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리듬으로 삽니다를 읽고..
방송국에서 막 잘리고 상황이 좋지 않을 때나 일이 너무 안 풀린다고 생각될 때 엄마는 항상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와" "끝을 잘하고 나와야 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마무리하고 나오란 뜻이었다. 그땐 엄마의 그 말이 참 와닿지 않았다. 내 나이가 이렇게 많으니 견디기만 하다 좋은 날이 오기도 전에 할머니가 돼서 내 인생이 '쫑'날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의 저변에는 '난 이렇게는 못 살아' 하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릴 부정하니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그놈의 좋은 날은 도대체 언제 와? 다 늙어서 오면 뭐 해?"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냥 견디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고 '좋은 날'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날인지도 헷갈렸다.
돌이켜보면 내가 바란 좋은 날이란 보란 듯이 잘 사는 삶이었던 것 같다. 잘 안 풀리고 시들거리는 내 자존심을 세워서 번듯한 자리로 인도해주는 역전승 같은 삶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날을 바랄 때는 내 삶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대로 내 마음속에 일던 폭풍이 잠잠해지고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이상하리만치 행복을 느끼는 빈도가 늘었다.
바로 그게 내가 바라던 좋은 날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방송국에서 일할 일은 없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고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서로 끝이 좋았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와" 내가 어딨는지 알 수 없었던 백수 생활 때, 나만 낙오되고 소외되고 뒤처진 느낌이 들어 괴로웠을 때 엄마의 이 말은 공허하게 들렸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삶의 최선을 다하면 그 시간은 버텨진다. (중략) 그렇게 버티다 보니 좋은 날에 이르렀고 돌이켜보면 그때도, 지금도 좋은 날이다. - 132~134p
이런 데서 일할 것 같게 생기지 않았다는 사장님의 말처럼 나는 이런 곳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는 의식이 계속 있었던 탓에 후배의 등장으로 비대하기만 할 뿐 뿌리가 단단하지 못했던 내 자아는 또 무너졌다. 내가 다다르고 싶었던 곳과 지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곳과의 괴리감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닥친, 무서운 재난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을 할 때였다. (중략) 결국 나는 항복했다. 그러자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가 아니라 나라고 왜 아닌가?"라는 말이 내 마음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 10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