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고 싶었던 미래가 나에게 왔다

두려움의 노예가 되느니 꿈꾸는 전사가 되겠다

by 신연재

‘저 언니들처럼 되면 어떡하지?’

내가 막 서른이 될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보다 6살 많은, 그러니까 당시로서는 36살인 교회 비혼 언니들을 보며 한 생각이다.

그때만 해도 서른이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는 나이였고, 나 역시 비혼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을 할 줄 알았다. 더구나 친구들이 스물아홉 살 때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내 마음은 공연히 조급해졌다.

지금처럼 ‘비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아니었거니와 결혼을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걱정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나 역시 결혼해서 아이들을 주렁주렁 낳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그 꿈과 계획이 생각처럼 되지 않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당시 교회에 굉장히 열심히 다니고 있었는데, 신앙이 좋다고 하는 괜찮은 언니들은 전부 미혼이었다. 그러면서 결혼을 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짝을 만나지 못해 남아 있는 언니들을 보며, 은근슬쩍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내 미래가 저 언니들이면 어쩌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언니들에게는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는 철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동시에 절대 내가 그 언니들처럼 될 리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정말 아무 근거도 없이. 그때만 해도 인생이 내가 뜻하면 뜻한 대로 되는 줄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 너무나 거부하고 싶었던 언니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아니, 이미 서른 여섯을 벌써 넘어서, 마흔 여섯까지 넘었으니 내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 선을 아주 많이 훌쩍 넘은 셈이다.

왜 그렇게 싫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게 ‘정상’이 아니라고 여긴 탓이 크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면 어느 정도 승진하고, 그러다 결혼하고, 그러다 애 낳고, 또 내 집 장만하고. 그런 삶만을 정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튀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정상 나는 진심으로 남들처럼 사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였다.

그래서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나이든 언니들의 모습은 나에게 이상한 것이었고, 정상에서 벗어난 이탈이었다. 이탈은 곧 탈락이고 소외였다. 그래도 그토록 두려워하며 거부했건만.


그 동안 강산은 두 번이나 변했고, 세상도 그만큼 변했다.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을 거라는 편견을 갖고, 큰 근심거리 존재 취급을 받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비혼의 삶이 어느 정도 존중되는 분위기다. 그만큼 비혼이 많아진 덕분이다.

짧다고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의 변화를 겪으며, 나도 변했다. 가장 큰 깨달음이라면, 내가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 정말 원하지 않은 삶이 나에게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그 사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온다고 해서 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단 결혼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게 그렇다. 드디어 이번에는 손에 잡혔다고 생각한 기회들이 어느 순간, 허망하게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 버릴 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잡으려 해도 저 멀리 도망가 버릴 때도 있고. 한 마디로, 공식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당시 시대가 그렇다 하고, 또 내 성정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도 남들처럼 사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고 여긴 건 뼈아픈 실책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플랜에는 항상 ‘언젠가는 결혼할 거니까’라는 전제가 있었고, 때문에 혼자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은 고사하고 제대로 즐기지도, 준비하지도 못했다. 인생에서 나에게 올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폐쇄적이었던 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에만 매달려 고집스러웠던 건 후회가 된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다름의 차이를 좀 더 융통성 있게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인생이 한뼘 정도는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 모두가 가는 대세의 길에서 어긋난 삶은 나도 이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는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어느 한편은 그런 부분은 갖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내 인생이나 자신에 대해 너무 확신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또 내가 겪어보지 않은 ‘다름’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런 후회는 지금도 적용된다. 내가 30대 때 그렸던 오십의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과 거리가 멀다. ‘볼혹’ ‘지천명’이라고 하는데, 그게 진짜 그래서가 아니라 그래야 할 나이라는 경고성 교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혹될 때가 오히려 더 많고, 하늘의 명이 무엇인지 점점 더 헷갈리곤 한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 이 나이에 이르니 내 한계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진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건, 나이가 주는 서글픈 유익이다.


누군가처럼 되기 싫어서, 혹은 저 사람처럼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한편으로는 나를 옭아메는 사슬이 되기도 한다. 이제 내 한계를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 지금은, 누군가처럼 되기 싫거나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 건 없다.

그 누군가의 삶이 나와 같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고유한 삶을 내 기준에서 함부로 평가하는 건 교만이다. ‘누군가 나의 삶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함부로 평가한다면?’이라고 질문하면 금세 답이 나오는 문제다.

정말 후진 건, 남들과 같아지려고 자신의 고유한 삶을 부정하고 정성스럽게 돌보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의 답이 하나인 것처럼 구는 것이다.

이제는 ‘저 사람처럼 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은 없다. 그런 사람도 없다. 누군가는 이번 ‘코로나 19’라는 재난을 겪으며 집에서 혼자 늙어죽으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한다. 비혼은 꼭 혼자 늙어 죽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비혼이기 때문에 늙어서 외로울 거라는 말도 많이 듣는데, 그 또한 가능성은 반반이다. 비혼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미래가 두렵다면, 왜 두려운지를 생각해 보고, 그 두려움의 근원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생각해 보려 한다. 자녀나 가족이 없어서 혼자 죽게 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친구들과의 관계망을 잘 가꾸고, 촘촘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친구들이 몇몇 있다.


이제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뜻이 맞는 이성친구와 동네친구로 지내고 싶기도 하다. 가능성은 50대 50이니 꿈꿔볼만 하다. 아직 나에게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지금, 두려워하기보다 희망하고 꿈꾸면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고 맞이하고 싶다. 그러지 못했던 30대를 통과하며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어차피 가보지 못한 미래라면, 두려움의 포로가 되느니 꿈꾸는 전사가 훨씬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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