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스포 포함 후기

by 이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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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긴 소설들이 있다. 소설 속 장면들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히는.

[맡겨진 소녀]가 그랬는데, 이 소설 또한 그랬다. 빌 펄롱이 견뎌낸 지난날이 너무나 성실해서 가엾고, 눈 오는 날 소녀의 맨발이 너무 시려워서 가엾고, 그리고 네드와 미시즈 윌슨의 조용한 사랑도 가여웠다.


빌 펄롱의 두툼하고 거칠었을 손. 손톱 사이는 까맣게 때가 베어 있었겠지. 스토브 앞에서 빵을 태워가며 생각에 골몰하던 남자. 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했고, 미시즈 윌슨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실망해 마굿간에서 울던 날을 떠올리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던 날들을 생각했다.


소녀와 함께 밖을 나온 펄롱의 망설임없는 걸음을 읽으며 나 또한 긴장했고 설레였다. 그리고 곧 펄롱의 모습에서 미시즈 윌슨과 네드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희미하게, 조용하게 어쩌면 비밀스럽게 이어진 연대를 추측해보며 나는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냥 지나쳐왔을, 수많은 장면들이 뒤섞이며 떠올라 마음이 힘들었다. 숨막히는 폭염 속에 지친 남자의 목소리, 요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캬라맬 색의 고양이들, 그리고 SNS 속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생명들의 외침이 뒤죽박죽 덮쳐왔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아무도 몰랐을 먼지같은 존재, 하지만 결코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이 사소한 온기가 쌓이고 쌓이면 빛을 내며 파장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힘 앞에 사소한 움직임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고 싶다.


이 짧은 이야기가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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