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
서러운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나를 대신해 하룻밤을 꼬박 지새워 줄 사람이 하나 없었다.
새벽에 아이를 안고 허둥지둥할 때마다 전화통 붙잡고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아이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출산을 하고 몸조리도 안 끝난 상태로
내가 끓인 미역국에 밥을 말아 아기띠를 매고 서서 퍼먹을 때마다
엄마가 내 생일마다 끓여준 미역국이 생각났다.
눈물이 같이 삼켜져 짠맛이 배가 되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6년.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지는 게 아니었다.
그저 부재를 확인하는 빈도수만 높아질 뿐이었다.
특히 출산과 육아라는 카테고리에서는 더더욱 엄마의 빈자리가 커져서 내 자리까지 침범해왔다.
엄마는 엄마가 절실히 필요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나를 갖고 입덧은 없었는지, 임신 당뇨는 있었는지.
나는 어떤 아기였는지. 잠은 잘 잤을까, 예민하진 않았나, 먹는 건 잘 먹었을까.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진 않았을까.
엄마만 알고 있는 나를 묻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웃으며 그때를 추억해보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나는 겁도 없이,
엄마도 없이 엄마가 되었다.
가족 하나 없는 머나먼 땅 호주에서
엄마의 영혼을 등에 업고
겨우 겨우,
하루하루를 해치워나갔다.
그렇게 벌써 아이가 두 돌이 되어간다.
긴 고민 끝에 이민 4년을 끝으로 나는 한국의 가족품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남겨진 가족들 사이사이에서 엄마를 찾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제 엄마는 없다. 현실을 깨닫고 나니 나는 더 이상 찔찔 짜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찾을 수 없는 엄마의 그늘을
기대하고 찾고 무너지기를 몇 번을 했을까.
나는 이제 나를 그만 괴롭히기로 했다. 엄마의 그늘 찾기를 그만하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그늘이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