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소영 Jan 26. 2019

<청소년 소설>눈 먼 파수꾼

2

“야, 너희 학교에서 1학년 애가 기말고사 본 다음날 자기네 집에서 떨어져 죽었다며, 진짜야?”

“아, 그 얘기하지 마. 우리 반 애야. 걔 죽기 며칠 전에 나랑 싸웠는데... 어휴...”

“헐! 왜? 그럼 너 때문에 죽은 거야?”

“아, 뭐래. 미친 새끼. 그런 게 아니고 걔가 했던 말이 기억나서 그러지.”

“뭐라 그랬는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새꺄.”

“아니 걔가 내가 먹던 우유를 달라 길래 한 모금 마시려나 하고 줬더니 갑자기 바닥에 던지는 거야. 그래서 미쳤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새끼가 ‘사람도 저렇게 떨어지면 박살 나겠지? ’하는 거야. 아, 지금 생각해도... 그 말할 때 그 새끼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암튼 존나 빡쳐서 내가 지랄했거든.”

“와, 소름! 그럼 걔 미리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시험 끝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다음날까지 아무도 몰랐다며?”

“아침에 경비아저씨가 화단에서 발견했대.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줄 알고있던 애가 죽었다니 걔네 엄마 아빠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들이 죽었는데 황당 정도겠냐? 기절할 노릇이지. 암튼 걔 공부도 잘하는 얘라며?”

“어, 중학교 때 공부 잘해서 과고 가려고 했는데 2차에서 떨어졌대. 근데 여기 와서도 생각보다 성적이 잘 안 나왔나 봐. 과학 중점반 애들은 거의 특목고 준비하던 애들이잖아.경쟁 장난 아니지.

"에휴, 그래도 그렇지."

" 암튼 요즘 울엄마도 내 눈치 살피시면서 엄청 잘해주신다.학교에서도 그렇고 다들 애들한테 암말도 안 하고, 인성교육이니 자존감 수업이니 뭐 그런 거 강의하잖아. 그런다고 될 일이냐?”

“어휴, 암튼 무섭다 무서워."


  무진이와 처음 말을 튼 건 중학교 3학년 때 다니던 독서실 옆 벤치에서였다. 그날은 중간고사 둘째 날이었다. 수학 시험을 완전 망쳤다. 서술형 문제 먼저 풀다가 한 문제가 막히는 바람에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앞에 객관식 문제 몇 개는 손도 대지 못했다. 손이 덜덜 떨려서 답을 제대로 마킹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쉬는 시간에 맞춰볼 것도 없이 못 푼 문제가 무려 4개! 풀다가 틀린 문제까지 하면...

난 병신 새끼다. 엄마하고 수학 선생님한테 죽었다. 과고 원서도 못써 보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에 너무 무서웠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울어본 게 얼마만인지. 2시간여를 방에 틀어 박혀 스스로를 병신 새끼라 자책하며 울고불고 벽을 쳤다. 엄마의 한숨을 막기 위해 일부러 쉴드치려고 한 리액션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엄마는 내게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밥도 먹지 않고 ‘남은 시험이라도 잘 봐야 한다.’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독서실로 향했다. 내일 남은 시험은 영어인데, 역시 자신이 없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어둑해진 독서실 옆 벤치에 앉아 딱 한 대만 피우고 들어가서 전의를 불태워야겠다 생각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참고로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중2 겨울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피우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하주차장 구석에서 아이들과 담배를 피우며 살짝 독립투사가 된 것 같이, 스스로 ‘멋짐’이 폭발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우수에 차서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지식인 같은 느낌도 들었던 거 같다. 모범생의 작은 일탈이라며 면죄부를 준 것도 같다. 나의 일탈은 꽤 오래 들키지 않은 채 그렇게 끝이 났다.     

 길게 한 모금을 빨며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동률이 형을 소환했다. 이번에 나온 신곡‘노래’도 지난번 나온 ‘답장’처럼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맛있냐? 그건 어디서 사냐?”

박무진?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저 새끼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학교에서 소문난 모범생이라 같은 반을 해본 적도 말을 나눠 본 적도 없지만 난 박무진을 안다.

“어? 아 이거... 뭐 그냥 누가 줬어. 줄까?”

하필 범생이한테 이런 장면을 들키다니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담배를 내밀었다. 이왕 걸린 거 공범을 만들면 어디 가서 소문은 안 내겠지 싶었다. 의외로 무진이는 선선히 담배를 받아 들었다. 난 쾌재를 부르며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려고 했지만 무진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오늘은 말고... 암튼 고맙다. 이건 준 거니까 내가 갖는다.”하고 서늘하게 웃었다.

“어? 그러던지. 너도 여기 독서실 다녀? 공부 많이 했냐? 난 오늘 수학 개 망했다.”

“이번 수학 역대급 헬이었대.”

“그래도 넌 잘 봤을 거 아냐. 난 서술형 풀다가 완전 시간 배분 잘못해서 앞에 쉬운 문제 손도 못 댔어”

“근데 이거 피우면 스트레스 풀리냐?”

“어? 그냥 피우는 거지 뭐. 이젠 잘 안 해. 몸에도 안 좋고....”

그제야 들고 있던 담배를 서둘러 버리고 비적비적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만 어색한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들어가려는데 무진이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청소년 흡연, 담배를 피우기보단 꿈을 피울 나이입니다. 푸훗....!”

무진이가 바라보는 시선 끝에 걸린 금연 포스터의 문구를 바라보며 주머니 속 담뱃갑을 꺼내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고 독서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학교에서 가끔 무진이와 마주치긴 했지만 그냥 눈인사만 나눌 뿐 그날의 일을 떠올릴 만한 교감은 없었다. 다만 내 눈에 무진이가 전보다 더 자주 보인 건 우연일까! 무진이는 공부를 잘한다고 나대거나 잘난 척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존재감이 거의 없는 아이 같아 보였다. 특별하게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도 없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왕따를 당하는 것도 아닌 듯했다.

우리 학교에서 과고 1차를 합격한 사람은 무진이, 승연이, 나 이렇게 셋이었다. 2차 학교 방문 면접이 있던 날 승연이가 먼저 면접에 들어가고 무진이와 단둘이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었다. 승연이 다음이 무진이고 내가 마지막이었다. 방문 면접이 언제 나올지 몰라 애태울 때는  차라리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막상 닥치니 잘하고 싶은 욕심에 가슴이 더 날뛰었다. 바지에 땀이 찬 손바닥을 벅벅 문지르며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왜? 떨려?”

“휴~당연하지. 넌 안 떨리냐?”

“난 안될 텐데 뭐... 떨리지도 않아. 어차피 돼도...”

“야, 뭔 소리야. 재수 없게... 너 같은 애가 그런 소리하면 난 어떻게 하냐. 나야말로 걍 뽑히면 좋겠지만 안 돼도 할 말 없지... 어쨌든 아는 거나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우성아, 넌 과고 왜 가려고 해?”

면접을 코앞에 두고 한 질문치 곤 너무 식상했다. 내가 과고에 가려는 이유는 외적인 여러 가지 이유와 내적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걸 지금 여기 이 상황에서 다 얘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나? 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서... 기숙사 가면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잔소리 안 들어도 되잖아.

 하하! 무진이 넌?”

“아! 나? 난 그냥 학원에서 써보래서... 푸훗.”

 그렇게 무진이 면접이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면접관의 질문에 최대한 예의 바르고 성실하게 대답하려고 애썼다. 갖은 전문적인 단어를 동원해 그럴듯한 답을 하려고 애썼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나온 것 같다.

그렇게 나와 무진이는 재수 없게도 2차에 깔끔하게 떨어졌고, 승연이만 과고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짧은 대기 시간이었지만 무진이와 참 많은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긴장한 탓인지 그날의 일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무진이는 그날 면접을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시종일관 너무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런 무진이의 모습이 무색무취의 텅 빈 공간에 부유하는 먼지 같단 생각이 들었다.      

                                                                                                                                                     (3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청소년 소설>눈 먼 파수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