도 흡인력을 극대화시켰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사극 열풍 속에서 '옷소매 붉은 끝동'처럼 귀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