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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Nov 13. 2020

내가 꼰대가 될 줄이야...

지갑은 얇고 할말은 많은 중년의 꼰대 탈출 방법  

나와 비슷한 세대인 중년들이 토로하는 공포가 하나 있다. 

바로 꼰대포비아. 

내 의도는 그게 아니다 하더라도 듣는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오지랖과 눈치 없는 잔소리일 수 있다. 

내 세대에서는 그런 꼰대질을 그냥 참아주거나 그러려니 했던 문화였기 때문에 꼰대질을 극혐하는 분위기에 위축되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가 되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 친한 후배가 직장문제와 결혼문제로 고민이 많을 때였다. 내 딴에는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쿵저러쿵 조언했다. 나름 상황을 보는 시야도 넓고 사람을 보는 안목도 더 나을 거라는 전제 하에서. 

내 입장에서는 다 “너를 위한” 잔소리였으나, 1절에서 끝나지 않은 조언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폭력 같은 훈계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내가 그렇게 강력하게 말하지 않으면 후배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강요 아닌 강요를 하다가 어느 날 후배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그때도 사실 나 때문이 아니라 후배의 컨디션이 안좋거나 마음이 복잡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꽤 눈치 있다고 자부했는데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못하다니. 

참다 참다 후배는 “그만 좀 하세요”라고 정색했다. 

그 말에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당황해서 급하게 사과를 했으나, 이미 내 꼰대질로 후배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한 상황이었다. 인내심 많은 후배는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참고 참다가 한계에 부딪힌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몹시 부끄럽고 미안하다. 한편으론 나의 꼰대력에 스스로 놀라 자빠지기도 했다. 내가 그럴 줄이야...  

덕분에 약이 되긴 했다. 꼰대질로 소중한 관계를 잃을 뻔 했던 터라, 그 이후로는 조언을 구하지 않으면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치는 선에서 조절을 하려 노력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꼰대가 아닌 줄 알았고 안 될 줄 알았다가 '나도'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행이다.



며칠 전, 마흔 중반의 후배를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꼰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마흔 중반인 후배는 자기도 꼰대가 될까봐 몸을 많이 사린다는 이야기를 하며, 하소연을 했다.

“이제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난 아직 할 말 많고 지갑은 얇은데 어떡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나도 나도”했다. 

둘이 웃다가 그래도 내린 결론은 같았다. 

“어디 가서 그러면 욕 먹으니까 우리끼리만 꼰대하자” 


한편으로는, 이게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꼰대가 될까봐 지나칠 정도로 눈치보고, 조심하고, 말을 삼키는 건 어쩐지 세대와 세대 사이에 벽을 세우고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려울 때 혹은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실제 도움을 받기도 했다. 따뜻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었고, 회초리 같은 조언을 들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들이 정돈되고 깎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겐 고마운 선배, 어른들이 있었다. 난 그들에게서 한번도 꼰대의 향기를 맡은 적이 없다. 

그들의 공통점은 섣불리 정답을 말하지 않고, 평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을 한다는 점이었다. 판단과 가르침은 없었지만, 정말 필요할 땐 정곡을 찌르는 한방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지 않은 한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라고 하지 않아도 내가 찾아가곤 했다.  

반면에 처음엔 좋았다가 나중에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되는 사람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정답을 정하고 말하는 사람. 이해나 공감보다 자신의 말과 영향력이 더 중요한 사람. 


마음은 전자와 같이 되고 싶으나, 아직은 꼰대가 되기 싫어서 엄청 눈치를 보면서도 할 말은 많다고 하는 모순의 존재다.

그러면 꼰대가 아닌, 어른의 조건은 무엇일까.

잘 들어주는 건 기본. 할 말은 많아도 적당하게 하는 절제력.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 자세, 그러나 조언을 해야 할 땐 정확하게 할 수 있는 현명함..   

말이 번지르르하지 그런 어른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끊임없이 자문하고 돌아보는 마음이 있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닐까, 하면서 스스로 다독인다.

수많은 꼰대질을 그냥 참아냈던 세대였다가 꼰대라고 손가락질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세대가 되어버린 자의 비겁한 물타기라고 욕먹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향점은 갖고 나이들고 싶다. 꼰대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해야 할 말은 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 찾아오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다. 꾸준히 쓴다는 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늘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아직 너무나 요원해서 아예 지갑을 두툼하게 만드는 게 더 빠른 길인 것인가.. 고민은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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