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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Nov 03. 2020

섹시한 사람이 된다는 것

나이보다 자신만의 길을 찾기

존재 자체가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거기 있어줘서 고마운 사람.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20대 젊은이들이 일하는 곳에서 50넘은 내가 붙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는데, 사실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부침이 심했다.

워낙 사람이 들고나는 것이 심한 곳이다 보니 체계적인 교육은 언감생심이었다. 첫 출근한 날 아침에 전체적으로 카운터와 음료 업무를 시뮬레이션한 것 외에는 바로 실전이었다.

젊었을 때라면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빨리 적응했겠지만, 오십이 넘은 머리와 몸은 버퍼링이 너무 심했다. 

내가 버벅거리는 바람에 고객의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때는 땅을 파서 도망가버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그때는 민폐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는 곳인 만큼, 일하는 사람들끼리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데 초보가 들어가서 버벅거리면 답답한 건 당연한 일. 

기다려주거나 찬찬히 가르쳐줄 여유 같은 건 별로 없다. 게다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최소 인원으로 움직이다 보니 더 빡빡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건 다 초보 탓이었다. 내가 한 실수가 아닌데 초보라는 이유로 뒤집어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 뭐라 반박하기도 치사한 상황들이 쌓이니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런 사소한 일에 억울해 하는 나를 발견하면 ‘내가 이 나이에~’라는 생각에 또 기가 막히고.


내가 아이스크림을 빼는 속도가 느리자, 한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내 손에 든 컵을 확 뺐더니 “됐어요. 내가 할게요.”할 때가 있었다. 무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못한다고 기회를 주지 않고 빼앗아 버리면 난 언제 배우는 건가.. 싶어서 좀 어안이 벙벙했다.

가장 어려운 건,, 여러 불합리함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다. 나이 먹어서 그런 일을 당하려니 공연히 서러웠다. 

그때 숨통을 트여준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경력 1년 선배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같은 시간대 일하게 된 언니는 내가 당한 것을 본 날, 휴식시간 때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나누며 내가 답답해하는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주었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이다 한 병, 아니 활명수 한 사발을 들이킨 느낌이었다.

언니는 1년간 일하며 불합리함에 대해 나이어린 선배들에게 조근조근 반기를 들었고, 부당한 대우에 대해 정중하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나마 나아진 건지, 말해도 소용이 없었던 건지.. 그건 내가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버텨주고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애 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50넘어서 무슨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나.. 하는 시선들.. 그런 시선들을 이겨낸다고 하고 도전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나보다 앞선 ‘언니’라는 존재가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컸다.  

그때 내가 언니에게 말했던 게 있다.

“언니는 존재 자체가 복이네요.”


tvn <온앤오프> 프로그램 중에서



올해 가장 인상적인 가수를 꼽는다면,,, 단연코 가수 엄정화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오랜 친구인 모델 이소라와의 대화였다.

오십이 넘어서까지 자신의 입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에 내 귀가 솔깃했다.

엄정화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발라드가수로 전향하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가요계는 댄스가수일 경우 30세가 넘으면 발라드를 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에 맞춰서 노래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이가 든만큼 춤을 그만추어야 한다는 시선들, 그 시선들과 20년을 싸웠다는 엄정화는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들 생각에 맞췄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에요.”

‘나이’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따라갔기에 지금의 자신의 있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얼마 뒤, 환불원정대를 통해 드러난 댄스가수 엄정화의 존재감은 분명 뿌듯하고 든든하고.. 누구보다 섹시했다.  

섹시하게 나이든다는 건 뭘까..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뻔하다. 젊고 섹시한 사람처럼 입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언니, 그리고 가수 엄정화를 통해 섹시하게 나이든다는 것에 대해 하나의 단서를 찾았다.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잘 버텨주는 것. 그러나 버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자리에서 그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저 사람이 있어줘서 든든하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요구하는 천편일률적인 나이다움보다 자신만의 길을 따라가는 것. 아닌 것에 대해 함부로 무기력하게 수긍하지 않는 것.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가 섹시함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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