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컨닝 페이퍼>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청목사>

by 장소영
독서 컨닝 페이퍼에 올리는 글은 독서 동아리 모임을 운영하시는 분들을 위한 자료입니다. 책을 다 읽으신 분들이나 책을 읽기 전에 맛보기로 책을 경험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제가 올린 질문 이외에도 책을 읽고 추가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질문 만들어 주시면 더욱 풍성한 독서 모임이 되실 거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플라톤(Platon)의 초기 대화편의 하나이며 소크라테스 처형 후 몇 년에 걸쳐 써진 것으로 추측된다. 소크라테스의 법정 변론의 재현 형태를 취하고 있다.


p8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나를 고발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기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 자신도 역시 내가 누구인가를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말은 그럴듯한 것이었습니다.

p9 나는 하늘에 맹세코 그들이 늘 하듯이 미사여구로 적당하게 수식된 상투적 연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순간순간 내 마음에 떠오르는 어구와 논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내 변론 방식에 대해서는 그것이 좋든 좋지 않든 간에 괘념하지 말아 주십시오. 내 말이 진실한가 하는 점만을 고려하고 이점에만 주의를 기울여주십시오. 말하는 자는 진실을 말하고 재판관은 정당하게 결정하도록 합시다.

p10 우선 나는 가장 처음의 고발과 최초의 고발자들에 대해 변명하고, 다음에 그 후의 고발과 고발자들에 대해서 변명을 하겠습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고발자들이 나를 여러분에게 거짓 죄목으로 수년에 걸쳐 고발해 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부터 거짓말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소크라테스라는 자는 하늘 위의 일을 사색하고 땅 밑의 일을 천착하며,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보이게 하는 자라고 비난하고 중상모략 해 왔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퍼뜨린 사람들이 내가 두려워하는 고발자들인 것입니다.... 가장 곤란한 것은 나는 고발자의 이름들을 알지 못해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나는 단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림자와 싸워야 하고 대답할 자가 한 명도 없이 논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p12 만일 멜레토스가 자연철학을 경멸했다는 무거운 죄로 나를 고발했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인 것입니다. 나는 자연에 대한 사색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나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는 분들은 내가 이러한 사물에 대해 간단하게든 상세하게든 언급한 일이 있는지 그 여부를 말해 보십시오.

p15 나에 대한 평판은 내가 어떤 종류의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지혜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인간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지혜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나는 내가 지혜롭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p16 델포이의 무녀는 나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는 신탁을 구했던 것입니다. 델포이의 무녀는 나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을 주었습니다.

이 신탁을 들었을 때, ‘나는 신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신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나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선언한 신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일까?

(6장-정치인/7장-시인/8장-장인)

p20 신탁을 대신해서 나는 그들과 같은 지식도 그들과 같은 무지도 갖지 않고 현재와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좋은가, 또는 그들처럼 두 가지를 다 가지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을 자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과 신탁에 대해 현재와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신은 신탁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는 보잘것이 없거나 전혀 가치가 없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입니다....

‘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아무 가치도 없음을 깨닫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나는 이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 관심사에 대해서나, 나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나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신에 대한 봉사로 말미암아 나는 아주 심한 가난까지도 인내하고 있습니다.(P39 유사한 내용)

Q: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말해 보세요.


11~15장 멜레토스의 고발에 대한 변론: 청년들의 타락을 선도/무신론자 주장에 대한 반박

16장~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

어떤 사람이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동안 살아오며 한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 일 때문에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그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P33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는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험을 헤아려서는 안 됩니다.... 위험이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오히려 친구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살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뱃머리가 구부러진 배에서 웃음거리로 대지의 짐이 되어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적에게 원수를 갚고 곧 죽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부끄러움 이외의 다른 것을 고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아킬레스의 예)

P34 여러분이 포타타에아, 암피폴리스, 델리온에서 나를 지휘한 장군의 명령을 받았을 때, 죽음에 직면해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장군이 나를 배치했던 장소를 지켰던 내가, 신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탐구하는 애지자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나에게 명령한 때에 죽음의 공포나, 또는 기타의 공포 때문에 나의 자리를 포기한다면 나의 행위는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진정한 지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체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죽임이 최대의 선인지 아닌지, 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최대의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요?

Q:부끄러움이란?


P35 ‘소크라테스, 이번에는 우리는 아뉴토스를 믿지 않고 당신을 방면할 것이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곧 당신은 다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탐구하거나 사색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다시 이러한 일을 하다가 체포된다면 당신은 사형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나는 여러분보다는 신에게 복종할 것이며, 나에게 생명과 힘이 있는 동안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가르치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고 평소의 태도대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곧 ‘위대하고 강력하며 현명한 아테네 시민의 그대, 나의 벗이여, 그대는 최대한의 돈과 명예와 명성을 쌓아 올리면서도 지혜와 진리와 영혼의 향상은 돌보지 않고 전혀 고려하지도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라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청년이든 노인이든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같은 말을 되풀이할 것입니다. 특히 시민에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재물로부터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나 그 밖의 것이 인간을 위한 좋은 것이 되는 것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간에 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비록 내가 몇 번이고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Q: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P 38 신이 여러분에게 보내 준 선물인 나를 처벌함으로써 여러분이 신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변명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나와 같은 사람을 다시는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면, 신이 이 나라에 보낸 일종의 등에인 것입니다. 이 나라는 크고 혈통이 좋은 군마와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크다는 것 때문에 행동이 둔하며 따라서 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붙여 놓은 등에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 종일 어디서나 한결같이 여러분을 붙잡고 여러분을 각성시키고 설득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Q: ‘등에’와 같다는 것? 내가 아는 등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크다는 것의 문제점은?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30표라는 근소한 차로 유죄가 결정된다. 유죄 결정 후 형량을 결정하기 위해서 다시 피고인 소크라테스의 진술이 전개된다.

소크라테스는 애걸하기는커녕 자기는 국가적 귀인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형량을 표결에 부친 결과 그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P57 (32장, 33장 함께 읽기) 사형 언도 후 죽음에 대한 사유

다른 면으로 고찰해 보더라도 죽음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은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죽음은 무의 상태로서 전혀 감각을 갖지 못했든가, 또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전생이며, 이 세계로부터 저 세계로의 영혼의 전거이든가......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제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이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Q: 여러분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태도

Q: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 문제를 해결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가?

-누군가에게 대신 질문을 하고 타인이 내린 해답을 따라가는가?(권위 있는 사람이나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의존?)

철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BC 399

1. 생애 :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이룩한 인물이다.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추정할 수 있는 초창기 자료는 대부분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에게서 나왔다.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경 아테네에서 조각가인 아버지 소프로니코스와 산파인 어머니 파이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남을 가르치는 일 즉, 철학적 토론에 매진했는데, 남루한 옷차림으로 광장을 거니는 그에게 다양한 계층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또한 강의를 통해 세속적인 명예와 부를 누렸던 소피스트와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왜소한 체격과 투박한 외모를 가졌으나 체력이 좋고 참을성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느긋한 성격이었으며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고, 부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크산티페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크세노폰은 《회고록》에서 어머니의 엄격함에 대해 불평하는 아들과 아들을 타이르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다루었다. 이를 근거로 후대 저작들에서 크산티페는 종종 잔소리 많은 악처로 묘사되는데 이는 과장된 측면이 크다.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정치적 문제에 휩쓸렸다. 당시 아테네에는 기존 민주주의 세력과 스파르타의 법을 새로이 차용하고자 한 귀족주의 정파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자 귀족주의 세력이 힘을 얻었으나 다시 세를 회복한 민주주의 정권은 소크라테스를 귀족주의의 본보기로 처형하고자 했다. 비록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이론들은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였고, 제자와 친구들 상당수가 귀족주의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현혹한다는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플라톤은 대화편 《파이돈》에서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2. 소크라테스 철학사상의 특징과 의의

고대 그리스 철학이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철학사상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러나 직접 남긴 저작이 없기 때문에 그의 고유한 사상을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의 학설은 제자들이 남긴 기록과 그 안에 담긴 소크라테스의 언행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되고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문답법이라는 독특한 교육방식과 재판 과정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그의 철학사상의 특징과 의의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는데 일반적인 교사들이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답을 주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정의가 무엇인지, 경건하고 불경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신중함과 무모함이 어떻게 다른지, 우정을 어떻게 볼 것인지 등에 관해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답을 찾아 나가도록 유도하였다. 질의응답을 통한 지식의 추구라는 변증법 방식은 소크라테스 이전 시기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발전시켰다.

둘째,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자 했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고대 격언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델포이 신탁은 소크라테스를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선언하였으나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와 같은 인간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자각과 문답법을 이용한 내면적 탐구는 고대의 철학적 관점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셋째,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윤리적인 측면이 강했다. 실제 생활에서도 절제를 추구하였던 그는 ‘선’을 중시하여 토론 과정에서도 관련된 질문을 많이 던졌다. 또한 그는 옳은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바르게 행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덕과 앎을 동일시하였다. 최선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참된 덕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삶의 추구는 스토아학파의 선구적인 모습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넷째,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갖고 있었다. 특히 ‘현인(賢人)에 의한 통치’, ‘화려한 연설에 대한 비난’,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자각’, ‘덕과 앎의 일치’는 아테네의 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위협으로 비쳤다. 이후 플라톤은 이러한 사상을 발전시켜 이상적인 철인정치(哲人政治)를 보다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한편 일부 연구자들은 아름다움, 선과 같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는데서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이데아'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으나, 두 사상의 개연성에 비약적 측면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크라테스 [Socrates] (두산백과)

* 플라톤(BC 427~347)

플라톤은 아테네의 마지막 왕이었던 코드로스의 후손인 아버지 아리스톤과 초기 헬라스 입법가인 솔론과 연결되는 어머니 페릭티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년시절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었으나, 현실정치에 가담하라는 과두파들의 권유를 물리친다. 과두 정권이 몰락한 후 민주정권이 들어섰으나, 뜻밖에도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기원전 399년 사형을 당하자, 플라톤은 잠시 메가라로 피해 있다가 이후 12년 동안 이집트,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기원전 387년경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철학 및 학문 일반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관인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했다. 아카데메이아에서는 좁은 의미의 철학만이 아니라 수학이나 수사학 같은 다양한 분야들을 탐구하였다. 특히 아카데메이아는 수사학 교육에 집중된 이소크라테스의 학원과는 달리 절도 있는 공동생활과 학문적 논의, 그리고 헬라스의 현상 타파를 위한 참된 지적 지도자의 배출이 설립 취지였다.

플라톤의 말년에 일어난 주목할 만한 사건은 그가 시라쿠사이의 현실정치에 관여한 것이었다. 플라톤이 60세 되는 기원전 367년 시라쿠사이의 참주 디오니시우스 1세가 죽자 그의 처남 디온은 플라톤을 초빙해서 왕위를 계승한 디오니시우스 2세의 마음속에 철인치자(哲人治者)의 사상을 심어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젊은 참주가 정치적 강자인 디온을 시기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67세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그 후 13년간 활발히 학문 활동을 하다가 기원전 348년경 세상을 떠났다.

『파이돈』 『향연』 『국가』 『프로타고라스』 등의 전기 대화편과 『소피스테스』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의 후기 대화편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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