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새벽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눕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눈을 비비며 실눈을 뜬 채로 본 핸드폰 액정에는 오랜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전화를 받자, 친구는 다짜고짜 울기 시작했다. 이유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새로 생긴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자친구가 생긴 걸 몰랐던 게 아니지 않냐고 친구를 타일렀다. 친구는 그래도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렇다. 헤어진 남자의 현재 여자친구를 마주 하는 일이 기분 좋을 리 없다. 물론 어떤 여자인지, 나보다 나은 사람인지, 예쁜지 혹은 못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친구가 그 사람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우리는 틈만 나면 모여서 그녀의 모습을 추측하고 그려봤었다.
그들의 풋풋했던 첫 시작과 시들시들해져서 다투는 모습 까지 지켜봐온 나로서도 그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내 마음도 이런데 친구는 오죽하겠나.
조금 진정된 친구와 SNS에 올려진 그들의 사진을 같이 보며, 이런 저런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 저 둘의 조화 등등.
전 남자친구의 여자친구는 예쁘면 예쁜대로, 못생기면 못생긴대로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이야기 거리가 많은 법이다.
그래도 우리는 나름의 품위(?)를 지키느라 욕은 하지 않았다. 그냥 객관적인 척 그녀의 이목구비와 옷차림을 이야기하며 성격은 어떨 것 같다는 추측만 늘어 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객관적인 척 하려 해도 마음이 동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우리는 헤어진 연인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상대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직 마음의 정리가 덜 된 상태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다. 처음에는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끝나지만, 당신은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란다는 가식적인 마음을 품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들의 행복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상대의 행복은 그 전에 품었던 가식적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 깊이 가슴을 찌른다.
물론 그가 영영 행복하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눈으로 맞닥 드렸을 때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냥 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성실한 SNS는 우리에게 누구 보다도 발 빠르게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알려준다. SNS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나 이렇게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어, 나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있지, 나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 등등.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SNS에 보란 듯이 올린다.
그들의 행복한 삶을 보며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SNS에 진심으로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그들이 행복하기만 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 누구의 삶이 단 한 점의 불행 없이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그런 일들이 섞이고 번갈아 일어나면서 시간은 흐르고, 또 인생은 깊어진다. 다만 자신이 힘들고 불행하다는 것을 다수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공개할 수 없는 것일 뿐.
그러니 친구야, 그들도 우리가 보는 것 이외에도 나름의 문제를 갖고 있을 거라고. 너와 그가 느꼈던 오해와 다름을 그들도 느끼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위로하자.
그리고 우리 지나간 것에 미련두지 말고 지난 일은 돌아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