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한도 초과되면 생기는 일

가까스로 찾아온 운을 놓치다

by 신연재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 “꽃길만 걷자”는 말을 덕담처럼 던진다. 그러나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막상 현실 속에서는 ‘꽃길은 개뿔’이라는 걸.

방송 작가로 일하기 시작할 때도 그랬다. 나이 마흔 넘어서 신입 작가가 된 주제에 꽃길만 걸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부딪힌 관문은 나이였다. 나이 많은 신입작가를 키우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귀찮고 부담스러우니까.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어디서건 환영받지 못하는 곤란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보니 나도 곤란했다. 나를 어느 프로그램이든 끼어 넣고 싶어 하는 피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 탁구공처럼 여기저기 넘겨지곤 했다. 이제 끝났구나 하면서 포기하려던 찰나에, 드라마틱하게도 노련한 한 피디로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전에 함께 일한 피디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면서. 내가 알기로 그분은 누군가를 추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데 기적이구나 싶었다. 나에게 함께 일하자면 연락하신 피디도 그분의 추천이라 믿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나에게 연락한 그 피디는 방송국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분이었다. 실력도 뛰어나고 후배 제작진들을 잘 챙기기로도 유명했다. 내가 그런 피디와 일하다니, 나에게 온 천운이었다.


“이걸 원고라고 써왔니?” “이게 뭐니?” “넌 대체...”

매일 아침 8시 반쯤. 내가 피디에게 깨지는 소리는 매일 사무실에 울려퍼지는 알람이었다. 내 원고에 빨간 펜이 수두룩했다. 내가 쓴 글자보다 빨간 펜이 더 많아 보였다. 목청이 큰 그분의 목소리에 피디들이 파티션 위로 얼굴을 내밀고 본다. 영락없는 동물원 원숭이이었다. 우리 쪽으로 뒤를 돌아보진 않아도 뒤통수들이 “또 시작이네”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조용한 사무실에 울려 퍼졌고, 나는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들었다. 너덜너덜해진 원고만큼 내 가슴도 너덜너덜해졌다.


“야. 내가 너 때문에 못된 사람이 됐잖아. 옆에서 다른 피디들이 너 그만 괴롭히라고 난리야. 내가 너를 그렇게 괴롭히니?”

어느 날 그분은 녹음을 하다 말고 아주 억울하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그분의 표정이나 말이 진심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니, 본인은 진정으로 모른단 말인가 싶었다. 내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는 걸 진행자 아나운서가 알아채고 “그래. 좀 살살해 선배. 선배 마음은 그런 게 아니어도 남들 볼 땐 사람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하고 말해주었다. 피디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나에게 한 마디 던졌다.

“넌 혼나면 좀 웃어. 만날 죽상을 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얘(진행하는 아나운서) 봐라. 너보다 더 혼나는 데도 맨날 웃고 다니잖아.”

사람 좋은 진행자와 내 눈이 마주쳤고, 우린 그냥 웃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아나운서의 내공과 성품이 부럽고 존경스럽긴 했다.

그 이후로도 피디의 호통과 스파르타식 작가 훈련의 강도가 줄어든 건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듯이 원고를 허공에 뿌린 건 아니어도, 거의 던지다시피 원고가 흩뿌려져서 책상 밑으로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 원고를 주섬주섬 주우며 ‘아, 드라마로만 보던 장면인데’했던 기억이 난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렇게 지지고 볶았고, 내가 덜 혼날 때쯤 개편이 되었다. 다른 피디가 프로그램에 온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해방되었구나 싶어서. 나를 생각하고 발전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더 오래 함께 일하면 내가 상할 것 같았다. 오죽하면 내가 하도 고생하니까 하나님이 너무 불쌍해서 나를 구해주나 보다 했을까. 나에게 해방을 줄 거라 여긴 그 사람에 의해 잘릴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중에 잘리면서 나와 함께 일했던 피디가 새로 온 피디에게 나에 대해 한 말을 전해 들었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부족해서 아무래도 아이디어나 순발력이 떨어진다. 같이 일하면 좀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굉장히 열심히 하는 친구다.’

그 말을 듣고 다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서운했다. ‘좀 더 좋게 말해주지 참 박하다. 평소에는 내 새끼라고 했으면서!’ 내가 잘리는 것이 그 피디의 박한 평가 탓도 있는 것 같아서 그만둘 때에도 편지로 인사드렸을 뿐, 따로 찾아가지 않았다. 그게 그 피디의 마지막이었다. 그 피디의 표현대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고 생각한 관계치고는 많이 아쉬운 이별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그분이 나를 다시 일하게 하기 위해 몇몇 피디들에게 부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나 혼자만의 오해가 머쓱하고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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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splash


그때는 죽을 것처럼 힘겨웠는데 돌아보면 가장 할 말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내 부족한 실력을 메우기 위해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해서, 정신없이 녹음하고 섭외하고 원고 쓰다 보면 퇴근은 보통 저녁 8시나 9시였다.

솔직히 아무리 멘탈이 좋더라도 매일 안 좋은 피드백을 들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한다면 누구나 무너지게 되어 있다. 가장 후회되는 건, 천운을 놓치지 않겠다는 절박함에 밀려서 나를 돌보지 않은 것이다. 마음도 여유가 없었고 몸도 지칠 대로 지쳐서 모든 것이 한도초과된 상태였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상에서도 땡겨서 쓸 10원 어치의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30대 때 일에 나를 갈아 넣다가 한쪽 청력을 잃어버리고 두고두고 후회했으면서, 어느 샌가 또 그 삶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는 열심은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중요한 걸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잃고 나서 뼈저리게 후회하면서도 또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이라니.

그러면 천운 같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내 몸과 마음의 잔고를 잘 관리하면서 천운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또 열심히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단, 바운더리를 잘 세울 수는 있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바운더리,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의 바운더리, 내 인격이 침해당하지 않을 만큼의 소통 바운더리 등등.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스스로를 열심히 갈아 넣기만 한 것은 내 무지였고 그 결과 천운을 살리지 못한 건 내 탓이다. 누구를 탓하리요.


(ps: 노파심에 적자면, 위에 언급한 피디에 대해서는 바로 전에도 글을 썼지만 안 좋은 감정이 하나도 없습니다.이상하게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운 마음이 더 커지네요. 제 실수를 탓한 글인데제 표현 부족으로 혹여 그 피디에 대해 안 좋게 보시는 분도 있을까 싶은 걱정이 되어 글을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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