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리는 오늘은, 공교롭게도 내가 백수가 돼서 처음 맞는 날이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에, 그것도 싱글여자가 백수 되는 기분이 어떠냐고?
싱글이든 아니든 똑같을 거다.
“해방이다!”라는 자유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2% 더 많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나 너무 열심히 일했어, 그러니까 좀 쉬어도 돼’라는
생각도 드는 한편,
‘이러다 영원히 쉬게 되는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
솔직히 그 사이에서 바쁘게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좀 더 어릴 때와는 확실히 다른 한 가지가 있긴 하다.
다시 출발선에 선 느낌이랄까.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출발을 했던 사람들이 다른 길과 다른 속도로 살아오다가
한 경기를 끝내고, 다시 새로운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또 다른 출발선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젊을 때처럼 이기고 싶어서 부릉부릉 거리진 않게 된다.
그보다는 (더 늦기 전에)지금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50이 되었을 때) 후회할 일이 무엇일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그런 것들을 신중하게 찾고 있는 중인데... 의외로 많다.
지난 주, 일본 드라마(빵과 스프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날)을 봤다.
아키코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엄마가 하시던 가게를 물려받게 되는데,
평생 반듯하게, 곁을 잘 안 주고 교과서처럼 살아온 그녀는,
샌드위치 가게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변한다.
긴가 민가 걱정하면서 확신 없이 시작한 일이지만,
오버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그녀만의 샌드위치 가게를 만들어 나가는데, 그 넘치지 않음이 편안해서 좋더라.
개업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한 이웃 손님이 그녀에게 이런 좋은 평가를 해준다.
“아키코의 가게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제 좀 더 불량해지려 한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시작하게 된 샌드위치 가게.
그리고 부딪힌 일상의 여러 가지 문제와 관계들..
그 소소함 속에서 그녀는 느슨해지는 법을 배운 것 아닐까.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백수라는 신분.
세상은 또 만만치 않겠지만,
난 달리기만 하느라 꽉 조였던 신발끈을 풀고, 느슨해지려 한다.
그동안 몸에 박힌 생활 DNA를 바꾸고,
그동안 30년 넘게 익숙했던 틀을 한번 깨보려 한다.
그동안 열심히는 살았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살았으면 할 만큼 했다 싶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를 생각하며 그런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 당장 필요한 건 하나다.
아키코처럼 좀 더 불량해지는 것.
그래서 좀 더 불량해지는 것을,
백수가 된 나의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어떻게 불량해질지 40대 싱글녀의 불량일기는 브런치에서 쓰려 한다.
썩은 개그지만 염원을 담아서.
“잘 돼야 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