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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Mar 11. 2024

수술 앞둔 비혼에게 필요한 것

소설 <비혼이지만 하고 싶습니다> 2화

3년 전 그때 일이 떠올라 소연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

‘또야 또? 또 보호자 없는 신세가 되는 거야?’

그때의 경험 탓인지, 소연은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서로 보호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그 사건이 지나고 살만해 지니 그때의 절절함은 휘발되고, 혼자 해내는 일상을 별 불만 없이 영위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지금은 혼자 어찌해 본다 하더라도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아니, 생길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이런 상황이 되자, 소연은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마음이 급해졌다.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 누군가가 씨가 말라버린 나이. 그러다 문득 소연은 3년전쯤 친구 나선이가 소개해 준 정육점집 남자가 생각났다.

그때도 추석 연휴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나선의 집에 놀러갔을 때, 나선이는 점심을 준비하면서 갑자기 소연이에게 물었다.

“너.. 남자 한번 만나볼래?”

소연은 흠칫 놀랐다. 그동안 나선이 소개해 준다고 했던 남자들을 보면 소연과 결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남자인데?”

소연이 물으니 나선이 양배추를 다듬던 손을 앞치마에 닦더니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겠다는 듯이 소연 앞으로 바싹 다가와 앉았다.

“요즘 우리 동네 새로운 정육점이 생겨서 가봤는데, 거기 주인이 참 좋더라구. 고기도 좋아. 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어. 그런데 결혼을 안 했다는 거야.”

거기까지 말을 듣는 순간, 소연의 머릿속에서는 삐요삐요~하는 경고음이 들렸다.

‘설마, 나선이 너 지금 나랑 그 정육점 주인하고 엮을려고 하는 거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설마가 당연하다는 듯 사람을 잡았다.

“정육점 하는 남자, 어때?”

순간, 소연의 머리에선 지진이 났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소개도 받아봤지만 정육점 주인은 처음이었다. 소연이 대답을 못하고 있자, 나선은 조금 더 당겨 앉더니 신이 나서 말했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니? 사람 좋으면 그만이지. 가방끈 긴 사람하고 사나, 아닌 사람하고 사나,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야. 결혼은 진짜 실전 생활이거든. 성실하고 성품 좋으면 그만이야. 한번 만나볼래?”하며 소연의 눈치를 살폈다.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소연은 당황했다. 대학원까지 나오고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소연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과 결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랐다. 눈을 많이 낮춘다고 해서 친구들이 말하는 ‘아무나’도 만나봤지만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정육점 주인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옵션이었다.

“그 사람이 괜찮다고 할까?”

에둘러 말했는데, 나선은 눈치 못채고 “그 사람도 오히려 그렇게 말하더라구. 너 같은 사람이 자기 만나겠냐고.”하면서 은근한 압박을 시작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나선은 평소 이렇게 막무가내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소연에게 갖다 붙였기 때문에 소연이 느끼는 피로감은 상당했다.  

이름 따라 간다고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나서다니. 소연은 그쯤에서 선을 그었다.  

“나선 씨. 그만 나서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때 아쉬워하던 나선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거절하면서도 사실 소연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연도 말로는 나선처럼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지만, 자기 안에 이미 편견이 가득하다는 게 여지없이 까발려진 셈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3년 전 그 정육점 남자가 소연의 머리를 스쳤다.

‘그때 괜히 거절했나? 한번 만나보기라도 할걸 그랬나?’

그때는 대쪽같이 거절해놓고, 지금 같은 상황에 놓이고 보니 그 사람도 아쉽게 느껴진다는 게 어쩐지 께름칙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소연은 마음을 다잡았다.

‘속물이고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내 노후를 자존심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번 누구든 만나보자.’

마침 이번주에 친구들하고 만나기로 되어 있으니, 그때 조심스레 운을 띄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수술받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면, 친구들도 소연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할 테고,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며 다시 경각심을 갖고 소개해 줄 사람을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연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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