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만난 소연은 수술 받게 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간병해 줄 사람이 없어서 현타를 맞았다고 했다.소연은 자기가 이런 말을 꺼내면 친구들에게서 나와주었으면 하는 모범 답안이 있었다. 이를테면, 빈말이라도 '어떡하니 내가 있어줄까' 라든가 '이럴 때 옆에 남편이 있어야 한다니까. 얘들아, 다음을 위해서라도 소연이 소개해 줄 사람 있는지 우리가 발벗고 알아보자' 같은 말. 그러나 소연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말이 나왔다. 시작은 나선이었다.
“요즘 외국인 간병인은 하루에 12만원에서 13만원 정도 해. 우리나라 간병인은 15만 원 정도인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래. 그냥 하루이틀 정도면 되니까 외국인 간병인을 고용해봐.”
그 순간 소연은 속으로 말했다.
‘너 T냐?’
소연은 솔루션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래?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좀 불편해.”
그러면서 말았지만, 나선은 내내 간병인을 고용하면 된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친구 서운은 소연의 말을 듣자마자 말했다.
“남편 있어도 안 오는 경우도 많아.”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유부녀 친구 조신이 거들었다.
“남편 있는데 신경도 안 쓰고 와서 코 골고 잠이나 자면 그건 더 속 터져.”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누군가 옆에 있든 없든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 있는데 느끼는 외로움이 더 진하다는 말도 흔하게 들었다. 경험에서 나온 친구들의 말이 현실적인 조언과 위로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상황에서는 와닿지가 않았다.
한 10여년 전쯤, 서운은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친정 엄마는 치매였고, 아버지는 돌아가신 상황에서 남편은 회사에 휴가를 내며 발벗고 나서서 간병을 했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서운의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서 와줄 수 있냐는 부탁까지 했다. 소연도 그 전화를 받은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때 너무 급해서 이 사람 전화번호에 있는 친구들 순서대로 전화했어요. 그때 와준 친구들은 제가 너무 고마워서 죽을 때까지 기억할 것 같아요.”
서운의 남편은 그러면서 명절 때 과일상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나선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친정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받을 때 남편이 번갈아 가며 간병을 해주지 않았던가. 그들 말대로 누군가 옆에 있다고 해서 다 보호자 역할을 해주는 건 아닐 테고, 남편이 없어서 보호자가 없는 친구에게 건네는 그들 나름의 위로였겠지만 소연은 생각했다.
‘그런 건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이럴 때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주변에 좋은 사람 있나 한번 알아볼게. 그런 말 하기가 그렇게 힘드냐 이 나쁜 지지배들.’
“너 그때 나한테 소개해 주려고 했던 정육점 남자 있잖아.”
소연이 어렵게 입을 뗐다. 나선은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생각이 났다는 듯이 “웅, 그 사람 알지. 아직도 단골이야. 근데 왜?” 하며 물었다.
눈치 빠른 나선이 소연이 물은 이유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굳이 물을 땐 뭔가 아닌 거였다.
“아니, 그때 내가 너무 편견을 갖고 있었던 거 같아서.”
다 말을 끝내기 전에 나선이 “결혼했어”라고 말하는 바람에 소연은 무안해졌다. 이쯤 말을 꺼내면 소연이 지금 무엇을 바라는지 알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솔루션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그 뒤로 소연은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해봐야 돌아오는 건, 원하지 않는 말이었고 그저 건조하게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정보만 이야기하는 편이 덜 상처받겠다 싶었다. 그런데도 솔루션의 행렬은 그치지 않았다.
필연은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소연의 말을 듣고 “간병은 누가 해?”라고 물었다. 소연이 보호자가 없어도 된다는 말을 하자, 필연은 어떡하냐는 말과 함께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나? 한 순간, 필연이 말했다.
“그래서 주변에 너보다 7-8살은 어린 친한 동생이 있어야 해. 우리 나이보다 젊어서 뭔가 빠릿빠릿하게 도와줄 수 있는 동생말이야. 나중에 더 나이들어서도 그렇고. 그런 동생 없어?”
소연은 참다 못해 한마디했다.
“내 주변에는 다 T만 있나? 왜 다들 솔루션을 해주기 바쁜 거야? 내가 그런 걸 모르겠냐고.”
필연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것도 공감이야. T식의 공감.”
소연은 “그런 목적으로 7-8살 어린 동생들을 친구 만들 순 없잖아.”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7-8살 어린 후배들은 누가 있는지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소연도 안다. 친구들의 솔루션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우정의 다른 면이라는 걸. 그걸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차마 입 밖으로 나도 누군가 필요하다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일 실망했던 건, 어느 친구의 입에서도 “누군가를 만나야 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친구들마저 내가 결혼하거나 누군가를 만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구나.’
이제 그런 희망마저 끊긴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쓸쓸했다.
“엄마. 보호자가 없는 게 이렇게 당황스러운지 몰랐어.”
소연은 엄마 춘자에게 넋두리를 했다. 소연만큼 춘자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간호해주면 좋은데, 난 못해.”
칼 같은 거절. 처음엔 서운했으나 소연은 이내 서운함을 접었다. 80이 넘은 춘자는 요즘 들어 부쩍 기력도 없고, 잘 못 들으시고, 행동도 느려졌기 때문에 간병을 못한다는 말은 백점짜리 자기객관화였기 때문이다.
소연도 애초에 춘자한테 부탁할 생각도 안 했지만, 춘자가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말리는 것도 일이므로.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남편이 필요한 거야.”
소연도 모를 리 없는 말을 춘자는 한탄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나마나한 말을 또 하시네.”
그렇게 소연은 춘자의 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는 너가 해주지만, 나중에 더 나이들어봐. 이런 일들이 또 생길 텐데 언제까지 너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전 같으면 짜증이 났을 텐데, 이번에는 소연도 ‘보호자’라는 말에 꽂혀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온도로 엄마의 말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