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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Jan 26. 2019

<청소년 소설>눈 먼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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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 야 ‧ 상 ‧ 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이란 말인가.

문득 언젠가 읽었던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원인불명의 ‘실명’ 상태에 놓인 주인공이 지금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염병한다. 지금 이 상황에  소설 타령이라니.  

잘못 발을 헛디뎠다간 크레바스에 빠져 다시는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숨을 고르고 눈을 크게 떠 봐도, 눈앞은 여전히 원근감을 상실한 채 온통 백색 세상이다. 머릿속이 멍했다.

그때 누군가 내 귓불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살았다.’란 안도감과 함께 ‘누굴까’하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언 귓불에 느껴지는 손길에 실낱같은 희망을 느끼며 겨우 고개를 들었다.     

“야 이 새끼야, 물어보기 전에 생각이란 걸 좀 하라고. 안 듣냐? 귓구멍에 지우개라도 틀어박았어? 아까 다 가르쳐 줬던 거잖아. 질문도 좀 수준 있게 할 수 없어? 이럴 거면 다른 학원가라고요. 엉? 어디 가서 나한테 배웠단 말 하지 말고 새꺄. 쪽팔리니까.”

“네? 아, 그게... 네.”     

갑자기 또렷하게 밝아진 시야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와 나에게 박힌다.

‘불쌍한 새끼’, ‘한심한 새끼’, ‘병 ‧ 신 ‧ 새 ‧ 끼’

굴러와 박힌 눈동자를 핑퐁처럼 튕겨 내며 다시 수학 프린트와 칠판을 번갈아 보았다. 집중하는 척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이런 것쯤은 이제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초등학교 입학, 엄마는 앞으로 내내 자랑스러울 아들의 앞날을 기대하며 나보다 더 설레어하셨다. 매일 나의 등하굣길을 손수 에스코트해주시는 친절을, 굳이 베풀어 주셨다. 만들기 숙제라도 있는 날엔,

‘아들, 넌 글을 쓰거라, 난 떡을 썰 테니.’의 자식 사랑을 손수 실천하셨다.

“우성아, 넌 자, 이건 엄마가 마저 해 놓을 테니까.”

아침에 일어나 보면 초등학생의 숙제라고 하기엔 과한 결과물이 식탁 위에 위세 좋게 놓여있었고 덤으로 엄마의 뿌듯함과 자부심 어린 얼굴이 나를 따라다녔다.

‘봐, 엄마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넌 엄마 말만 들으면 돼.’     

이렇게 해간 나의 숙제는 아니 엄마의 숙제는 늘 게시판의 제일 중앙에 걸리는 영광을 누렸다. ‘모름지기 숙제는 이래야지’하고 뽐내며 다음 작품이 나올 때까지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내가 그리고 엄마가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반대표 엄마에게 ‘아이들을 위한 정보 공유와 친목도모’라는 거국적인 목적의 반모임을 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자리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며, 엄마는 사명감에 불타 냉큼 모임에 나가셨다.

전업주부인 엄마에게 반모임은 좁은 사회 관계망을 넓혀주는 활력소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누가 무슨 학원에 다니는지, 누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몇 반 누구 선생님은 어떠신지 내가 일도 궁금하지 않은 소식들을 낱낱이 알아오셨고 그중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내 얘기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 애들은 겁이 없어. 우성아, 넌 자전거 탈 때 안 그러지? 아무리 자전거 도로로 달리더라도 조심해야지. 겁 없이 내달리는 아이들 보면 아찔하다니까. 목숨이 서너 개쯤 되는 줄 아는 건지 원. 너도 너무 빨리 달리지 말고 조심해서 타. 물론 넌 그렇게 타지 않을 거란 거 엄마가 알지만....”     

스피드를 즐기며 신나게 달리다가 자전거 도로 턱에 걸려 넘어졌던 날, 어김없이 타이밍을 딱 맞춰 넌지시 던지는 엄마의 의미심장한 말투와 표정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조지 오웰 『1984』 속 텔레스크린이 진짜 있는 것은 아닌지 하릴없이 두리번거리게 된다.

물론 우연히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한두 번이면 나도 이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귀찮아 안 하는 것뿐이지. 굳이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이런 일도 있었다.     

“우성아, 너 오늘 학교 끝나고 어디 갔었어? 많이 늦었네. 근데 아까 너희 학교 앞 지나가는데 다른 학교 교복 입은 여자 애들이 학교 앞에 서성 대고 있던데... 너도 혹시 봤어?  같이 가던 엄마들이 다 한 마디씩 하더라. 좋은 소리 하겠니? 물론 엄마야 다 이해하지만....”     

초등학교 때 알던 여자애들을 만나러 옆 중학교 교문 앞에 갔던 날, 엄마의 교양 넘치는 ‘돌려치기’ 말씀에 난 또 뜨끔뜨끔했다. 텔레스크린 그거 분명히 어딘가 설치되어 있는 거 분명하다.

한때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계시는 명견만리 우리 엄마에 대해 존경과 경외심마저 들었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엄마에게 무엇이든 말했고 그러는 게 신상 편한 일이라 생각했다. 괜히 나중에 들켜서 ‘돌려치기’ 수법으로 추궁당하는 것보단 그게 낫다고, 나도 나름 살 방도를 찾았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의 혜안을 두루 넓혀준 ‘성한 초등학교 1학년 5반 엄마들의 모임’은 10년째 –ing 중이다. 뜻을 같이 한 엄마들의 움직임은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조직적이었다. 난 초등학교 내내 1학년 때 같은 반 했던 아이들과 주말에 나들이도 갔고, 함께 농구와 축구를 배우러 다녔고, 대회도 나갔다. 여름이면 워터파크로, 겨울엔 스키장으로 휩쓸려 다녔다. 처음에는 좋았다. 아이들과 놀러 가는 것도,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면 다 같이 모여 보러 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늘 뒤풀이로 같이 모여 밥을 먹었다.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시험공부시키느라 힘들었다는 너스레들을 떨며 얘기꽃을 피웠고, 우리들도 그날만큼은 아니 그 자리에서 만큼은 시험을 잘 보았든 못 보았든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자리가 그렇게 유쾌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면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엄마의 얼굴 표정을 살피게 되었다. 차를 타자마자 느껴지는 싸한 침묵, 곧이어 날아드는 날카로운 취조는 매번 겪는 거지만 참 한 결같이 버라이어티 했다. 불과 10분 전, 그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엄마는 분명 환하게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대단한 변검술사! 숨 막히는 팔색조 매력의 우리 엄마!’     

“하늘이는 이번에도 국수영 또 다 맞았다더라. 걔는 놀 거 다 논다는데... 어쩜 그렇게 뭐든 잘한다니!”

슬슬 시동을 거신다. 차라리 침묵보단 낫다. 엄마 입에 시동이 걸렸다는 건 그래도 완전 열 받으신 건 아니란 증거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여기서 말 한마디 삐끗 잘못하면 결과는 뻔하다. 하늘이는 넘사벽 이라느니 이번 시험 어려워서 다른 애들도 다 못 봤다느니 이런 쓸데없는 말로 응수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고 너덜너덜하게 물어뜯길 뿐이다. 내 오랜 노하우에 의하면 이럴 땐 침묵이 답이다. 난 엄마를 화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난 엄마의 자랑스러울 아들이니까.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침묵의 달콤함을 빠르게 깨달은 것은 참 다행이다.     

“아참, 넌 국어 문제 8번 답 뭐라고 썼어? 기억이 안 난다고? 어떻게 그게 기억이 안 나? 다른 얘들은 문제까지 다 기억하는데 넌 네가 무슨 답을 썼는지도 기억이 안 나? 그게 말이 되니? 너만 다른 문제지로 풀었어?”     

“너 요즘 누구랑 친하니? 걔 공부 잘하는 애야? 아까 다른 엄마들이 그러는데 걔 숙제도 잘 안 해오고 엄마도 애한테 별로 관심도 없다던데... 왜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니? 너 걔한테 뭐 약점 잡힌 거 있어?”     

 그때부터다. 내가 화이트 아웃을 경험한 것이. 내 일관된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갈수록 대담한 스킬을 자랑하는 엄마의 긴 취조가 끝나고 나면 난 늘 그 경험을 하게 된다. 흔한 말로 멘탈이 탈탈 털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리가 텅 빈 상태가 돼 버린다. 홀로 칼바람을 견디며 눈길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 침묵한 입에서 단내가 난다. 조금만 참으면 곧 끝난다. 곧 풀려나면 방에 들어가 동률이 형을 좀 만나야겠다.

‘이럴 땐 동률이 형 노래가 딱이지. 아이유랑 부른 듀엣 곡이 간절히 듣고 싶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두 눈을 감고서

훨훨 날아갈래요.

두 손을 맞잡고

넓은 세상 끝에서

다시 태어날래요.

우린 아직 꿈을 꿔도 돼요

그대 뿔이 멋지네요.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더 이상 워터파크도, 스키장도가지 않고, 시험 뒤풀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들은 한 달에 한번 여전히 조직적으로 만남을 지속하며 자식 사랑을 실천하셨다.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엄마들만의 반모임. 하지만 우리가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그 모임의 중심엔 항상 우리들이 있다. 참 엄마들의 에너지란 대단하다. 지치지도 않나 보다. 만고불변의 자식사랑을 감히 누가 말리겠는가!     

그렇게 나는 커가면서 본능적으로 ‘거국적인 정보공유 목적의 반모임’이 곳곳에 설치된 지뢰이고 그렇게 두려워하던 텔레스크린이자 cctv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예 엄마가 반모임에 가시는 날은 아침부터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 오늘은 또 어떤 대단한 일급 정보들을 물어 오실까! 나 뭐 잘못한 거 없나! 이럴 땐 걍 짜져 있는 게 답이다.’

  내가 지금까지 다녔던 학원의 계보도 ‘거국적 정보 공유 목적의 반모임’과 무관하지 않다. 아니 아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엄마의 정보통에 의하면 지금 다니는 수학 학원의 선생님은 강남의 내로라하는 학원에서 어렵게 모셔온 실력의 소유자란다. 수학 선생님 말만 잘 들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나의 수학 성적은 1등급이라는 게 엄마의 믿음이다.

 내가 이 수학 학원을 다닌 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니까 벌써 4년째이다. 강남에서 모셔온 실력자 선생님과 반모임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하늘이가 다니는 학원이니 1도 의심할 필요가 없이 검증된 학원인 것이다. 엄마의 믿음 속에서 난 그 학원을 제2의 학교처럼 빠짐없이 다녔다. 하지만 난 하늘이가 아니다. 그걸 엄마만 모른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조금만 더 하면 분명히 오를 수 있는데, 우성이는 아직 발등에 불이 안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잘하는 애들은 매일 찾아와서 문제 더 달라고 하는데 우성이는 한 번도 안 찾아오네요. 문제 푸는 거 보면 머리는 있는 것 같은데 악착같은 게 없어서 그게 좀 안타깝죠.”     

“에효, 죄송해요. 애가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지... 제가 얘기해 봐야 듣지도 않으니 선생님께서 열심히 하도록 좀 더 따끔하게 잡아 주세요. 혼내셔도 돼요”      

수학 선생님은 엄마의 전폭적 믿음을 등에 업고 더 당당하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 큰 가르침을 찰떡같이 받아먹지 못하는 날엔 욕이 한 바가지다. 선생님의 욕은 참 맛깔나고 찰지다. 귓속에 때려 박히는 귀한 말씀과 손톱으로 잡아 비튼 귓불에 생긴 피멍은 다 하늘이 같이 되라는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의 징표로 오래오래 가슴에 박힌다.       

 과고에 떨어졌을 때 처음으로 수학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해보았다. 하지만 하늘이가 자사고에 떡 붙고, 승연이가 과고에 덜커덕 붙었기에 난 학원을 그만둘 수 없게 되었다.

“수학선생님이 그러는데 과고 준비하던 실력으로 일반고 가면 오히려 상위권 틀어잡을 수 있어서 내신 따긴 쉽대. 차라리 잘됐어. 보란 듯이 일반고 가서 좋은 대학 가면 돼. 괜히 기운 빠져 있을 거 없어. 힘내. 알았지?”

‘힘을 내란 거야 말란 거야. 저런 말을 위로라고 하시는 건지... 참 한 결같이 우리 엄마답다. 자식 위로하는 법 가르치는 학원은 어디 없나!’

그렇게 난 아직도 수학학원에 다니고 있고, 얼마 전엔 영어도 승연이가 다니는 학원으로 옮겼다.


“우성아, 점심 뭐 먹을 거야? 우리 오늘은 편의점서 사 먹지 말고 학원 근처에 무한 리필 고기 집 생겼다는데 거기 가자. 육쌈 냉면 끝내준대. 어때?”

“좋지. 가자고 한 놈이 사는 거다. 밥 먹고 시간도 때울 겸 코노도 가자.”     

주말이면 오전에 국어 학원 끝나고 수학 학원 가기 전에 2시간 정도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에 친구들과 편의점이나 김밥집에서 밥을 사 먹는다. 학원 1층에 있는 김밥집은 김밥보다 알탕과 순두부찌개가 더 맛있다. 가끔 작은 일탈로 고깃집에 가서 호사를 누리는 기분도 학원 다니면서 느끼는 쏠쏠한 행복이다. 엄마는 학원 가서 사 먹는 밥에 대해선 후한 편이다. 공부와 관련된 건 늘 그렇다. 든든하게 먹어야 공부도 잘된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다. 고깃집 가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우리는 편의점에 들려 젤리와 음료를 또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나이. 밥 먹고 군것질하고 나도 시간이 조금 남는다.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 공부하는 새끼 누구야?’

그런 새끼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나에겐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다. 그래서 난 코인 노래방에 간다. 1000원에 4곡을 부를 수 있는 코노는 누가 만들었는지 상을 만들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좋아하는 김동률 노래를 내지르고 나오면, 자양강장제를 먹은 듯 또 수학 학원을 견딜 만하다.

‘그래. 이 맛에 학원 다니지. 이런 것도 없으면 난 벌써...’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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