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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럽여관 Feb 24. 2022

[스타트업 저널 #5] 일하는 사람의 태도

팀빌딩을 하며 깨달은,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

*팀빌딩: 팀을 이루어 진행하는 업무나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실시하는 조직개발 기법 [출처: 두산백과]

**스타트업 신에서 팀빌딩이란 조금 더 단순하게 하고자 하는 일을 '누구와' 함께할 것이냐를 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오전에 일본 제조업체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씨가 쓴 책, '왜 일하는가'를 완독했다. 15개월 전의 내가 읽었다면, 이건 무슨 꼰대 같은 소리냐고 읽다 말았을 법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워라밸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은연중에 워크는 악이고 라이프는 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의 나라면 완벽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라는 그의 주장을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노트를 옆에 펼쳐두고 그의 철학을 필사한다. 문장을 곱씹고 경험을 회고하며 일하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내린다. 


책에서 공감한 포인트 중 하나는 일을 하는 것이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인데, 이게 굉장히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출근은, 회사에 가는 건 그냥 고생이라고,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이라고, 얻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의 늪이 언제나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고, 나를 몰아붙이는 일이기도 하다. 겪고, 넘어지고, 배우고, 아파하고, 또 겪고, 이겨내고, 승리하고, 패배하는 그 모든 시간을 살아냄으로써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계속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저자는 그의 오랜 경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인생과 일 = 능력 X 열의 X 사고방식
 

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것을 나의 언어에 가깝게 치환해봤다. 


태도! 태도! 태도! (by 시럽여관 @syrupinn)


주변 스타트업 대표나 창업팀을 보면 다들 가장 고민하는 것이 인재 영입(다음 스텝은 자연스레 조직문화)인  것 같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이를테면 현재 4인 규모의 팀에 1명을 추가 영입하는 문제는 곧 전체 인원의 20%에 해당하는 인력(업무량이나 중요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에너지 차원)을 뽑는 문제이기도 해서 새로운 한 사람의 에너지와 태도가 팀 전체의 분위기와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미 규모가 크고,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분위기가 잘 성립되어 있다면, 어쩌다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한 사람이 들어가도 그가 먼저 튕겨 나갈 가능성이 크다. 다들 으쌰으쌰 할 수 있다!!!! 하는 분위기에서 팔짱을 끼고 냉소하는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규모가 작은 팀이라면 새로 들어오는 한 사람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생각보다 빠르게 전염될 수 있다. 


실제로 한 스타트업 대표의 경우, 높은 연봉을 주고 그보다 높은 기대를 하며 대기업 출신 개발자를 영입했는데, 그의 거만한 언행으로 기존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건 물론이고 회사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지기까지 했다. 몇 달 후, 결국 그 직원을 내보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지만, 이 경험으로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태도가 안 좋으면 회사에 마이너스라는 걸 배웠다고 한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경우가 너무 많다. 각기 다른 스테이지의 스타트업을 경영 중인 대표님들과 만나서 성공담, 실패담을 얘기하다 보면 '결국 태도'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내 경험담을 얘기해보겠다. 나의 오만이 문제였다. 팀에 부정적인 사람이 한 명 있어도, 내가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니 영향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나의 긍정을 흩뿌려 전염시키겠다는 순진한 자신감이 있었다. 창업하기 전까지 여러 회사를 거치며 그래도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탓이다. 나쁜 에너지가 어떤 파괴력이 있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부정적인 기운은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서서히 내 에너지를, 그리고 함께 팀에 있는 사람의 에너지를, 협업하는 관계자들의 에너지를 말렸다. 그를 P라 칭하겠다. 


P는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비웃는 태도로 "no."를 남발했다. 안전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보자는 취지가 자주 무색해졌다. 냉소하는 말투는 일상이었고, 일이 많다, 어렵다, 힘들다 소리를 입에 달고 일했다. 나 혼자 P를 커버해야 할 때야 베이비시팅을 하는 마음으로 어르고 달랬지만, 팀이 커지면서 그의 태도는 소리 없는 방귀처럼 퍼져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나의 에너지로 누군가를 변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철저히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와 에너지의 힘을 믿게 됐고, 좋은 에너지가 모였을 때 나오는 시너지의 가치를 깨달았으며, 좋은 태도와 에너지를 가진 유능한 존재들과 함께 일한 경험에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퇴사한 직원 한 명은,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P가 회의 안건에 대해 계속 개인 메신저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탓에 갓 입사한 초기에는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을까' 의아해하다가 → 그것을 점점 귀찮게 느끼게 되다가 → 그 사람에게 짜증을 느끼는 상태로 변하게 됐고 → 종내에는 즐겁게 몰입하며 일하는 빈도가 낮아지고 대화를 꺼리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말 궁금했다고 한다. 어쩌다 나와 P처럼 에너지가 양극단에 있는 사람이 함께 일하게 됐는지.


반대로, 해보겠다, 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의 에너지가 같은 방향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만나면 부스터 효과가 난다. 초기 팀원 T는 함께 얘기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찾아보니까 이런 걸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진짜 잘 될 것 같아요, 그쪽 일은 해본 적 없는데 공부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볼게요,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등등.... 그렇게 단 5분이라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남은 하루 내내 일할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분이었다. 훗날 물어보니, T 역시 나와의 대화를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돌아보면 창업을 시작할 때 나는 에너지나 태도를 중요한 키워드로 생각하지도 못했다. 너무 당연한 것으로, 일할 때 기본으로 충족되는 디폴트 값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공동 창업을 결심했었다. 하지만, 창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나눴던 대화와 충돌하는 사건을 몇 차례 겪고 나서야 행동(태도)으로 받쳐주지 않는 말은 아무런 무게도 가치도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진정으로 믿고 지지하는 것과 내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진정으로 믿고 지지한다고 생각(착각)하는 것 사이에는 억겁의 거리가 있다.) 


실패로 끝난 첫 팀빌딩 덕분에 고생도 했지만,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성장도 했다. 나의 다음 팀빌딩은 이나모리 가즈오 씨의 '인생과 일 공식'을 재해석한 공식을 기반으로 이뤄질 것이다. 업무를 해낼 능력이 있는가,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에너지와 태도를 가졌는가. 그런 팀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이고, 해낼 것이고, 그 과정을 즐기기까지 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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