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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Apr 08. 2024

언제 만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진다

소설 <비혼이지만 하고 싶습니다> 6화

“남성 또는 여성이 중년에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고 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산악회가 대표적입니다. 소개팅도 쉽지 않고, 기타 다른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접근성 측면에서는 최고입니다. 건강도 챙기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좋은 수단이 됩니다.”     


소연은 인터넷을 검색하다 이 문구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라.. 참 원색적인 표현이지만, 솔직한 문구라고 생각했다. 사실 소연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금 어디를 가면 좋을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찾고 있으니 말이다. 

산악회에 가입하는 방법은 매우 많았다. 일단 카카오톡 채널에서 산악회를 치면 수많은 산악회가 떴다. 요즘 기사에도 떴듯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술판을 벌이는 그런 산악회는 딱 질색인데, 그런 걸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혼자 갈 용기는 도저히 안 난다는 점이었다. 소연은 나서기 좋아하는 나선에게 SOS를 쳤다. 

“나 산악회에 한번 가보려고 해.”

“산악회? 왜? 남자 만나려고?”

나선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어떻게 알았어?”

“산악회 간다는 건 그런 뜻 아니겠어?”

“그렇게 확 말해버리니 내가 좀 부끄럽네.”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난 찬성일세.”

나선이 찬성한다고 하니 소연은 위축되었던 마음이 다림질하듯 펴졌다. 말 나온 김에 용기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나 혼자는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선이 말했다.

“같이 가줄게.”

나선이는 이런 때는 정말 호쾌할 정도로 나서준다. 그래서 너무 나서서 그 오지랖에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결국은 미워할 수 없는 친구 아니던가. 나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소연은 갈만한 산악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싸 산악회. 조용히 등산 트래킹 하실 분!!>

<아까도다왔대매 산악회 등린이 환영> 120명

<산타패> 산을 타는 패밀리 산악회. 131명

너무 인원이 많은 곳보다는 50명 이상 100명 이하의 곳으로 추려서 이름이 가장 담백한 곳으로 정했다. 낙점된 곳은 항산화클럽. 세포의 산화를 억제해서 노화를 막는 항산화처럼 그렇게 청춘처럼 살자는 뜻이란다. 뭔가 젊어지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 느낌이긴 했지만, 인원도 적당하고 서울 근교 위주로 활동하는 곳이어서 최종 낙점을 했다.      


드디어 첫 등산일이 잡혔다. 코스는 영광 불갑사에서 용천사 꽃무릇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어서 선택했다. 이왕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산악회에 들어왔으니 안 가 본 곳을 여행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모임 장소는 강동역 3번 출구. 오전 6시 30분. 소연과 나선은 물과 약간의 과일을 챙겨서 일찌감치 역에 도착했다. 가서 보니 가을철이라 그런지 대형버스들이 골목 안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도블록에는 산악회 회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물을 한 박스 챙겨서 버스 짐칸에 넣고, 어떤 사람은 소주 한 박스를 넣기도 했다. 소연과 나선은 분위기 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확인하고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아서 밖의 동태를 살피는데 누가 봐도 초보 티가 났다. 두 사람은 분위기 파악을 위해 열심히 눈을 굴렸다. 친한 듯 보이는 회원들이 수다를 떨며 간간이 웃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친해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소연과 나선은 이방인처럼 쭈그러져 있었다. 그때였다. 한 남성이 두 사람에게 걸어왔다. 가벼운 등산복에, 워머를 팔에 끼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어 보이고, 나이는 50대 중후반. 등산을 해서인지 배가 없었다.  

“오늘 처음 오셨죠?”

처음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소연이 “네”라고 대답했다. 

“잘 오셨어요. 집은 어느 쪽이시고?”

“저희는 강북 쪽이에요.”

“일찍 나오는 거 힘들진 않았고?”

이 남자, 묘하게 반말을 섞는 게 거슬렸지만 처음 왔으니 좀 더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 

“괜찮았어요.”

“산은 좀 타봤어요?”

“처음이에요. 저희 등린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그때였다. 여성 두 명이 차에 오르더니 남자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한 명은 빨간색 등산웨어를 입고 수정 구슬 같은 악세사리가 박힌 니트 모자를 쓰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알록달록한 등산복에 배낭에는 등산 스틱이 꽂혀 있었다. 소연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두 여성은 남자를 보며 호들갑스럽게 인사했다. 

“회장님.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말은 남자에게 하면서 두 여자는 소연과 나선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봤다. 어디서 굴러온 돌인가 하는 경계의 눈빛이었다.  

“아, 회장님이셨구나. 잘 보여야겠네요.” 

넉살 좋은 나선이 지지 않고 말했다. 두 여자 회원은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회장의 팔을 잡고 버스 밖으로 나갔다. 소연과 나선은 드라마 연속극 보듯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시청했다. 가만 보니, 굳이 데리고 나갈 만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저 시시한 농담을 하면서 괜히 회장의 팔을 치며 웃는 식으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 다른 여성 회원이 그 무리에 합류했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들은 또 깔깔 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소연과 나선 쪽을 한번씩 흘낏 보기도 했다.

“저 회장 쪽은 보고 앉아 있지도 말아야겠다.”

나선의 말에 소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차가 출발하고, 얼마쯤 지났을까. 회장은 마이크를 잡고 산악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말을 했다.  

“저희 항산화클럽은 주로 중년들이 많이 활동합니다. 저희 구호가 있어요. 항산화, 오르자 건강하자 젊어지자 파이팅!!!”

갑작스러운 구호에 소연과 나선은 당황했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풋”하고 웃음이 터졌다. 

대학교 때 MT가서 구호를 외친 이후로 처음이었다. 뒤어어 신입회원 소개 순서가 이어졌다. 

자기 소개하는 게 정말 싫었던 소연은 뭐라고 자신을 소개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고맙게도 나선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김나선이라고 합니다. 올해 49세. 친구하고 같이 운동 좀 하고 싶은데 헬스클럽이나 요가는 재미없더라구요. 야외 나와서 산 타며 땀 흘리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적은 따로 있었으나 나선의 말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무언가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헬스클럽은 회원권 끊어놓고 가는 횟수가 열손가락 안에 들기를 수차례. 뭘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마침 소연의 제안을 받고 흔쾌히 허락한 건, 소연을 돕고자 하는 마음 반, 자신을 위한 마음 반이었다. 나선의 소개가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한 회원이 불쑥 물었다. 

”아이는 몇이에요?“

질문이 나오자 나선은 괜히 소연이 신경쓰였다. 자신이 그냥 대답을 해버려도 되지만, 그러면 소연에게도 같은 질문이 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마침 소연도 옆에서 그 말을 듣고 호구조사 또 시작됐구나 하던 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지독할 정도로 남한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소연은 예전부터 이런 모임에서조차 나이, 가족관계, 직업 같은 것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게 불만이었다. 취미 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그런 명함 같은 건 다 버리고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은데, 어딜 가나 비슷한 호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나 나이는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선이 말했다.

“산악회하고 아이하고 무슨 상관있나요?”

나선의 말에 버스 안 공기는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소연은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소연은 그 대답이 나선답다고 생각했다. 

이내 어떤 남자가 “맞아 맞아. 아이 있는 건 왜 물어? 등산하러 온 사람한테. 자~ 박수박수~”

하면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나선이 철벽을 미리 쳐둔 탓에 소연의 자기 소개는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11시에 용천사 도착. 버스에서 회원들이 내리고 그 앞에 사람들이 집합했다. 회장이 코스를 안내했다. 

“이제부터 꽃무릇 트레킹을 할 겁니다. 용천사 호반길하고 사찰 안에 있는 꽃무릇 군락지를 걷는 코스에요. 그렇게 험하진 않으니까 걱정 딱 붙들어 매시고 즐기면서 가세요. 질문 있습니까?”

한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가기 전에 구호 한번 외쳐야지. 자, 모여요. 모여.”

사람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일사천리로 둥근 원을 만들며 모여서는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천천히 가면서 봐봐.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말 걸면 친절하게 대답하고.” 

“알았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명의 남자가 소연과 나선 옆에 붙어 섰다.

“아까 소개 말씀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물리 선생님 같이 생긴 남성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경을 끼고 목에는 노란색 손수건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산악회 활동하신지는 오래 되셨어요?”

소연도 대답했다. 

“저희는 한 2, 3년 됐죠.”

“그럼 여기도 와 보셨겠네요?”

곁에 있던 남자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한번은 봄이 와서 그런지 느낌이 달라요. 같은 산이어도 언제 오느냐에 따라서 확연히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맞다. 산이든 책이든 노래든 사람이든 언제 만나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게 달라진다. 같은 영화를 20대에 봤을 때와 40대에 봤을 때, 못 보던 것이 보이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여기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산행을 하며 만난 자연은 내내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등린이라면 장비 같은 건 샀어요?”

물리 선생님같이 생긴 사람 옆에서 걷던 남성이 불쑥 물었다. 

“트레킹화가 좋구요.. 요즘 괜찮은 브랜드는.. 그리고 겨울 산행을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우리나라 지형상 돌산이 많아서 바닥과 착붙해서 미끄러지지 않는 우수한 그립력을 갖춘 등산화를 사야 한단 말이죠.”

묻지도 않은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는 설명을 쏟아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필요한 용품을 다 설명할 것만 같았다. 

“아니 무슨 등산용품 사장님이세요? 어쩜 그렇게 많이 아세요?”

말을 끊어야겠다 싶어서 소연이 물었다. 

”어? 돗자리 깔아도 되겠네. 티가 납니까? 하하하. 저 산악용품 대리점합니다.“

그럼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소연은 나선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남자는 명함 한 장을 꺼내서 소연과 나선에게 전했다. 참 나이스한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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