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때인가, 초등학교 때인가, 여하튼 어린이 시절 크리스마스 즈음에 산타클로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카드에 적고 있던 나에게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야! 산타클로스 같은 건 없어! 우리 엄마가 그랬어! 그런 건 다 지어낸 이야기래!”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산타클로스에게 꼭 받고 싶었던 인형 집이 생각이나, 실망한 눈으로 대꾸했다.
“아니야! 있어! 산타클로스는 있어! 우리 엄마는 있다고 했어!”
나와 그 친구가 큰 소리로 싸우는 것을 보고는 옆에 있던 내 단짝 현아가 말했다.
“아냐, 산타클로스가 없는 게 맞아, 왜냐면, 작년에 내가 갖고 싶었던 선물을 카드에 적고 잠이 들었다가 밤에 소리가 나서 깼는데, 나는 정말 산타인 줄 알고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실눈을 떠서 몰래 봤는데...... 그 사람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우리 아빠였어.”
옆에 있던 현아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정말로 산타클로스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산타클로스를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대꾸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아니,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거실과 드레스룸, 침실까지 완벽하게 완비된 핑크빛 예쁜 인형 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내 소중한 단짝이었던 바비인형들은 갈 곳이 없어, 항상 책상과 침대에 앉거나 누워 있는 상태였지만, 얼마 전 엄마를 따라 간 마트에서 본 인형 집만 있다면 내 소중한 밍키와 바바가 더 이상 집도 없이 여기저기 뒹굴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하루 종일 그 핑크빛 인형 집만 떠올렸었다.
그런데, 산타클로스가 없다니!
그럼 내 핑크빛 인형 집은!?
정말로 산타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우울해하며 집에 왔는데, 날 반기는 엄마를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놀란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엄마는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산타는 있단다, 오늘 밤 산타가 우리 집에 올 거야, 정말이야! 그리고 네가 가장 갖고 싶었던 선물을 네 머리맡에 두고 가실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씻고 와~”
엄마의 따뜻한 눈빛에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서 밍키와 바바에게 말했다.
“이제 곧 너희 집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엄마와 밥을 먹는데, 갑자기 아까 현아가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 엄마! 그런데, 왜 현아네 집에는 산타가 안 갔을까? 현아는 아빠가 선물을 놓고 가는 걸 봤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현아네 집에는 산타가 안 가고 현아네 아빠가 선물을 놓고 갔지?”
내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겨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건~ 음... 산타클로스가 너무 바빠서 미처 못 가게 됐을 거야, 생각을 해봐~ 산타클로스가 어떻게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집을 다 다니겠어~? 혼자서 선물을 나눠주기에는 너무 힘들지 않겠어? 그럴 때는 아이의 엄마나 아빠에게 연락을 한단다. 오늘은 너무 바빠서 못 가니, 나 대신 아이에게 선물을 전해 주라고.”
“그럼 엄마도 산타클로스한테 그런 연락받은 적 있어?”
“예전에 한 번 받았지, 그런데 그때는 못 온다고 해놓고 밤늦게 왔지 뭐니, 그래서 다행히 엄마가 선물을 준비 안 해도 됐어!”
그 시절 나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내가 생각해도 산타클로스 혼자서 아이들이 있는 모든 집을 다니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했고, 내 상상 속 산타클로스는 코가 크고 금색 안경을 쓴 흰수염의 백인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런 할아버지가 살만한 곳은 모르긴 몰라도 우리 집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부디 오늘 밤은 현아네처럼 부모님께 연락하지 않고, 산타클로스가 직접 찾아오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 머리맡에는
예쁜 핑크빛 인형 집이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 일찍부터 엄마, 아빠 방문을 열고 산타클로스가 왔다 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직 자고 있던 엄마, 아빠의 침대 위를 쿵쿵 뛰어다니며, 산타를 봤느냐고, 정말로 흰 수염이 난 할아버지냐고 신나게 물었었다.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보지 못한 것뿐이지, 분명 어딘가에는 빨간 옷을 입고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며 흰 눈밭을 달리는 산타가 진짜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절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놔두던 사람이 산타클로스가 아닌 엄마였다는 것을 안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살금살금 들어와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주던 그 마음이 너무 따뜻했기에, 그 시절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오늘, 퇴근하는 길 들른 백화점에서는 겨울 장갑이 행사하고 있었다. 문득 얼마 전부터 장갑 한쪽을 잃어버렸다고 속상해하며 찾는 엄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갑자기 그시절 핑크빛 인형집도 떠올랐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엄마의 산타클로스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어린 시절 내 동심을 지켜준 그 따뜻한 마음에 감사했다는 의미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엄마 머리맡에 살금살금 들어가 선물을 놔두고 나와야겠다.
산타클로스를 대신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