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꼭 같이 살아야 할까?
소설 <비혼이지만 하고 싶습니다> 5화
사실 소연은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결혼은 글쎄다. 이제 오십을 앞두기까지 혼자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누군가와 한집에 사는 것이 어쩐지 불편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군가와 혈연으로 얽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조금 더 젊었다면 모르겠지만,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도 갱년기 증상으로 힘든 마당에 여든이 넘은 내 엄마를 보살피는 것만도 벅찬데 다른 사람의 부모와 가족까지 챙기며 집안 대소사에 참여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배 터지게 욕먹을 생각이고, 이기적이라 손가락질 받는다 해도 소연의 생각은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공간은 꼭 필요했다.
소연이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성향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자기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탓도 크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살면서 소연이 자기 방을 가진 건, 대학교 입학하면서다. 그 전에는 오빠 방만 있을 뿐, 소연은 거실에서 생활했다. 책상도 이불도 다 거실에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하고 처음으로 작은 방이 생겼을 때, 소연은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 가진 않았다. 대구에 사는 사촌동생이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소연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고, 여자인 소연과 한방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게 사촌동생과 한방살이를 한 게 4년. 사촌동생이 독립해 나가면서 드디어 방이 생긴다고 좋아했는데, 마침 오빠가 결혼과 직장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오빠의 전세비를 보태주느라 작은 집으로 또 옮겨야 했다. 거기서 골방 같은 방 하나를 겨우 쟁취할 수 있었다. 침대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방이었지만, 소연에게는 너무나 아늑하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큰 방을 갖고 자기만의 취향으로 꾸미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점점 소연이 살림을 하게 되는 날이 많아질수록 주방을 좀 더 자신에게 맞게 고치고 싶다는 마음도 간절해졌지만 둘 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일단 넓은 집으로 이사갈 돈이 없었고, 주방은 춘자가 자신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왔지만, 그만큼 자신의 공간에 대한 욕구는 부풀어올랐다.
오롯이 혼자 있게 되면 또 누군가와 살맞대며 사는 생활을 그리워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자기 공간을 갖지 못한 채 살아온 내향인 소연으로서는 자신만의 공간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그렇다 해도 독야청청 혼자 살겠다는 건 아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조건은 분명했다. 꼭 한 집, 한 방에 살아야 한다는 사람은 NO. 각자 독립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할 땐 언제든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 ‘그러니 아직 결혼을 못했지’라고 욕을 먹는다 해도 소연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럼 어떻게 살겠다는 거야? 동거도 아니고.”
소연의 이야기를 들은 나선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각자 집에 살면서 필요한 때 서로 만나고 그런 거 있잖아. 보호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편한 것만 하겠다는 거네. 서로의 관계에서 책임이라는 게 빠지면 되겠어?”
“무책임하라는 게 아니라 각자의 선을 잘 지키자는 거지. 신뢰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난 같이 사는 건 자신이 없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붙어 있어서 좋은 사람이 있고 거리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잖아.”
“그럼 혼자 살지 뭐하러 누군가를 만나?”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꼭 애인 없이 혼자 살아야 해?”
소연이 그동안 결혼한 수많은 부부들을 보면서 느낀 건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중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각자 침대를 사용하거나 각방을 사용하며 따로 자는 부부들도 많았다. 서로의 온도가 맞지 않아서, 남편이 코를 많이 골아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서, 편해서.. 각자의 이유가 다 있었고 그런 생활에 대해 대개 만족하고 있었다. 사이가 안 좋아서 따로 자거나 각방 생활을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삼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 부부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결혼하면 부부는 꼭 한 이불 속에서 자야 한다든가, 싸우더라도 잠은 같이 자야 한다든가. 그런 말들도 어쩌면 각자의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신화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틀린 말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하는 100프로 진리는 아니라는 것. 소연은 그런 이야기를 나선에게 쏟아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선이 그것도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다 좋다 치자. 우리 나이에 너 같은 생각을 가진 남자가 얼마나 되겠니?”
그 말에 소연은 입씨름을 그만두었다. 맞는 말이다. 소연 또래의 남자라면 적어도 여자를 만나면 결혼해서 한 집에 사는 걸 정상이라고 생각할 테니.
‘정말 없을까. 한 명도 없을까. 설사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합의하면서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을까. 그 정도로 열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소연은 문득 얼마 전에 본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서 조 블랙의 대사가 떠올랐다.
I don’t know. Lightning could strike. 혹시 모르죠. 번개에 맞기도 하잖아요.
그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한다.
“당신과 내가 결혼한다면, 예를 들어 그렇다면 말이죠. 우린 서로 돌보는 거죠. 남자가 여자를 돌보면, 여자도 남자를 돌보고 그렇게요.”
그러자 여자가 답한다.
“그런 여자를 찾긴 힘들 거에요.”
여자의 말에 조 블랙이 한 말이 바로 이 대사였다.
“혹시 모르죠. 번개에 맞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마음에 딱 맞는 상대를 만날 확률이 번개에 맞을 확률이라는 뜻인데, 소연도 이 말에 동의했다. 번개에 맞을 확률은 28만분의 1. 로또 맞을 확률은 814만분의 1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로또 맞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잘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리라. 그래서 번개 맞을 정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아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소연은 그 정도의 기대감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미 충분히 오래 살아 사람에 대한 환멸이 깊어졌지만, 그래도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건 딱 저런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연은 갑자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개에 맞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도 이제 아무도 나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마당에 자기 스스로 남자를 찾고 싶다고 하는 건 좀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건 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