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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Jan 18. 2019

최치원에게 反하다.

'격황소문을 읽고 황소의 입장에서 억지를 써보다 '

황소라면 최치원에게 이런 항소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 적어봅니다.^^

     

  금통 2년 7월 8일에, 대제의 대왕 황소는 종사관 최치원에게 고하노라.


 ‘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

 임금은 예로써 일을 시키고, 신하는 충성으로 섬겨야 한다는 말이다.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한 것을 행해야 하는 임금이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신하가 충심으로 그 잘못됨을 바로 잡기 위해 충언해야 하거늘, 시절이 하수상하여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니 하물며 백성들의 삶이 어떠할까! 

 그대의 말처럼 우리의 일생은 하늘에 명이 달려 있고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인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의 삶이 그대들의 폭정으로 도탄에 빠져 하루하루 시름만 깊어가니 옳고 그름을 따져 다시 생각해보아도 내 선택은 변함이 없다.


 내 일찍이 나랏일에 관심이 있어 과거에 응시해 진사가 되고 싶었으나 신분의 벽은 높기도 높더라. 국화를 노래하고 대자연의 변화를 안배하고 싶은 인물이 되고자 했으나, 과거를 치르러 장안에 올라가서 본 나랏꼴이라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이 분통 터지는 작태뿐이라. 시름과 고통에 빠져있는 백성들을 위해 내 분연히 나서 이 목숨 아낌없이 바치려하니 감히 나의 이 결연함을 막을 수 없다.

     

 나라를 올바로 세워야 할 임금이 여자의 치마폭에 쌓여 세월 가는 줄 모르니,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는 말이 지금을 말하는 게 아니더냐. 임금과 관리들이 향락에 빠져 있으니 정치는 날로 부패해 썩은 내가 천지를 진동하는데 왜 그대들은 그 역한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인가. 환관은 무릇 궁중의 황제와 그 가족을 받드는 일을 맡아야 하거늘, 조정의 기밀한 일에 까지 참여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임금이 환관 고력사를 총애하니 그가 정치에 관여하고, 환관 양사훈은 대장군으로 정벌에 나서 군사직도 맡는구나. 환관이 금군을 지휘하고, 감군으로까지 파견되니 그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결국 임금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세상을 조정하니 왕을 죽이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구나.

     

 천보 원년에 지방 열 곳에 병진을 두고 장관을 절도사라고 불러 번진 체제가 되었는데, 지방의 행정과 군사권을 독점하여 중앙 정부가 통제 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이 성장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세력 확대는 정치적‧문화적‧경제적으로 총체적 난국을 만들기에 충분했으리라. 100년 동안의 번진 체제는 정치적으로 중앙이 전국을 지배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호족 출신 절도사의 수준은 저급하기 이를 데 없으니 그들이 지배하는 곳의 문화수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할만하다. 경제적으로는 어떠할까. 통제 안 되는 지방세력 때문에 중앙정부는 많은 군대를 유지해야 했고, 관리들의 사리사욕은 그 끝을 알 수 없으니, 그들에게 애민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 뿐이리라. 그러하니 가렴주구에 민생의 삶은 봄이 와도 겨울이요, 꽃잎이 날리어도 서릿발이라.


 나는 그대에게 용서 받을 죄가 없다. 다만 내게 죄가 있다면 첫째는 신분이 미천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백성을 아끼는 관리가 되지 못한 것이요, 둘째는 그대들이 서로의 탐욕에 눈이 멀어 당쟁을 벌이고 있을 때, 가뭄과 홍수로 대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당의 부패와 어둠을 몰아내고자 한다. 내 비록 천한 소금밀매장수이지만 팍팍한 백성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화적떼가 되게 둘 순 없었다.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백성들을 위해 도모한 큰일을 이루고자 ,국화꽃과 복숭아꽃이 함께 피는 계절을 기다릴 것이다.


 지켜보아라.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 옛 성현들의 말을 좋아하는 듯하니 나도 그들의 말을 빌어 한 마디 하고자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르기를, “가지 않으면 이르지 못하고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아무리 가깝게 있어도 내가 팔을 뻗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것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하였다. 백성을 위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니요, 책상 앞에 앉아 하는 탁상공론만으로도 안 된다. 


 또한 보아라. 공자의 �논어�에 이르기를, “가장 위대한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일어서는 데에 있다.”하였다. 혹여 내가 이번 일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실패를 통해 다시금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성공하기 위해 실패를 디딤돌 삼아 다시 도전할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나는 지금 손을 뻗어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간절한 마음에 어찌 멈춤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대의 날랜 장수들이 구름같이 날아들고 용맹스런 군사들이 비 쏟아지듯 모여들어도, 울분과 간절함으로 똘똘 뭉친 우리 혁명군의 걸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커다란 뗏목을 만들어 계림에서 상강의 흐름을 타고 형주, 영주를 지나 담주를 격파하니 그 인원이 10만이 넘더구나. 보았느냐 너의 관군들의 시산혈해를. 880년 가을, 가는 곳마다 농민들과 협객들이 뜻을 함께 모아 혁명군에 가담하니 그 인원이 60만 대군에 달하였다. 우리 혁명군의 깃발이 만산에 휘날리니 나의 호령에 맞춰 60만 대군의 환호와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대들의 그렇게 용맹스런 관군들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함곡관 관군들은 순하디 순하게 관문을 열어주니 나와 한 편인 듯하더구나. 천혜의 요새 함곡관을 넘어서니 장안과 낙양이 곧 우리 요새가 되었다. 881년 날이 몹시 춥던 1월 어느 아침,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는 우리군의 위세에 꽁지 빠지듯 금광문으로 달아난 그대들의 은혜로운 황제는 그대의 말처럼 역시 살기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시는 듯하다.


 그 때 장안의 백성들뿐 아니라 궁녀 수천 명도 거리로 뛰쳐나와 길 양쪽으로 밀려들어 우리 군을 환영하는 것을 그대는 보았는가. 모두 나를 죽이고자 한다던 천하의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모여들어 나와 우리 군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맞는 것인가. 내가 어여뻐서인가. 아니다. 그들이 기다린 것은 나 황소가 아닐 것이다. 백성들이 기다린 것은 살만한 세상, 살고 싶은 세상이었을 것이다. 


 소문에 듣자하니 그대는 네 살에 글을 깨쳤고 열 살에 사서삼경을 독파한 천재였다고. 그런 그대에게 6두품밖에 되지 않는 가문은 최대 약점이었다는 것도 들었네. 대대로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을 얻었던 최씨 집안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6두품으로서 느끼는 한과 비애가 얼마나 컸겠는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더 높은 관직으로 오르지 못하는 신분의 장벽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겠는가.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입신양명을 위해 울분을 안고 머나먼 타국까지 온 그대가, 떠나온 그 곳과 어찌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족속들의 수족이 되어 이런 글을 써 보내는가. 


 졸음을 쫓기 위해 상투를 매달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이 백을 하는 동안 천의 노력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 노력의 결과로 고변의 종사관 노릇을 하고자 했던 것인지 묻고 싶다. 언젠가 그대가 다시 신라로 돌아갔을 때 그대는 당나라에서 무엇을 배웠다고 할 것인가.당쟁과 폭정과 부패한 정치를 배우고 왔다고 자랑할텐가. 백성들에게 혈세를 짜내고 경제를 도탄에 빠뜨리는 관리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자랑할텐가. 


 이제라도 부끄러움을 깨닫고 그 좋은 머리로 더 많은 학식과 지혜를 터득해길 바랄 뿐이다.837년 한 해 동안 당나라에 건너간 신라 유학생이 216명에 이른다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내 넓은 마음으로 그대와 신분의 장벽 때문에 당으로 유학 온 신라 사람들을 크게 쓸 것이니 어떤 것이 득이 되는 것인지 헤아려 판단하길 바란다. 


 내 그대에게 나의 과거 모습이 보여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니, 영리한 사람이라 한 번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만약 조금의 미련이 남아 머뭇거리는 기색이 보이고, 나의 제안을 거절할 시에는 더 이상 너와 너희 신라 사람들에게 자비는 없을 것이다. 죽어 원귀가 되어서라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게 네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살은 까마귀의 먹이로 내어줄 것이요, 뼈는 낫낫이 가루를 내어 당나라 땅 동서남북에 흩어 뿌릴 것이다.


 追風惟苦吟-추풍유고음하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이라.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요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이라.  


 마지막으로 그대가 지었다는 시를 적어 보낸다. 만리 밖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느껴서 내 마음도 먹먹해지는 듯하구나. 다시 한 번 내 말을 되새기며 기품 있는 신라의 선비답게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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