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행복한 웃음에 죄송스러워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
머리에 쌓인 눈을 탁탁 털며 문을 열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엄마는 한 달음에 달려 나와 나를 맞았다. 나는 무뚝뚝하게 “나 왔어.”라는 말만 건네고 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았다.
엄마는 내 옷에 묻은 하얀 눈 들을 털어내며, 추운데 이렇게 얇은 옷을 입고 왔다고 잔소리를 늘어놨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내 마셨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정체 모를 빨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엄마는 내 시선이 냄비에 가 있는 것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옆집에 코다리가 팔길래, 찜을 해 먹었는데 글쎄 너무 맛있더라고~ 그래서 너 해주려고 만들었지. 그런데, 아직 다 되려면 좀 더 있어야 해. 그러니, 이거는 집에 싸가서 저녁에 먹어. 엄마가 그냥 비닐 봉투에 담아 줄게, 집에 가서 냄비에 옮겨서 가스레인지에 조금만 끓이면 되니까, 너 통에 들고 가려면 무거워서 안돼~ 알겠지?”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걸 엄마는 길게도 얘기한다. 나는 짧게 “응”이라고만 대답하고 의자에 앉았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내놓는 엄마에게 나는 “됐어. 그냥 이거면 돼~”라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내내 내 얼굴만 쳐다보던 엄마는 조심스럽게 회사는 잘 다니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뜨끔해서 엄마 눈을 피하며 그냥 “응 그냥 그렇지 뭐.”라고 짧게 대답했다.
사실 회사를 그만 둔지, 벌써 한 달째다. 월급쟁이를 최고로 여기는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것도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그만뒀다고 하면, 엄마는 노발대발 화를 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적성에 맞는 일이 얼마나 있겠냐며, 아무리 서럽고 힘들어도 꼬박꼬박 월급 들어오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도 많이 들었던 말이라서 이제는 귀를 막아도 다 외울 수 있었다.
엄마는 평생 동안 한 번도 회사 생활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정주부는 아니었고, 젊었을 땐 예식장에서 신부 메이크업을 해 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였고, 그 일을 그만두고는 옷가게부터 이런저런 식당을 운영했다. 그동안 대박을 친 집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먹고 살만은 했는데, 요즘 하고 있는 가게는 조금 많이 힘이 든 듯했다.
그런 엄마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여동생은 평생 한 직종에서 일하며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잘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요즘같이 남자들도 회사에서 물러나는 불경기에 여성이 40대 후반에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아주 자랑스럽고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취업 준비를 할 때 엄마는 늘 이모 이야기를 하며, 이모처럼 판매직의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수도 없이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일이 하고 싶다고 버티고 버텼다. 그러다가 끝내 취직이 잘 안되자, 나는 엄마의 말 대로 판매직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을 때, 엄마는 마치 날아갈 듯 기뻐하며, 동네방네 우리 딸이 취직했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런 엄마에게 끝내 글이 쓰고 싶어서,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아서 못하겠다는 말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지금까지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챘는지, 엄마는 또다시 이모 이야기를 꺼내며, 자영업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며, 매출이 안 좋아도 회사에서는 월급을 주지만, 자영업은 매출이 안 좋으면 그냥 망하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니, 너도 군 소리 말고 회사 잘 다니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대충 건성으로 “응”이라고 답하고는 서둘러 가야겠다고 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엄마는 더 있다 가라고 했지만, 나는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둘러댔다. 사실 그날은 잡지사 면접이 있었다. 엄마는 아쉬운 듯 일어서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며, 코다리 찜을 바리바리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다. 나는 그 빨간 국물들을 바라보며, 저것을 들고 면접에 갈 수는 없는데, 좋은 방법이 없나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는 코다리찜을 내게 넘겨주며 집에 가자마자 냄비에 옮겨놓고 센 불에 한 번 팔팔 끓이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건성으로 답하고 나왔다.
내가 걸어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엄마에게 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는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걸어가는 내내 생각했다.
'이 놈의 코다리찜을 어쩐담, 이 것을 들고 면접장에 가면 아마도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하겠지?'
지하철 보관함에 넣어둬야겠다는 생각까지 접어들었을 때, 나는 ‘꽈당’하고 보기 좋게 벌러덩 넘어졌다. 아침에 내린 눈이 얼은 빙판길에 미끄러져 팔을 허공에 허우적허우적 흔들다가 결국 땅에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만 것이다. ‘아야!’ 신음을 내며 몸을 살펴보니, 바지는 찢어져 무릎에 선명한 상처가 생겼고 손바닥도 쓸려서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다리 찜을 다 엎어버렸다. 비닐은 다 찢어져서 코다리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고소하면서 비릿한 냄새가 섞여 사방에 진동을 했다. 찢어진 비닐 사이로 코다리찜 국물이 피처럼 하얀 눈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비닐봉지를 들고 일어섰다. 일단은 이 찢어진 비닐봉지를 처리해야 했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쓰레기통을 찾았다. 저 멀리 쓰레기통이 보였고 나는 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걸어가는 발자국 옆에는 빨간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면접을 보고 나오자, 밖에는 또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눈꽃을 올려다보자, 나는 맛도 못 본 코다리찜이 생각이 나 눈물이 흘렀다. 이게 다 망할 놈의 눈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하얀 눈 꽃송이들을 째려보았지만, 사실은 코다리 찜 처분을 고민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엄마의 행복한 웃음에 죄송스러워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