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
아이가 일주일을 꼬박 아팠다.
아이를 낳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월요일 오후에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열이 이미 38.5도에서 시작했다.
수요일 밤은 40.6도까지 찍었다.
병원에서 준 해열제를 먹고도 4시간을 못 채우고 열이 바로 또 치솟았다.
나는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나 절절매고 있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잘도 잤다.
남편은 아이가 잘 자면 그냥 두라고 태연하게 얘기했다.
뭐라고? 내가 예민한 거야?
새벽 한 시. 그 시간에 어디도 물어볼 곳이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낮에 진료를 보고 약을 받아온 병원에 전화를 했다.
아이를 깨워서 약을 먹이라는 당직 의사의 말에 나는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아이를 깨웠다.
약 먹기 싫어서 자지러지는 아이를 억지로 부여잡고 해열제를 먹였다.
반은 먹고 반은 흘렸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먹었으니 효과는 있으리라.
40도는 넘기지 말자라는 일념으로 물수건을 적셔와 아이를 닦았다.
깬 김에 조금이라도 열을 내리고 재워야 했다.
아이는 물수건이 몸에 닿을 때마다 빼액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한 바퀴만 싹 닦고 다시 재웠다.
평소에는 이불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깨던 아이가 열을 재도 부채질을 해도 잘도 잤다.
힘든지 지쳐 잠든 아이를 보니 휴... 내가 아프고 말지 하는 마음이 들끓었다.
이틀 정도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목요일에 씻길 때 보니 배와 등 목에 열꽃이 피어올랐다.
아... 이제 열은 끝났구나. 싶었다.
다행히 해열제를 먹어야 하는 텀이 길어지고
해열제를 먹지 않고 토요일 새벽을 맞이 했다.
열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아이의 (테러블 한) 짜증
일주일 동안 거의 먹지도 못하고 열에 시달리기만 해서 그런지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듯 아이가 웃다가도 짜증을 내고 짜증 내다가도 더 짜증을 냈다.
그 짜증이 나 혼자 받아내기에는 온 집안에 넘쳐흘렀다.
열꽃이 나면 근육통이 올 수 있다는 육아 블로그 속 글이 스치듯 내 머리를 지나갔다.
그래... 얘도 얼마나 아프면 이러겠어.
머리끝에서부터 발등까지 번진 아이의 열꽃에 쿨링 로션을 발라주면서
고열로 경기가 난 내 마음에도 바르고 또 발랐다.
결국 아이의 밥을 만들며 동동거리던 내 발에
아이가 부엌 바닥에 펼쳐놓은 지퍼백들을 밟고 비틀리며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어우야!!!!!"
나는 성난 암사자처럼 포효하고 말았다.
아이는 겁에 질려 나에게 안겼다.
아이를 안는 순간 나는 나에게 또 실망했다.
나의 저렴한 인내력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나 때문에 무서운 순간에도 나를 찾아 안기는 이 아이를,
나만 믿고 사는 이 아이를,
보듬어 주진 못할 망정 소리나 지르다니...
형편없었다.
육아가 힘이 든 건 아이의 짜증을 참아주어야 해서가 아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살아야 해서도 아니고
빼앗긴 인생에 대한 우울감 때문도 아니다.
육아는 나를 한계점에 자꾸 데려다 놓는다.
그 시기가 매우 잦고 그 점접이 매우 낮아
나의 한계를 마주 할 때마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에 대한 실망감.
그 실망감을 마주 하는 게 너무 힘이 든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더 좋은 옷을 사줄 수 없는 경제력.
좀 더 참아 줄 수 없는 인내력,
한 번 더 안아 줄 수 없는 체력,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를 자꾸 일깨워 주는 게 육아였다.
나는 엄마가 되면 다 저절로 될 거라 믿었다.
예쁜 옷을 딱 맞게 입힐 수 있을 줄 알았고,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하며 아이와 카페에 앉아있을 줄 알았고,
아이가 가자는 곳 어디든 흔쾌히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멋진 엄마가 될 줄 알았지. 이렇게 매 순간마다 무너져 내리는 엄마인 줄은 몰랐다.
그 괴리감이 나를 굉장히 괴롭힌다.
저절로 채워진 완장이 그렇게 무서운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