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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생활 5일째.

by 신연재

백수생활 불과 5일째.

사회 부적응자처럼 지내고 있다.

주변에서는 여행 떠났느냐고도 하고, 뭘하면서 보내느냐고 묻는데

정작 난 정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압박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잡아서인지..

무언가를 선뜻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가 딱 잡히지 않아서 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다른 때 같으면 얼른 가방 싸서 여행부터 떠날 생각을 했을 텐데,

좀처럼 여행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 자신한테 신기할 정도다.

생각해 보니, 모름지기 여행이란,

그동안 빡빡한 현실 속에서 살다가 현실을 벗어난 곳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정리하고자 할 때 떠나는 게 제 맛인데

뭐 이 나이에 내 자신을 새삼스레 찾을 게 뭐가 있을라구..

지금은 나를 찾는 것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며 보는 것보다

갑자기 멈춘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인 듯 싶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를 적응시키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뜻.

그래서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평양냉면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이 백수의 시간을 그렇게 심심하면서도 묘하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책 욕심에 사서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을 읽고,

걱정이 올라온다 싶으면 열심히 운동하고,

여기서 멈추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셀프 위로, 격려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오늘 공식적 첫 외부 일정을 하나 잡았다.

월요일에 예약해 둔 건강검진. 두둥~ (건강 체크는 필수인 나이임. 내 몸은 소중하니까요~)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싶기도 했고,

얼마 전부터 계속 소화가 안 됐던 터라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일하면서 하두 스트레스가 심해서 어느 날은 후배한테

‘내 몸에 암세포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아.’라고 했는데 말이 씨가 된 거 아닐까 싶어 소심해져서 후닥닥 예약.

검진을 마치고 나서, 어떤 말을 들어도 의연하리라, 하는 각오를 다지며(혹시 암 진단을 받으면 엄마한테는 나중에 알려야겠다 기타 등등의 시나리오를 혼자 쓰면서)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비장하게 준비한 마음이 무색하게도 ...

아무 이상이 없단다. 털썩.

위가 약간 부은 것뿐이라면서 위장약 몇일 분만 처방해주었다.

분명 뭔가 탈이 났을 거라며 걱정했던 마음이 무안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끔찍한 스트레스를 잘 견뎌낸 내 몸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신 승리인가.

어쨌든 수많은 스트레스와 피곤함들의 공격에도 잘 방어한 내 몸에 경의와 감사를... (쓰담쓰담~)



어떤 작가가 인생은 '이어달리기'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확 와닿았다.

바통을 받고 자기한테 주어진 구간을 죽을 힘을 다해 뛰고 나서, 그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 주는 순간,

내 질주는 끝내야 한다.

아쉬워도 더 달릴 수 없고, 잘 달렸다고 더 달릴 수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해 주어진 구간을 잘 달렸고, 내 구간이 끝났다면 그걸로 됐다.

아쉬워도 거기까지가 나의 몫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편하게 느껴진다.

다음 경기가 있을 때까지... 조금은 이 시간을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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