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왜 나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by 보나

살다 보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날이 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지 답답함에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은 날.


어릴 적에는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시험을 망쳤다면, 그동안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친구가 토라진 이유는 전날 내가 연락한다고 하고는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선생님이 나에게 벌을 주는 이유는 내가 야자를 빼먹고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딱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 보니, 명확한 인과관계없이도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았다. 수없이 지원한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정확히 나의 어떤 점 때문에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고, 갑자기 집안 형편이 기울어서 집도 없이 며칠 동안 친구 집을 전전할 때에도 어떻게 일이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또 일을 하다가 진상 손님에게 이유 없이 욕을 먹어도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날들이면 나는 언제나 쓴 눈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왜?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하지만 가혹하게도 내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 스스로도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차라리 그 일이 일어난 이유라도 알면,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지도 모를 텐데.


우리네 인생은 언제나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어느 누군가는 그렇기에 인생이 살만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항상 이유가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 면접에서는 떨어지고, 대충 준비도 안 하고 본 면접에서는 붙는 것처럼, 인생은 예측할 수도 없었고 내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언제나 뒤통수를 쳤다. 그런 인생에서 나는 언제나 한 없이 작았다.


어느 날 이유 없이 들이 닥친 불행 앞에서 나는 또 중얼거렸다.

“왜 나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누군가가 말했다.

“이 일은 너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야.
그냥, 이 일은 그냥 일어난 거야.”



그가 그냥이라고 하는데, 우습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냥. 나이기 때문에, 내가 나라서, 이런 폭풍이 온 것이 아니라고. 이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 일은 이 폭풍은 그냥 온 것이라고. 그냥.


그러니, 그냥 온 폭풍 앞에서 이유를 찾지 말라고, 그냥 온 것이니 그냥 지나갈 때 까지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습게도 이유 없이 닥친 폭풍이 그냥 이유 없이 온 것이라는 것에 위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더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만약, 갑자기 온 폭풍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일은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그냥 일어난 거예요. 그러니, 이 폭풍이 그냥 왔던 것처럼, 그냥 지나갈 수 있게 조금만 기다려요 우리.





커버 : 폭풍의 밤 (Stormy Night) Short Animation 미셸 르미유 Michèle Lemieux│Canada│1999│10 min│Digi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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