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슈라 Mar 27. 2020

코로나와 나

서류 여행 끝에 만난 위로

오늘 드디어 은행을 통해 신청서를 접수했다. 꼬박 20일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각종 서류들을 준비했다. 무엇무엇을 증명하고, 무엇무엇을 확인하고, 신청해야 하는... 그런 과정들. 그리고 그때마다 마주하는 뾰족하고 어두운 마음들과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사회적인 큰 이슈에 내가 밀접하게 닿은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팔로우하는 뉴스 계정들과, 방송뉴스의 소식들을 꼼꼼히 봤다. '티 안내기'는 내게 가장 강력하게 탑재된 기능인데 요즘은 고장이 났나 보다. 부모님, 다른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는, 이러이러한 정책으로 바뀌었대더라 하며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면 톡으로 링크를 보내고는 했다.


긴급대출을 시행한다고 발표하기 전, 소상공인센터로부터 안내받은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하루 동안은 고생해야 했다. 홈택스를 자주 들락날락하긴 했지만 몇 번을 들어도 익숙지 않은 서류들의 이름은 참 어렵고 낯설다. 그리고 마주하는, 내 '일'의 객관적인 지표들. 그 숫자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다음날, 오픈 시간에 맞추어 소상공인센터를 찾아갔는데 나 말고도 4명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 2명과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친구 2명.

직원분들은 출근하자마자 부랴부랴 서두르시는 듯했다. 번호표를 나누어주셨고, 준비한 서류 리스트를 체크해주셨는데 나 포함 다섯 명 중에 모든 서류가 준비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대기표 1번을 받고 상담원분을 마주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꾸려왔다고, 앞으로가 더 좋을 거야!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지난 한 해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 해의 매출액은, 내가 받으려는 대출금을 글쎄, 보장해줄지는 모르겠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줄어든 매출을 증빙하는 건 참 쉬웠는데. 매출 서류를 보는 상담원 앞에선 왠지 내 어깨는 바짝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남의 시선 따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지만, 단연코 사실만을 말해주는 이 숫자들 앞에선 당당해지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렇게 작아질 동안, 사람들은 순식간에 몰려왔고 상담직원분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센터는 북적였다. 대부분 서류때문이었는데, 가짓수가 많은 서류들 탓에 일단 방문 먼저 해보신 분들이 많았다. 연세가 좀 있으신 중년의 어른들이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홈택스도 다룰 줄 알고 서류작성에 익숙한 나조차도 헷갈리는 게 많았는데, 오죽할까 싶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상담원분의 말 위로, 사장님들의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말소리들이 마음에 콕콕 꽂히며 들렸다. 다른 직원분들은 이제 입구로 나와 그분들을 한 분 한 분 담당하며 안내해드리기 바빴다. 모두의 말소리들이 가득 찼고, 마스크 때문인지 창밖으로 비추는 봄햇살 때문인지, 센터의 공기는 따뜻하다 못해 더웠다. 짧은 상담을 받으며 앉아있는 이 자리가 참 부끄럽기도 하고, 또 너무나 감사했다.


확인서를 받았지만 바로 처리되는 일은 없었다. 한 주 하고도 며칠이 지난 오늘,

은행에서 대리접수를 해준다는 말에 안내를 받고 다시 한번 서류를 준비했다. 그때 준비했던 서류들과는 또 다른 서류들이다. 오전에 다른 일들이 있어서 은행업무는 최대한 빨리 보고 나와야 해서 은행 오픈 시간에 맞춰 가느라 서둘렀다. 오늘따라 더 따뜻해진 봄기운에 마스크 안쪽으로 자꾸 땀이 났다. 헥헥 대는 숨에 안경에 김이 서려 더 더운 듯했다. 은행 창구에 앉아 서류를 건넸는데, 유선으로 안내받은 것과 직접 방문해서 안내받은 서류들에는 차이가 있었다. 챙겨야 할 것이 3가지가 더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준비하려면 돌아가야만 했고 원래 하려던 일은 미뤄야만 했다. 유선상의 안내와 왜 다르냐는 말을 묻기도 전에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이었다. 다시 준비해서 와달라는 그 말이, 영혼 없는 자동응답기의 말처럼 차가웠다. 더운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은행을 나왔다.


그분들도 많이 정신없겠지. 그분들은 그냥 자기 일대로 하는 건데. 무슨 잘못이 있겠어.

그나저나 9시부터 찾아온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많은 것들이 뒤엉켜 마음을 짓눌렀다. 허기가 지는 것 같았다. 이 마지막 서류까지 접수하고 나면 칼칼한 김치 뚝배기 먹어야지. 아주 든든하게 공깃밥 2개 시켜먹어야지. 하며 다시 서류를 준비했다.


나를 말해주는.. 그리 많지 않은 숫자들을 적으며 다시 내 마음은 작아지고 요동이 쳤다. 좀 울컥하기도 했다.

내가 잘하는 게 맞을까, 이렇게.. 해 나가는 게 맞는 걸까? 나, 잘할 수 있을까?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는 나를 뜯어본다. 혼자만의 뾰족한 말들로 자꾸 내 마음을 찔러댄다.



마지막으로 만난 은행 직원분은 드디어, 내 모든 서류를 받아주셨고 여러 장의 신청서를 건네주었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다시 건네었을 때, 은행 직원분은 이제 접수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했다. 사업장의 사진이 필요한데, 그건 찍어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바로 보내주면 된다며 자신의 명함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시는 거다.

'엇.. '

그때 나는 마스크 뒤로_ 감사하다는 말이 넘어지듯_ 흘러나왔다.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 대기자가 워낙 많아서 5주 이상은 걸리실 거예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사진은 핸드폰으로 바로 보내주시면 되세요. '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엉켜있던 마음들을 풀 매듭 하나를 찾은 듯 안심이 되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물렁해지는 것 같았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 낯선 타인이 주는 위로의 한마디가 이렇게 뜨겁고 크구나 하는 걸 느낀다. 그건 아마도 진심이 묻어있어 그런 것 같다. 나를 찔러대었던 뾰족한 말들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아침부터 줄곧 생각했던 김치 뚝배기를 배불리 먹어야겠다. 사진을 보내고 받은 답장은 '충분하다'였다.

충분하다... 든든히 먹고 다시 힘내 보자고, 다시 좋은 말들, 응원의 말들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 뜨듯한 온도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