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페르소나? 야심과 무지의 환장 콜라보
사업 아이템을 선정할 때,
서비스의 핵심 타깃을 설정할 때,
광고를 노출할 집단을 고민할 때,
가장 걸리기 쉬운 덫은
될수록 많은 사람에게 팔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기왕이면 핵심 타깃이 크면 클수록 좋지 않나?
혹시 모르니 여러 명에게 노출하는 게 낫지 않나?
같은 유의 생각이다. 상황에 따라 맞을 수도 있기는 한데, 핵심 타깃 설정 단계에서는 틀리다.
뭐가 먹힐지 모르니 이것저것 좋은 걸 다 쏟아 넣어보고 그중에 뭐가 잘되는지 보자는 마음은 관점에 따라 야심일 수도, 게으름일 수도, 무지일 수도 있다.
처음 에듀테크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했을 때 우리는 '전 세계의 모든 외국어 학습자'를 핵심 타깃으로 설정했다. 돌아보면, 야심과 무지의 환장할 콜라보였다.
궁극적으로 내가 도달하고자 했던 미래의, 그러니까 회사가 생존하여 십여 년을 시장에서 버티며 검증받은 후에, 도달하고 싶었던 타깃은 '전 세계의 모든 외국어 학습자'가 맞다. 하지만, 시작은 좁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무수한 강의, 시행착오, 멘토링, 독서를 거쳐 핵심 타깃 설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좁고 구체적이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넓은 타깃은 창작자에게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전 세계 학습자'를 대상으로 서비스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광범위해서 거의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콘텐츠 하나를 만들고, 서비스 하나를 기획할 때마다 머리가 복잡했다. 인도 학습자에게 맞추려니 미국 학습자에게 안 맞고, 십 대 학습자에게 맞추려니 직장인 학습자에게 안 맞는 식이었다. 무수한 회의가 '모르겠으니 일단 해보자'로 끝났다.
여러 과정을 거치며 핵심 타깃을 좁히고 좁히고 좁혔다. 데이터를 보며 유입국가의 비율을 분석하고, 그들의 구매력과 구매 의지를 파악해 나가며 핵심 타깃을 좁혀나갔다. 머리가 조금씩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핵심 타깃을 많이 좁혔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실은 충분히 좁지 않았다.
어느 VC와의 미팅에서 우리가 타깃을 더 좁혀야 한다는 코멘트를 받았을 때, 들었던 비유가 기억난다. 흔한 비유지만, 또 흔한 비유에는 이유가 있는 법. 이를테면, 떡볶이로 유명한 부산의 A 떡볶이집이 김밥을 안 파는 이유는 '김밥을 팔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김밥을 만들 줄 몰라서/김밥을 팔 줄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산에서 '떡볶이 = A 가게'라는 공식을 또렷하게 심어주고,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땐 A 떡볶이지!'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것이 떡볶이 가게가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게 브랜딩이다. 그리고 잘된 브랜딩은 그 자체로 마케팅이다.
당시 우리 사이트는 여러 사람을 다 잡겠다고 김밥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순대도 파느라 그중에 우리는 뭐가 제일 맛있고, 뭘 제일 잘하는 사이트입니다-라는 각인을 남기지 못했다. 입소문이 점차 약해지고, 재방문율이 낮아졌다. 일정 부분 학습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핵심 타깃이라는게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하냐면, 거의 한 사람을 또렷하게 그려보는 만큼으로 좁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고객 페르소나 설정' 같은 다소 심오한 말로 접근하기도 하는데, 이 페르소나 설정이 단순히
- 20~30대 여성 (나이, 성별)
- 미국인 (국적)
- 직장인 (직업)
정도에서 그치면 안 된다.
우리 상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한 사람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것으로 인해 감동할 수 있는 한 사람. 거기에서 시작하고 확장한다. 바로 그 시작점에서 회사가, 브랜드가, 매출이, 광고가, 마케팅이, 역사가 시작된다. 시작점이 없으면 확장도 없다.
<마케터____의 일>이라는 책에서는 이것을 볼링에 비유하는데, 공이 1번 핀과 3번 핀 사이를 때려야 스트라이크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시작점을 좁게 잡아야 넓어진다는 말이다.
좁게 시작하는 게 적게 팔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힘 있게 시작할 수 있는 시작점을 정하자는 말이라는 내용이 책에 나오는데, 깊게 동감했다. 특히 규모와 인력 모두 부족한 스타트업의 경우, '모든 사람'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장 잘할 수 있고, 잘해야 하는 고객에게 가닿는 힘에 집중해 쏟아내야 한다. 그렇게 우리 브랜드와의 경험에 만족한 고객은 또 다른 고객을 불러올 수도 있다.
요즘의 나는 everyone은 곧 no one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대충 이런 사람들'이라고 얼버무리면 아무에게도 진심으로 가닿지 못할 수 있다.
지금 창업을 앞두고 있거나, 핵심 고객을 제대로 설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내가 만드는 이 상품, 서비스를 이용할 단 한 사람을 그려보길 바란다.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취미 생활을 즐기며, 누구와 어떻게 여가를 보내고, 무엇을 소비하는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