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에서 시간을 견딘다

오직 이 곳만이 내 공간 같았고 내 일부인 것 같았다

by 보나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항상 동굴로 들어간다. 예전에 어디선가 남자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동굴로 들어가고 여자들은 많은 이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든 여자들이 다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위로를 얻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나 예외는 있듯이.


나는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이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린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더디게 흘렀고, 이 곳에서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 벗어나고 싶어도 일어설 힘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웅크리고 앉아서 시간을 견디는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익숙한 이 동굴이 끔찍이도 싫었던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억지로 동굴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 시절 나는 그 동굴이 정말 끔찍이도 싫었다. 어서 빨리 동굴에서 나와 친구들과 웃으며 울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그런 친구는 없었다.


중학교 시절 전학 간 학교에서 나는 왕따를 당했었다. 다행이게도 그 친구들이 나를 때리거나 심하게 괴롭힌 적은 없었지만, 반 아이들 중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했던 내가 어느 순간 갑자기 왕따가 되어 버린 것은 그 시절 내게는 큰 시련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내가 뭘 잘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는 내게 눈치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고, 누군가는 한국 학교 문화를 잘 몰라서 그렇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들이 다 틀린 말만 한 것 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에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싫은 아이’가 되었고,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서 소외되었다. 반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서 소외가 되자, 자연스럽게 반 아이들도 내게 말을 거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 아이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들을 욕할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말이 많은 아이였던 나는 쉬는 시간만 되면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엎드렸다. 작은 내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책상에 엎드려 수업 종이 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야속하게도 그렇게 엎드려 있는 동안에 나를 깨우는 친구는 없었고, 쉬는 시간의 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끌벅적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자연스럽게 졸린 것처럼 행동하며 쉬는 시간 종이 치면 곧바로 책상에 엎드렸다. 엎드린 김에 잠이라도 청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내 두 눈은 말똥 해졌고, 책상 바닥만 꿈뻑꿈뻑 쳐다봤다. 그렇게 나는 내 두 팔 안의 동굴에서 한 달 남짓의 시간을 견뎠다. 그 시절 10분의 쉬는 시간은 1년만큼 길게 느껴졌고, 방학이 되기 전 한 달은 10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내가 왜 왕따를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왕따를 당하기 전 몇 번의 예고는 있었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싫어하는 아이를 같이 싫어해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그들에게 말을 걸었고, 남자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놀았으며, 그들 중 한 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내게 털어놓은 것을 비밀로 지키려다 뒷담화를 했다는 오해를 받았다. 그런 오해를 받아도 나는 그 아이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내 노력의 대가는 결국 내가 혼자 치러야 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아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타임머신이 생겨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들과 오해를 풀 자신이 없다. 만일 내가 그들에게 그 아이의 비밀을 털어놓아도 그들은 다른 이유로 나를 싫어했을 것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데에는 사실 별 이유가 없으니까. 아니, 처음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그 이유들은 사라지고 미워하는 마음만 남게 되니까.


그래도 그 시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학교만 끝나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 안에서는 조용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학교 밖으로만 가면 시끄러운 아이가 됐다. 그렇게 학교 밖 친구들이 있었어도 그 시절 나는 많이 외로웠다. 학생에게 학교는 하나의 세상이었고, 학교에서의 소외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전학을 보내달라고 집에 와서 떼를 쓰기도 했지만, 어떤 곳에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면, 만일 그곳에서 똑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능력이 없어진다며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 아이들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해결할 용기도 없었다. 내가 생각해낸 해결방법은 그저 책상에 엎드려 시간을 견디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긴 시간을 견디다 보니, 방학이 되었고, 방학 동안 그 친구들은 서로 싸워서 편이 갈렸다. 그리고 그렇게 편이 갈린 한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서 내 동굴 생활은 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생기면 동굴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물론 나이가 들고 누군가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아도 내 말이 그 사람에게 가 닿는 것이 아닌, 다시 메아리가 되어 내 마음에 박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일수도 있지만, 예전에 동굴에서의 생활로 인해 얻은 교훈이 아직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무언가를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아무리 머리를 붙잡고 생각을 해 봐도 도저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의도치 않게 붉어진 오해에서 내가 풀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나는 항상 동굴에 들어갔다. 예전처럼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만든 나만의 동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견뎠다.


동굴 속 어둠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이 곳이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되지 않아도, 동굴 속은 여전히 외로웠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그 외로움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누군가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려 하면 나는 항상 한사코 거절했다. 나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사실 이 곳에 있어야 할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밖의 세상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직 이 곳만이 내 공간 같았고 내 일부인 것 같았다. 밖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언제쯤 이 동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나는 아직도 동굴 입구에서 바깥세상과 동굴 바닥을 번갈아 바라보며 시간을 견디고 있다.






커버 사진 : 에니메이션 <빙과>의 한 장면. 본 내용과는 상관 없는 에니메이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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