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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Mar 25. 2024

혼자가 버거워지는 순간

소설 <비혼이지만 하고 싶습니다> 4화

수술 전날, 소연은 짐을 꾸렸다. 블로그에서 본 대로 필요한 것들을 챙기니 캐리어가 필요했다. 수건 세 장, 압박 붕대, 속옷 6장, 수면양말.. 그리고 4박5일 입원이니 그동안 읽을 책. 그리고 휴가를 내긴 했어도 중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노트북을 넣었다. 다 싸놓고 보니 꽤 무거웠다. 

다음달, 소연은 5시 40분에 일어났다. 수술 1번 타자라 6시까지 병원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머리를 감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밖을 내다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것도 빗줄기가 꽤 굵었다. 소연은 큼직한 비닐봉투를 찾아서 캐리어에 씌우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는 새벽. 길은 깜깜했다. 조금 무서워서 소연은 호신용 호루라기를 목에 걸었다. 한쪽 손엔 우산, 한쪽 손엔 캐리어를 끌고 가자니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캐리어에 씌운 비닐이 자꾸 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중간중간 서서 비닐을 다시 씌우기를 몇차례 하다 보니 행군을 하는 것처럼 고됐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왜 그렇게 아득하게 느껴지는지. 수술받기 전에 쓰러지겠다 싶었다. 소연은 어릴 적 꿨던 악몽이 생각났다. 도망을 가는데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였던 너무나 힘들었던 꿈. 병원으로 향하는 소연의 심정이 그랬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미리 안내받은 대로 수술실이 있는 3층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간호사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 친절함에 마음이 햇살받은 것처럼 따뜻해지고 안심이 되었다. 간호사가 준 서류에 이것저것 쓰기 시작하는데, 영락없이 <보호자>란이 있었다. 지정보호자 1인만 가능하니 일단은 지정보호자를 엄마로 쓰고, 수술 상황을 알려주는 문자는 지방에 있는 오빠를 수신인으로 했다. 엄마는 문자 확인을 잘 못 하기 때문에 오빠가 문자를 받고 엄마에게 전달하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쯤 대기한 끝에 드디어 소연은 수술실에 들어갔다.


“일어나세요. 정신 차리세요.”

간호사의 말에 정신을 깨자마자 몸에 통증이 훅 느껴졌다. 이미 수술은 끝난 상태였다. 몸이 떨리고 심호흡을 해서 가라앉히고 그 와중에 너무 아파서 진통제 맞고.. 이런 과정을 3시간 거친 뒤 입원실로 올라왔다. 간호사가 중간에 ‘보호자 안 오세요?’라고 물었고 이따 온다고 하자 소연의 짐은 간호사가 들고 와주었다. 소연을 침대에 옮겨 누이며 간호사는 수술 첫날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배 쪽에 세 개의 구멍이 뚫렸고, 피주머니와 소변주머니를 차고 있으니 배 쪽의 통증이 심했다. 그렇게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데 똑똑 소리가 났다. 소연의 엄마 춘자였다.  

“완전 중환자네.”

그러고는 정신 없는 소연을 앞에 두고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보호자 출입증 발급받는데 너무 오래 걸려.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 기다리다 사람 다 지치게 하네. 아휴~ 힘들어.”

오래 걸린 이유는 본인이 주민등록증을 안 갖고 와서인데. 그러다 제대로 말도 못하는 소연을 보고는 안 되겠는지 결심한 듯 일어섰다. 

“너 상태 보니까 안 되겠다. 오늘은 내가 여기서 자야겠다.”

소연은 마취에서 덜 깨서 몽롱한 상태로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렸지만 춘자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더니 자신이 먹을 약과 칫솔을 가지러 가야겠다면서 결국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 두 시간쯤 지났을까. 춘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내려오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거 있지. 7층에서 걸어서 내려왔어. 지금 다리가 보통 아픈 게 아냐.”

이 말인즉슨, 못 온다는 신호였다. 소연은 얼른 “오늘 오지 마세요”하고 겨우 입을 뗐다. 그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춘자의 답이 돌아왔다.

“그래. 오늘은 못 가겠다. 7층까지 걸어서 못 올라가.”

소연도 엄마의 무릎 상태를 알고 있어서 엄마의 말이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사실 누군가 옆에 있더라도 딱히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결국 소연은 긴긴 밤을 통증으로 뒤척이며 혼자 앓았다      


고장 난 엘리베이터가 수리되고 다음날 춘자는 오후 1시쯤 소연의 병실을 방문했다. 금식인데 과일을 잔뜩 싸왔다. 속옷과 팬티라이너를 편의점에서 사다 달라 했는데, 소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 푸념이 이어졌다. 

“이거 사려고 편의점 찾다가 앞으로 고꾸러질 뻔했어. 편의점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아주 큰일날 뻔 했네. 그 놈의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내가 알 수 있어야 말이지”

오는 길에 한 집 건너 있는 게 편의점인데..  그래도 소연은 넘어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 나이에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그건 더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제 7층에서 계단으로 내려갔더니 무릎이 너무 아파. 어젯밤에도 통 잠을 못잤더니 아주 기운이 없네.”

저렇게 말할 거면 뭐하러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싸울 기력도 없어서 소연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소연의 무반응에 잠시 눈치를 보던 춘자는 보호자 침대에 누워 금세 잠이 들었다. 

와서 해주는 건 없어도 옆에서 누워 잠든 엄마를 보며 소연은 그래도 보호자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잠이 깬 춘자는 냉장고에서 유산균 요구르트를 하나 마시고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소연이 “이제 가봐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집으로 갔다. 

소연은 병실에서 엄마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금세 땅으로 꺼질 것처럼 팔랑이는 몸이었다. 저 몸으로 딸 수술 뒷바라지한다고 와야 하는 엄마는 고역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이렇게라도 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입원해 있는 동안 딱히 보호자가 절실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은 머리를 감고 싶을 때였다. 수술하고 이틀이 지나니 머리는 떡이 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지저분해서 도무지 참기가 어려웠다. 복도를 걸으며 보니 한쪽 켠에 ‘샴푸실’이 보였다. 

옳다구나 싶어서 들여다보니 미용실 샴푸실처럼 의자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거였다. 걷다 보니 한 부부가 그곳으로 들어갔다. 입원할 때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이런 때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게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샴푸실에 들어가는 부부가 꽤 있었다. 삼일째 되는 날이네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다. 할 수 없었다. 춘자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엄마, 나 오늘 머리 좀 감겨줘.”

“그래.”

춘자가 왠일인지 한번에 오케이를 했다. 말 나온 김에 해야겠다 싶어서 소연은 춘자를 이끌고 샴푸실로 향했다. 복부가 엄청 당길 때여서 소연은 아주 조심스럽게 샴푸실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젖혔다. 이제 춘자가 샤워기에서 물만 틀면 되는 상황. 그런데 뭔가 당황한 듯한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왜 그래?”

소연이 묻자 춘자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물 어떻게 트는 거야?”

아차차. 소연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춘자는 모를 수도 있는 작동법이었다. 소연은 다시 당기는 배를 부여잡고 옆으로 겨우 일어나서 샤워기 트는 법을 설명했다. 

“한쪽은 샤워기니까 이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물이 나오고, 이쪽 수도 꼭지는 물이 나오면서 온도가 조절되는 거야. 이 수도꼭지를 돌려야 샤워기에서 물이 나와요.”

설명을 들은 춘자가 작동해 보더니 드디어 물이 나왔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투덜거리던 춘자가 샤워기를 머리에 대고 물을 적셨다. 그런데 이번엔 샴푸가 말썽이었다. 샴푸를 몇 번 소연의 머리에 바르더니 “왜 거품이 나지 않냐”면서 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물이 적으면 샴푸가 거품 안 나고 그냥 말라버려요. 물을 좀 적시고 문지르면 돼. 지금 머리가 말라서 거품이 안 나는 거네.”

그도 그럴 것이 샴푸를 여기저기 바르고, 머리를 문지르기까지 그 사이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 가다간 머리 한번 감는 데에만 20분이 넘어갈 태세였다.

“엄마, 그 정도면 됐으니까 이제 그만 행궈주세요.”

구석구석 빡빡 닦는 걸 포기한 소연이 엄마를 재촉했다. 머리를 헹구는 일도 순조롭진 않았다. 샤워기 조절을 못해서 물은 옷으로 튀고. 온도도 뜨거웠다.

“엄마. 머리 화상 입겠어.”

그러자 춘자는 물을 다시 조절했는지 뭘 잘못 만졌는지 이번엔 찬물이 쏟아졌다. 

“너무 차가워!!!”

소연이 약간 큰소리로 말하자 춘자는 귀찮았는지 “이 정도는 머리 시원하고 좋지”하면서 계속 찬물로 헹구었다. 

“엄마, 이건 시원한 게 아니야. 너무 차가워.”

본인도 너무 차가웠던지 이번엔 그냥 수도꼭지를 잠가버렸다. 

“에이, 힘들어서 못해 먹겠네.”

소연도 화가 나서 됐다고 하고 엄마보고 그냥 병실로 가 있으라고 했다.

“엄마한테 머리를 감겨달라고 한 내가 잘못이지.”

그러자 춘자도 지지 않고 말했다.

“기껏 해줘도 좋은 소리도 못 듣네.”

샴푸가 다 헹궈지지 않은 머리를 말리며 소연은 공연히 서러워졌다. 몸으로 도와주지 못하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면 좋으련만, 공연히 서운해져서 병실로 돌아온 소연은 춘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 혼자 다닐 수도 있으니까 내일부턴 안 와도 돼요.”

춘자는 소연은 흘깃 보고는 “알았어, 나도 지쳤어. 이제 쉴란다.”라는 대답을 망설임없이 했다. 그렇게 보호자 없이 이틀을 지내고 퇴원하는 날. 올 때와 마찬가지로 소연은 혼자서 퇴원 수속을 밟고 캐리어를 끌며 집으로 향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계단을 이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대신해줄 사람이 없으니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정문 앞 계단을 내려오고 있자니 같은 날 수술을 받고 복도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호자와 함께 퇴원을 하고 있었다. 소연은 생각했다.

‘나 괜찮은 걸까. 내가 필요한 건, 무엇일까. 보호자인가, 남편인가.’ 

어떤 이름이건 그건 상관없었다. 

하나만은 분명했다. 이런 일들을 지금은 혼자서 할 수 있지만, 혼자 하기 버거운 순간이 분명 올 것이고 그때에는 이렇게 혼자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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